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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원 목사님 인터뷰 기사 Interview article with Rev. D. Ross
Y.J. Choi ( HOME )05-28 17:20 | HIT : 4,941 | VOTE : 262
아래의 인터뷰 기사는 www.godpia.com->사랑이야기->아주특별한 만남->44,45나의 전부이신 나의 주님1,2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주님의 빛을 한반도와 온 세계에’ 오대원 목사님-

‘당신의 모습 속에 보이는 주님의 형상 아름다워라~’ 찬양이 절로 나오는 분이 있다.
바로 ... 성령의 바람을 불어넣어 주신 오대원 목사님이다. 예수전도단 설립자이며, 현재는 안디옥 선교 훈련원장인 목사님은 여느 리더들에게 보이는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은 아니다.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그야말로 양을 돌보고, 잃은 양을 찾는 온유하고 겸손한 모습이다. 그러기에 보기만 해도 은혜가 되고, 보기만 하면 곁에 다가가고 싶은 점이 예수님과 흡사하다. 그런 목사님을 어렵게 만날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다...

혈루병 앓던 여인처럼, 예수님 옷자락이라도 잡으려는 심정으로 특새 예배 후, 목사님께 기도를 받으려고 살짝 강단 위로 올라 가거나, 목사님이 강단에서 내려 오시기를 줄지어 기다리는 성도들을 보면서, 목사님과의 인터뷰는 특새 내내 계속 되었던 내 기도의 응답이었다.
목사님 역시, 그 이른 새벽에 하나님 전에 나아와 열심히 찬양하고, 기도하는 교인들의 모습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고, 기도회나 예배 후 교인들을 직접 만나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선교사의 사명을 품고 한국으로

모태 신앙이었던 목사님은 혹여 예배시간에 떠들고 장난이라도 칠까 싶어, 성가대셨던 어머니가 항상 맨 앞줄에 앉혔던 평범한 개구장이 소년이었던 듯하다.
그러나 이 소년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입학을 앞두고 참가한 하기 수양회에서 예수님을 만나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선교사기 되겠다는 강한 생각에 사로잡힌다. 대학 입학 후에도 내내 선교사가 되겠다는 생각이 온 뇌리에 가득 차 결국 신학교에 지원한다.

처음 희망 선교지는 모슬렘선교를 위해 이란을 택했지만, 그 당시 문이 닫혀있어 갈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선교지를 선택해야 할 시기인, 1960년에 한국에서 4.19가 일어나면서 세계 각국이 한국 대학생의 모습에 주목했다. 목사님은 불의에 항거하는 한국 학생들의 모습에서 예수님을 위해 열정을 품고 일할 수 있으리라, 예감한다.

대학생 선교를 하려던 목사님은 바로 그 때부터 한국을 선교지로 마음에 품고 기도하기 시작한다. 목사님의 기도는 한국장로교 총회의 초청과 맞물려 하나님의 인도하심 따라 마침내 1961년 한국에 선교사로 파송 되므로 응답된다.

목사님은 한국에 오자마자 원활한 선교를 위해 연대 한국어 학당에서 2년간 한국어를 배우면서, 영락교회에서 대학생 선교를 맡는다. 여느 선교사들과는 달리, 선교사들만 모여 사는 동네에 머무르지 않고, 서울 공대 앞 공릉동의 허름한 한옥에서 학생들과 함께 숙식을 하며 예배에 힘쓴다.

한 때 예수 전도단의 일원이었던 분의 얘기를 빌면, 처음 한국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거의 금식을 하셨다고 한다. 밥상을 앞에 두고 ‘오늘도 금식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로 시작되는 식사 기도는 얼마 후 상위에 오른 케첩을 보시고는 ‘오늘은 먹을 수 있게 하심을 감사합니다’로 이어졌고, 이내 케첩에 열심히 밥을 비벼셔 한 술 드셨지만,그것이 고추장임을 알게 되면서, 그날도 여지없이 금식으로 이어졌음은 두말 할 나위도 없었다.

대천덕 신부님과 예수전도단

한국에 와서, 얼마 되지 않아 선교사 모임에서 대천덕 신부님을 처음 보았는데, 그 모습이 이상해서 별로 다시 만나고픈 분은 아니었다. 찬양할 때 마다 손을 높이 드는 신부님 모습이 전통적 장로교 목사의 눈에는 이상하게만 비춰졌기 때문이다.

그러던 목사님이 안식년을 맞아 애틀란타에서 대학원 공부를 하던 중, 성령 충만한 기도 모임에서 찬양 중에 성령 체험을 하게 된다. 마음이 뜨거워지면서, 목자가 어린 양을 안아주는 듯한 감당치 못할 주님의 사랑이 임하여, 더욱 더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보게 된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벅찬 기쁨에 대천덕 신부님을 만나러 갔을 땐, 이미 신부님은 그 사실을 알고 계셨다. 목사님을 처음 만난 이후부터 1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오목사님을 위해 기도하셨기에… 목사님의 멘토로서 대천덕 신부님과 예수님 안에서 서로 교통 함은 신부님이 하늘나라 가시기까지 계속 되었다.

예수원이 묵상과 영성 훈련의 공동체라면, 예수 전도단은 예수님 전도를 목적으로 기도, 찬양, 말씀, 제자훈련 등의 활동을 하던 초 교파적 모임이다. 공릉동의 모임이 처음 대 여섯 명에서 스무 명, 삼십 명, 오십 명으로 점점 늘어나고, 말씀과 기도로 기적과 치유가 일어나면서, 백 명으로 늘어나게 되자, 결국 장소를 서울 시내로 옮기게 되고, 모임의 이름을 짓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 전도단이다. 지금은 세계선교에 비전을 품고, 다 문화권 장기 선교사를 파송 하고 있다.

1970년대에도 ‘세계로 나가자’ 외치며 선교에 비전을 품고 기도했는데, 그 당시 비자는 커녕 여권도 나오지 않을 상황이라 전혀 길이 보이지 않았음에도, 나이 드신 권사님들을 비롯하여 많은 분들이 기도하셨다. 결국 거의 대부분 선교사로 파송 되었고, 그 사역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야말로 땅에 떨어지는 기도는 하나도 없는 것이다. 북한 선교도 이처럼 ‘먼저 기도로 문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하신다.

북한 선교와 안디옥 선교 훈련원

목사님의 북한 선교 비전은 1978년부터였다. 북한을 접할 수 있는 기회도 전혀 없었으나, 하나님께서 북한을 두고 기도하게 하셨다. 처음으로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온 곳이었고, 부흥도 있었으나, 이제는 마른 뼈처럼 메말라 버린 북한 땅을 두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염려와 걱정 두려움으로 기도하다, 하루는 대한항공 본사에 전화를 걸었다. 언젠가 평양 행 비행기가 뜬다면, 가장 먼저 목사님 이름을 예약자 명단에 올려달라는 요청을 하는 바람에 그곳 직원들이 모두 웃었던 기억도 있다.

평양은 아니지만, 목사님은 얼마 전 평안북도 정주에 세운 4번째 두유공장을 방문했다. 북한 정부로부터 북한 내에 20개의 두유공장을 설립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아 놓은 상태이다. 직접 선교를 할 수 없는 상태라, 북한 정부에 맡겨 비영리 사업으로 운영 중인데 하루 5천명을 먹일 수 있는 규모이다.

이 같은 구체적인 북한 선교는 86년 한국을 떠나면서 비로소 시작되었다. 그시기에는 예수 전도단이 각 대학에 모두 퍼져 있었는데, 그 당시 정부는 88올림픽을 앞두고, 외국 선교사들이 활동하는 것이 보이면 후진국으로 오인 받는다는 이유 아닌 이유로 출국할 것을 권고한다. 25세의 어린 나이로 평생을 바칠 각오로 한국 땅을 밟아 사반세기를 보낸 목사님이 이제 조금씩 싹이 트고 줄기가 뻗어, 자라고 있는 선교지를 두고 떠난다는 것은 분명 힘겨운 일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든 목사님은 떠나지 않으려 했으나, 결국 비행기를 타게 되고, 그 일은 목사님을 힘들게 했다.

돌이켜 보건 데, 그것 역시 하나님의 섭리였다. 한국 내에 머물렀다면 구체적인 북한 선교는 어려웠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복음화된 한국을 떠나, 더 큰 일을 맡기시기 위해 사역지를 옮겨주신 것이다.

이렇게 해서 현재 사역하고 있는 안디옥 선교훈련원의 주된 사역 중 하나가 바로 북한 선교인 것이다. 씨애틀에 있는 이 훈련원에는 북한연구 자료관을 비롯해 북한 연구학교 등이 있다. 또한 북한 선교를 위해 각국의 중보 기도팀과 연합 하여 기도하며, 구제사업을 펼치고 후원도 받고 있다. (북한선교 후원에 동참고자 하는 분은 예수전도단 문희곤 목사님께 문의하면 된다.)

북한선교는 열정보다는 지식과 지혜가 필요하다고 강조하신다. 어릴 때부터 사상에 물들어 있으므로, 주체사상을 비롯해 그들의 사상을 먼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센터는 세계선교를 위해 제자훈련과 선교사 파송은 물론 파송된 선교사들을 정서적,영적으로 돌보는 일을 한다. 세계 각국에 14000명 정도의 선교사가 파송 되어 있는데, 대인관계나 가정의 위기, 질병, 자녀교육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지쳐있는 선교사들을 재충전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상처와 고난에 대하여

목사님 자신이 한국을 떠나면서 받았던 상처가 하나님의 말씀 묵상과 공동체를 통해서 회복되었던 것처럼, 지금 이 어두운 시대에 전쟁과 기근, 지진 등 천재지변은 물론, 크고 작은 고난으로 고통 받고 상처 받은 이들에게, 목사님은 말씀 묵상과 공동체 치유를 권한다. (하나님 말씀 안에서 서로 권면하며 예수님 사랑을 나누는 다락방 모임 같은 것이 아닐까.)

어쩌면, 믿는 이들에게 고난은 예정된 것이기에, 고난은 잠시요,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 우리는 이미 축복 받은 주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목사님은 헨리 나우웬의 말을 빌어 ‘고난으로부터 도망치려 하지 말고, 고난을 우리가 받은 축복 아래 두면, 그 고난은 결국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라고 조언 하신다. 이것은 옥한흠 목사님의 고난은 ‘변장 된 축복’이라는 말씀과도 통한다.

질병이나 사고로 위기에 있는 가정들과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면 송명희 시인이나 이지선 자매 같은…이들처럼 고난으로 인해 나가는 사역은, 고통 중에도 결국 깊이 있는 사역이 된다. 하나님께 나의 고난을 맡기고, 근본적으로 ‘나는 축복 받은 자’라는 인식 아래 고난에 의해 깨어진 그릇으로 시작하는 사역은 결국 하나님이 친히 일하신다는 것을 누구나 깨달아 알 수 있게하기 때문이다.

이사야서에 나오는 ‘고난 당하는 종’처럼 고난과 종은 분리시킬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고난을 통해 원하지 않는 부르심을 받으나, 오히려 다른 많은 이에게 축복을 주는 자로 쓰임 받게 되는 것이다.

‘아이를 잃은 가정 같은 경우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듯, 그 고난을 체휼하였으므로, 이런 분들이 북한 선교나 상처 받은 탈북자들을 치유하기 위해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과연 누가 이들을 치유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반문하신다.

'믿는 자에게 고난이 있는 것은, 경건하게 살려고 하는 자에게 핍박이 따르기 마련이죠.' 고난과 위기, 상처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내적 치유는 교회의 기본적이고 깊이 있는 사역이다. 서로 말씀으로 격려하고, 포용하고 이해하며 서로 짐을 나눠 지는 공동체, 이러한 사역은 결국, 북한 동포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성령체험

농담을 잘 못하는 편인데도 시기 적절하게 좌중을 유쾌하게 하는 것도 주님께서 주셨다. 머리로 알고, 마음으로 믿고, 성령 체험하는 것은 구원 받은 자에게 모두 있어야 하는 것이다. 구원은 너무 큰 선물이라, 사도행전 말씀에 주님을 영접하면, 내 안에 들어 와 계시고, 주위에서 함께 기도하면 누구나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다. 또 이러한 성령충만을 받으면, 복잡하게 교회에서 사소한 문제로 다투는 일도 자연히 없어진다.

사도행전 1장 8절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대로 성령 체험은 나 하나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나를 초월하여), 세계선교를 위한 것이다. 성령을 받으면, 가장 중요한 열매인 그리스도의 아홉 가지 성품(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을 갖게 되고, 은사를 받게 된다. 은사는 마치 도구 상자와 같아, 은사 받은 자를 통해 필요한 자에게로 전달되는 것이다.

그때 그때 필요할 때마다 막힘이 없이 열려 있다면 누구나 받을 수 있고, 누구를 통해서든 필요한 은사를 주신다. '열려 있다' 함은 머리로 분석하거나 이해하려는 것을 초월하는 것이다. 목사님의 경우, 기도로 아뢰는 자신의 말이 부족하다 느껴져, '만 입이 내게 있으면~' 찬양을 부르는 중에 '만 입을 내게 주시옵소서' 기도했고, 방언을 받으셨다. 누구나 더 기도하기 위해, 더 찬송하기 위해, 그 뜻을 알든 모르든 방언을 사용하는 것이다.

또한 아픈 사람을 위해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간절히 구하면, 치유의 은사도 주신다. 은사는 우리에게 이미 주어져 있으나 받으려 하지 않거나, 제대로 알지 못해, 사용을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 안타까움이 있다.

말씀 사모와 묵상, 그리고 한국 사랑

목사님은 1972년 성령체험 후, 매일 시간을 정해 놓고 말씀 묵상을 한다. 이전엔 이사야 40장부터 66장까지 했고 지금은 요한 복음을 묵상 중이다. 처음 묵상을 시작하려는 분은 시편 23편이나 139편부터 접근하기를 권한다. 먼저 전체를 읽고 하루 한 절씩 5~15분 깊게 그 말씀 안으로 들어가, 그 말씀 속에서 내게 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자신의 성격이나 약점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은,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시키라'는 바울 사도의 말씀처럼 나의 '쭉정이' 하나하나를 그리스도께 맡기고, 회개할 것을 권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드러날 때마다 회개함으로 자신을 비우고, 그 비워진 곳을 그냥 두면, 나간 귀신이 더 악한 일곱 귀신을 데려온다는 성경 말씀(눅11:26) 처럼, 그대로 두지 말고, 그 빈 곳을 하나님 말씀으로 채워 가는 것이다.

꼭 성령충만만이 아닌 매일 묵상을 통해, 자신을 하나님 말씀으로도 채워 갈 수 있어야 한다.(보다 자세한 말씀 묵상 방법을 알고 싶다면, 목사님의 책, [묵상하는 그리스도인]을 참고하면 좋을 듯하다)

이렇듯 말씀을 사모하는 것은 과거 영락교회에서 한경직 목사님을 통해 배운 것이다. 그분의 단순한 설교와 목회하시는 모습에서 깊은 감명과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오 목사님 설교 역시 간결하며 복음의 진수만을 전하시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뿐만 아니라 오대원 목사님에게 영향을 준 한국인들은 많았다. 영락교회 지휘자며 한국찬송가를 가장 많이 작곡했던 박재훈님, C.C.C 김준곤 목사님, 주선애 교수, 독립문 메리야스 공장과 청량리 6개 대학 기독학생회를 결성했던 김덕영 권사님을 비롯해 운보 김기창 화백, 이수복 시인도 꼽는다. (이외에도 대학생들은 물론 다양한 분들을 기억하신다)

김기창 화백이 그린 야생마를 보면서 한국인의 뛰어난 창의력에 감탄했다고 하신다. 그 활력 넘치는 모습이, 과거 한국에서 주님의 일을 힘차게 하려는 목사님의 바램과 맞닿은 것은 아닌지… 이수복 시인의 시에서는 한국의 정서도 느낄 수 있었다고 하는데, 이렇듯 남한은 물론 북한까지 돌아보는 각별한 한국 사랑은 어디에서 온 것 인지를 물으니 '먼저 한국인들에게 받은 사랑이 너무 크기 때문이라'고 말문을 여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셔서 감당할 수 없는 그 사랑 때문에 우리도 사랑할 수 있는 것처럼, 한국에 와서 사랑을 배우셨다니…그러면서, "한국 안 왔으면 큰일 날 뻔했죠" 하신다.

그렇다. 목사님이 한국에 안 오셨다면, 한국이 선교 한국으로의 도약이 가능했을까? 물론 다른 분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은 일하셨겠지만, 이름 속에도 한국사랑이 배어있는 그분의 한국 사랑은 따를 수 없지 않았을까?

목사님의 이름은 처음 한국에 와서 머물렀던 집의 장로님이 지어주셨는데, 흥선대원군에서 따온 것이다. 나라를 사랑했으나 쇄국정책을 펴, 많은 기독교인을 박해했던 대원군의 아쉬웠던 점을 역으로 선교사로 온 목사님께 주시다니 아이러니 하다. 대원군도 감사할 것이다.그의 잘못을 대신 보완 해주시는 예수님 같은 분이 계시니…

우리 모두의 죄를 대신해서 돌아가신 예수님은 목사님께 어떤 분일까? 단호하게 "생명입니다." '나의 전부이시고, 주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아요.'라고 고백한다.

한국 성도들에게 당부의 말씀을 부탁했다. "청년들은 얼마나 좋습니까? 부럽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더욱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세월을 아껴,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빨리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밀고 나가면 못할 일이 없죠. 장년들도 자신이 처해 있는 곳에 안주하지 말고, 장막 터를 넓혀 나이에 구애 받지 말고, 이제부터 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쓰신다'는 소명의식으로 큰 비전을 품으십시오. 또한 부모로서 자녀를 사랑하면서도, 자녀는 주님의 제자로 삼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사람임을 기억하십시오." 라고 충고도 잊지 않으셨다.

곁에 앉아 있는 내내 목사님께 훈훈한 그리스도의 향기와 함께 빛이 났다. 눈이 부셨다.(그렇지만, 주님 없이는 빛날 수 없는 별이 아니던가.) 가슴 가득 선교의 별을 품고 있던 청년은 이제 어둔 밤하늘에, 이 어두운 시대에 예수그리스도의 빛을 머금고 한반도에, 그리고 온 세계에 주님의 빛을 비추는 선교의 별이 되어 있었다. 갈 바를 모르는 양 떼를 바른 길로 인도하는 지표가 되는, 진정 아름다운 주님의 별이었다. 너무나 깊고 해맑은 눈빛과 미소를 지닌 채, 은은히 비추이는 '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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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영적 훈련 (Spiritual Fitness) 10 – 사랑함 (Loving)     Y.J. Choi 2007·09·24 3774 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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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오대원 목사의 길동무 Ellen Ross 여사와의 인터뷰 Interview with Mrs. Ellen Ross (인용)     Y.J. Choi 2007·05·28 3911 278
 오대원 목사님 인터뷰 기사 Interview article with Rev. D. Ross     Y.J. Choi 2007·05·28 4941 262
137  영적 훈련 (Spiritual Fitness) 4: 걷기 (walking)     Y.J. Choi 2007·05·24 3161 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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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영적 훈련 (Spiritual Fitness) 2     Y.J. Choi 2007·05·04 3374 261
134  영적 훈련 (Spiritual Fitness) 1     Y.J. Choi 2007·04·30 3623 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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