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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6장 강해 (Amos 6)
Y.J. Choi ( HOME )10-23 15:32 | HIT : 4,117 | VOTE : 247
수요 예배
성경: 암 6장                         제목: 안일과 교만을 치시는 하나님

  

오늘은 계속해서 아모스 6장을 상고하겠습니다. 5장은 아모스의 세 번째 설교로서 이스라엘에게 혹독한 재앙이 내려 망하게 될 때에 살 길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한마디로 여호와께 돌아오는 것뿐이었습니다. 6장에서는 세 번째 설교의 계속으로 이스라엘의 안일과 교만을 치십니다. 6장의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1-11절까지는 ‘지배층이 받을 심판’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것은 가난한 자들을 착취한 대가로 호의호식과 사치에 빠져서 국가의 장래에 대해서는 생각하지도 않는 이스라엘의 지배 계층에 대한 심판의 선고입니다. 두 번째 12-14절까지는 이스라엘의 멸망에 대한 말씀인데, 상상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배은망덕한 죄악을 저지른 이스라엘이 앗수르의 침략으로 멸망할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1절: 본 장은 재앙이 올 때에 아무리 하나님의 자녀라 하지만 화를 받을 자의 행동을 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세상의 안일한 생활에서 만족하고 가장 높은 명예를 얻고 이방과 타협을 하는 것을 더 중요시하는 사람들에 대해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시온이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거기에서 사는 자들’는 남쪽 유다 나라의 지도층 인물들 중 장차 임할 심판을 깨닫지 못하고 개인적 일락에 빠진 자들을 말합니다.

‘사마리아의 요새만 믿고서 안심하고 사는 자들’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스스로 든든하다고 생각하면서 죄에 대한 감각도 없고 심판도 모르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열국 중에서 자기들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선택된 자들이라고 자처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무지몽매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들의 지도를 받으려고 따라 간다는 것입니다. 이 남왕국 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의 정치 지도자들은 영적으로 큰 죄를 지었지만 그 죄를 깨달을 수 있는 통찰력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영적으로 무디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회개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 그 죄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사람은 죄를 지었거나 죄된 생각이 들어올 때 처음에는 죄로 인해 넘어지는 듯하나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그 죄를 넘어 한 단계 성숙하는 신앙의 사람으로 일어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깨어있지 않는 사람 즉, 영적으로 안일하고 교만한 사람은자신이 죄 중에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회개하여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혹시 이런 안일함이나 교만함이 없는지 늘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2절: ‘갈레’는 니므롯이 시날 땅에 건설한 도시였는데(창 10:10), 나중에 앗수르에게 합병되었습니다. ‘하맛’은 시리아에 속하였고, ‘가드’는 블레셋 도시입니다. 이 나라들은 모두 멸망하였는데 그 이유는 그 지도자들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도 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지도자들이 안일 방종하고 있으니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모스는 저들의 멸망의 확실함을 깨닫게 하려고, 앞서 망한 도시들을 보라고 말씀합니다. 그곳들이 결코 유다나 이스라엘보다 크지 않다는 것입니다.

선지자 아모스는 이스라엘 지도자들더러 다른 나라에서 된 일을 보라고 하면서 자신들을 살펴보도록 합니다. 사람이 홀로 자기를 못 보면, 남들의 일이 어떻게 되어 가는 것을 살필 때에 자기의 일도 어떻게 될 것을 깨닫게 됩니다. (他山之石) 그 이유는, 남이나 나 자신이나 하나님 앞에서는 꼭 같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3절: 이러한 자들은 심판이 임박한데도 불구하고 때가 멀었다고 하면서 강포하고 불의한 행위를 친근히 한다는 뜻입니다. 심판을 멀리 미루어 놓고 생각하는 자들은 언제나 포학한 짓을 자유로이 합니다. 3-6절에서 아모스는 지도층의 타락을 맹렬히 비판합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경제적인 부가 축적되었으나 이것을 향유하는 사람은 극소수의 지도층에 불과했습니다. 분배의 형평을 깨뜨리며 이기적인 욕심만을 채우고 향락과 사치를 일삼은 그들에게는 이러한 일차적인 범죄 행위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가 있었는데 곧 영적인 안일입니다. 일락에 빠져 심판에 대해 무관심한 그들은 백성을 인도해야 할 사명을 잊어버림은 물론 오히려 백성들에게 나쁜 가치관을 주입시켜 파멸로 빠지게 하였던 것입니다.

4절: 또한 그들은 기지개 켜며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입니다. ‘상아 침상’과 같이 화려한 집에 사는 것을 즐기고, 어린 양과 송아지 고기를 먹으며 쾌락에 빠져 있습니다. 요즈음 같은 금융 위기에도 어떤 은행이나 기업의 CEO들은 상상할 수 없는 고액의 연봉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업이나 은행은 망해도 CEO는 거액의 퇴직금을 챙긴다는 말들을 합니다. 이것은 분명히 무엇인가 잘못된 것입니다. 그들이 진정 장차 올 환난을 생각했다면 더욱 겸손하고 검소한 생활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사치할 권리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요 우리는 주님의 청지기요 섬기는 종에 불과하기 때문이고 주님이 주신 것을 나만 위해 지나치게 사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주신 재물을 하나님의 나라와 이웃을 섬기는 일에 지혜롭게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5절: 이들은 오락적인 헛된 노래를 부르며 악기를 사용하되 세상 향락에 도취가 되어 억울한 환란을 당하는 자를 무시합니다. 물론 여기서 ‘악기’나 ‘노래’ 자체가 정죄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죄의 결과를 두려워하면서 근심해야 할 자들이 음악을 즐기고 있는 것은 마땅치 않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악기를 제조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들을 위하여 악기를 제조했으니 그것은 마땅치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든지 범죄하고도 회개할 줄 모른다면 하나님의 벌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역사에도 신라가 멸망할 때 왕과 신하들이 나라를 바로 다스리지 않고 포석정에서 향연을 즐기다가 결국 패망한 것을 볼 수 있지요.

6절: 여기서도 ‘포도주를 마신’다든가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는 것’ 자체가 항상 잘못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앞으로 있을 환난을 생각하여 회개해야 할 자들이 회개하며 낮아질 줄은 모르고 여전히 이 세상의 향락에 빠지는 것을 꾸짖는 것뿐입니다. ‘요셉의 환난’이라는 것은 장차 이스라엘에게 임할 심판을 의미합니다. 세상을 위한 근심은 사람으로 하여금 멸망케 하나, 하나님의 뜻대로 회개하는 의미에서 가지는 근심은 구원을 가져옵니다(고후 7:9-11). 우리도  기도할 때 이러한 자세로 기도해야 할 줄 압니다.

7절: 7-11절에는 타락이 극에 달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심판 또한 극한 상태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징계로 인한 이스라엘의 황폐상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많은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지도자적인 책임을 못하였을 뿐 아니라 국운이 위태로울 때에 오히려 안일 방종하였습니다. 많이 준 자에게는 많이 찾으시는 하나님의 공의(눅 12:48)가 필연적으로 저들에게 실시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환란 때 먼저 원수에게 피해를 당하게 됩니다. 마음껏 흥청대던 잔치란 회개하지 않고 태만과 방종 그리고 안일주의에 빠진 지도자들의 모습을 말합니다.

8절: 하나님은 자기의 자녀들이 세상 영광에 중심을 두고 일하는 것을 미워하며 대적에게 맡기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확실히 하기 위하여 ‘자기를 가리켜 맹세’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자랑할만한 소유는 모두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그것을 가지고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을 떠나 자기 자신을 높이는데 이용하였으니, 그 때부터 그 본래 하나님이 주신 것들이 하나님에게 가증스러워 보입니다. 그러므로 그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궁궐들까지도 미워하십니다. 죄인들의 소유물에 재앙이 임하면 그 죄인들은 자기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큰지 알아야 합니다. 이것들은 세상 마지막에 한 순간에 무너질 바벨론 도시와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범죄하면 그에게 속한 소유물까지 재앙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기 죄가 얼마나 큰 것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자기의 속을 살피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의 주위를 넓게 살펴보아 그 죄악이 얼마나 깊은 것과 넓은 사실을 발견해야 됩니다.

9절: 한 가족 중에 몇 사람이 전염병에 죽고 열 사람이 남아 있다 할지라도 그들이 대적에게 피해를 당하되 전멸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10절: ‘시체를 불사르는’ 풍속은 히브리인들 중에 별로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부모, 형제, 자매 등이 모두 다 죽어 가까운 친척이 시체를 치울 수밖에 없는 비참한 상황에 이르렀음을 암시합니다. '없다‘는 것은 자기 외에 산 자가 없다는 절망적 언사입니다. '조용히 하라'고 하면서 '주의 이름을 함부로 불러서는 안 된다'는 말씀의 뜻은 이전에는 외식적으로 예배했으나 이제 그러한 한가로운 짓은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종교적 외식이란 사람들이 한가한 때 가지는 노름과 같습니다. 위기를 당하여서는 외식하는 종교가들이 힘쓰지 못합니다.

11절: 언약 공동체인 이스라엘은 큰 집과 작은 집의 구별 없이, 지도자와 서민 모두가 함께 멸망 받을 것을 의미합니다. 제사장의 죄는 백성의 죄이고, 백성의 죄는 또한 선지자와 제사장이 연대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죄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였구나!’(애 1:18)라는 예레미야의 탄식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12절: 12-14절은 여호와께서 심판의 도구로 일으키신 대적을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음을 강조합니다. 스스로 강하다고 자만하는 자는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다’(고전 1:25)는 진리를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든다면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자들이 세상 영광에 끌리어 인간 세력을 의지하고 사는 자들은 말들이 바위 위에 달림과 같고 소가 바위 위에 밭가는 것과 같이 모든 것이 다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는 것입니다. 공의를 버리고 형통하기를 꾀하는 지도자들은, 소를 가지고 바위 위에서 밭갈고자 함과 같습니다.

13절: 로드발을 점령하였다고 기뻐한다 함은 그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교만한 행동을 취함을 말합니다. 즉 저들이 세력, 영광(뿔)을 얻게 된 것은 자기들의 힘으로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닌 헛된 사고방식입니다. 이런 사고방식이 인류의 역사상에 편만해 있습니다. 인간은 언제든지 하나님을 무시하는 헛된 사고방식을 즐깁니다. 잘 된 자들은 실상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인데 자기 힘으로 잘 된 듯이 교만하고, 불행하게 된다면 실상 자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는데 하나님 때문에 그렇게 된 듯이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자기 힘을 믿는 자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죄를 범하며 허무한 것을 기뻐하는 자입니다.

14절: 결국 이스라엘은 앗수르의 침략을 받아 망하게 될 것을 가리킵니다. 한 나라를 일으키시는 이도 하나님이시고, 멸망시키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맛’은 이스라엘 북방에 있는 국경 지방이고 ‘아라바 시내’는 남쪽 국경입니다.

여러분, 사람은 참으로 간사해서 일시적으로 승리하였거나 그 세력을 얻으면 그것을 믿고 안일 방종하여지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세력을 주시는 것은 그 자신을 평안케 하려 함이 아니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봉사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그것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위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벌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 앞에서 벌을 받을 때에 잠잠할 것이 아니고 회개하며 주님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위험한 때에 잠잠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 원치 않는 자가 있다면, 그는 그 때에도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을 피해 보려는 악한 양심의 소유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무사안일과 태만에 빠지지 않고, 허무한 것을 기뻐하지 않는 여러분 되시길 빕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기뻐하며 더욱 더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드리는 근신의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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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모스 6장 강해 (Amos 6)     Y.J. Choi 2008·10·23 4117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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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남전도회 헌신예배 설교 Sermon for Men's group dedication service     Y.J. Choi 2008·06·19 3719 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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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  미가서 6장 강해 (Micah 6)     Y.J. Choi 2008·05·09 7438 260
176  미가서 5장 강해 (Micah 5)     Y.J. Choi 2008·04·25 8667 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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