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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4장 강해 (Amos 4)
Y.J. Choi ( HOME )10-08 12:22 | HIT : 3,762 | VOTE : 231
성경: 암 4:1-15                         제목: 하나님 만날 준비를 하라

오늘은 계속해서 아모스 4장을 상고하겠습니다. 1장에서는 아모스가 다메섹, 블레셋, 두로, 에돔, 암몬에 대해 심판을 선포한 것을 말씀드렸고 2장에서는 열방에 대한 심판의 결론으로 이스라엘의 심판을 다룹니다. 3장은 아모스의 첫 번째 설교로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행하는 심판을 말씀합니다. 4장에서는 아모스의 두 번째 설교가 나오는데 배역한 이스라엘의 범죄 행위가 열거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시면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부분은 1-3절까지로서 이스라엘의 사치한 부유층의 쾌락적인 삶에 대한 심판을 말씀합니다. 두 번째로는 4-5절로 더욱 깊어지는 우상 숭배의 범죄상에 대해 지적합니다. 세 번째로 6-11절까지는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도 돌아오지 않음에 대한 탄식이 나오고 마지막 12-13절에는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에 대한 경고가 선포되고 있습니다.

1절: 아모스는 그의 두 번째 설교에서 가난한 자들을 착취한 것으로 사치를 일삼은 지배 계층에 대한 심판을 선언합니다. 사회적인 약자들을 착취, 강탈하여 향락을 충족시킨 특권층 혹은 기득권자들의 비대한 모습을 기름진 바산의 암소 떼에(시 12:12; 겔 39:18) 비유합니다. ‘바산’은 목초가 많고 기름진 곳으로 요단강 동쪽 산지의 북쪽에 있습니다. 특별히 여기서 ‘암소들’이라고 하는 것은 부유층 부인들을 가리킵니다. 이 사치스러운 여인들이 가난한 이웃을 돌아보기는커녕 오히려 학대하고 압제하면서 쾌락을 추구합니다. 그리고 저들은 게을러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남편들을 지배하여 그들을 시켜서 술을 가져오라고 요구합니다. 이 얼마나 타락한 모습입니까! 여성들이 이렇게 타락하여 암소처럼 동물적인 본능만 충족시키는 생활을 하면 남편들도 자연히 병들 수밖에 없고, 결국 그 사회는 병들고 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세상을 심판할 수밖에 없습니다. 몇 년 전 한국에서 한참 문제가 된 크리스천 부유층 여성들의 소위 모피로비사건도 이와 유사하다고 생각됩니다.

2절: 그들의 비참한 종국을 갈고리에 걸려 끌려가는 물고기에 빗대어 풍자하고 있습니다. 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자기의 거룩함’을 가리켜 맹세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그들의 죄를 그냥 둘 수 없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시므로 죄악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갈고리’와 ‘낚시’라는 이중적인 용어를 쓴 것은 그들이 심판을 피할 길이 전혀 없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앗수르의 옛 비석에 보면 포로들의 입을 갈고리로 꿰어 끌고 가는 광경이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참으로 눈뜨고 볼 수 없는 참혹한 광경입니다. 그러나 그 벌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지은 죄악임을 우리는 볼 수 있어야 합니다.

3절: ‘하르몬’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되어 가다가 버려진 어떤 지방 이름인데 어디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부유한 사람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교만하기 쉽습니다. 우리에게 재물이 생길수록 더욱 경건하고 근신하여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들, 즉 이웃들과 사랑을 나누면서 가난하고 어려운 지체들을 은밀히 섬기는 일에 더욱 힘쓰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1980년도 세계 최초로 24시간 뉴스 채널 CNN을 설립한 테드 터너. 그는 부모를 일찍 여의고 가난과 싸워야 했지만 끈기 하나로 CNN을 세계 최고의 뉴스 채널로 키워냈습니다. 현재는 CNN뿐 아니라 타임지 등 언론사는 물론 영화사, 스포츠팀을 두루 거느린 그룹 타임워너를 이끌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엄청난 부와 명예를 누리고 있지만 인생관은 의외로 소박합니다. "나야말로 최고의 행운아입니다. 이루려고 마음먹은 것은 모두 이루었으니까요. 나머지 삶은 세상을 위해 살 겁니다. 돈이 많다는 것은 팝콘을 먹는 것과 비슷합니다. 팝콘으로 배를 채울 수는 있지만 만족을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만족을 얻기 위해서는 남을 배려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 삶을 위해 그는 핵 감축을 주장하고 여성 권리를 인정하라고 외칩니다. 또 집안과 회사에서는 짠돌이로 소문났지만 해마다 거액을 사회에 기부하고 있습니다. 1998년에는 재산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0억불을 UN에 내놓았으며 환경단체 등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많은 자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터너도 처음 100달러를 기부하기로 마음먹고 수표책에 사인할 때는 두 손이 벌벌 떨렸다고 합니다. 그 돈이 너무나 아까웠기 때문입니다. 수십 번을 망설인 끝에 사인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다음에는 아까운 마음이 처음보다 덜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기부 횟수가 늘어날수록 돈을 내놓기가 쉬워졌고 더 많은 금액의 수표책에 사인할 수 있었습니다. 테드 터너는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나 나눔을 말하기는 쉽지만 실천하기는 힘듭니다. 그래서 나눔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처음부터 큰 것을 주기란 힘듭니다. 작은 것부터 나누는 연습을 통해 점점 큰 것까지 나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분이 최근까지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으며 기독교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지만 최근에 미국 루터교 신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4절: 4-5절은 아모스가 반어법을 통하여 여호와의 언약을 어긴 이스라엘의 위선적 신앙을 꾸짖는 내용입니다. 영성(spirituality)이 전혀 없는 종교(religion)를 의미합니다. 그 당시의 이러한 사회문제 배후에는 심각한 영적인 문제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당시에 많은 백성들이 형식상으로는 하나님께 열심인 듯이 보였으나 실제로는 가나안 종교의 우상 숭배의 개념을 혼합시킴으로서 여호와 신앙을 근본적으로 모독하고 있었습니다. 위선적이요 형식주의적 신앙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어떻습니까? 주님 앞에서 항상 말씀과 기도로 깨어있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신앙은 화석화됩니다. 그러므로 항상 주님의 사죄의 은총을 간구하면서 주님 앞에 매일매일 순간순간 무릎 꿇는 우리가 되어야 할 줄 압니다.

벧엘과 길갈은 원래 이스라엘의 옛 조상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성지였지만 후에는 우상숭배의 처소가 되었습니다(호 4:15; 9:15; 12:11). 가령 ‘벧엘’은 야곱이 돌기둥을 세운 곳이며(창 28:18-19), 세겜을 떠나 단을 쌓고 회개한 곳입니다(창 35:1-7). 그 후에 그곳은 거룩한 예배 장소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삼상 10:3). 그리고 길갈은 여호수아의 인도로 가나안에 입성한 첫 지점으로(수 4:19-20), 온 백성이 할례를 행한 곳이며(수 5:2-9), 유월절을 지킨 곳입니다(수 5:10-12). 그러나 아모스 당신의 벧엘과 길갈은 우상숭배의 중심지로 바뀌고 만 것입니다. 단을 더 많이 세우면 세울수록 그들의 형식주의적 신앙도 커져만 갔습니다.

여기서 ‘삼일’마다 십일조란 원래 ‘삼년’마다 한번씩 내는 십일조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당시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의 우상 섬기는 의식을 조롱하는 것으로, “삼년 만에 드리는 십일조를 삼일 만에 드려 보라” 그래도 그들의 죄는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5절: ‘감사제물(수은제)’란 예기치 못했던 은혜나 축복을 받았을 때에 드려진 화목제의 일종인데 반드시 누룩이 없는 예물을 사용해야만 했습니다(레 7:12-14).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누룩을 섞고 있습니다. ‘자원 예물(낙헌제)’란 순수한 경건심에서 축복을 기대하지 않고 드리는 사적인 감사예물(레 22:18; 민 15:3)로서 가끔 자원하는 예물로 언급되기도 합니다(레 7:16). ‘큰소리로’ 하라는 것은 사적인 제사를 다른 사람에게 선전하듯이 제사행위를 하는 것에 대한 풍자입니다. 그런 것은 아무리 힘껏 해 보아도 소용이 없고 도리어 범죄하는 것뿐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형식적인 제사에 ‘자기 스스로 만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식적인 예배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요, 또 하나는 자기선전입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하나님 앞에 신령과 진리로, 겸손히 참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지 우리의 모습을 좀더 깊이 돌아보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6절: 6-13절에서 아모스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과거 역사 속에서 일련의 다섯 가지 사건들을 지적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그 징계들이 결국 그 백성들로 하여금 ‘돌아오게 하기 위한’ 긍휼이었음을 밝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패역한 길로 치닫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탄식은 결국 이스라엘이 심판에 이를 수밖에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들의 신앙생활에는 참회가 없었습니다. 회개가 없는 신앙은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기서 인간의 철저하게 부패한 죄성과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이 극적으로 대조를 이루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첫 번째 재앙은 이를 한가하게 함, 즉 흉년이 들었다는 것입니다(왕상 18:2; 왕하 4:38).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습니다.

7절: 7-8절에서는 비가 오지 아니하여 음료수가 부족하게 되는 가뭄 재앙이 있었음을 말씀합니다. 추수 전에 큰 비가 내리지 않으면 수확에 큰 지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식수도 부족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9절: 잎마름병(풍재), 깜부기 재앙, 메뚜기(팟종이)의 재앙이 동시에 임하였으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풍재란 보리 같은 곡식의 이삭이 까맣게 되는 흑수병(smut)을 말한다고 합니다.

10절: 네 번째로 마치 애굽의 재앙처럼 염병과 전쟁의 재앙이 임하였으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11절: 마지막으로 성읍이 무너졌어도 끝끝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성읍이 소돔과 고모라처럼 무너졌다는 것은 아마도 웃시야 왕 때에 발생한 지진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징계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강퍅하게 해서 돌아오지 않는 이스라엘은 더 이상 소망이 없습니다.

12-13절: 본문은 회개를 촉구하는 내용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끝까지 개전의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는 자들에게 확증된 심판의 선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회개하기에는 너무 늦은 그들에게 남은 것은 오직 심판뿐이었던 것입니다(살후 1:8).

아모스가 이렇게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는 이스라엘에게 던지는 최후의 통첩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만날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모두 이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거룩하신 하나님의 종말적인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깊이 생각하면 오늘 하루 어느 한 순간도 소홀히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고전 11:31에 보니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살피면, 우리는 심판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판단을 받기 전에 내가 먼저 나 자신을 철저히 살피라는 것입니다. 나 자신을 철저히 살피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과 나 사이에 막힌 담이 없는지, 죄가 없는지를 깊이 살피는 것입니다. 잠 16:2에 보니 ‘사람의 행위는 자기 눈에는 모두 깨끗하게 보이나, 주께서는 속마음을 꿰뚫어 보신다.’고 말씀합니다. 심령의 죄가 깨달아질 때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합니다. 날마다 주님 앞에 엎드려 사죄의 은총을 간구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주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라고 말씀하십니까? 13절에 보니 하나님은 첫째로 전능하신 창조주라고 말씀하십니다. 보이는 산과 보이지 않는 바람까지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람’은 ‘영(루아흐)’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영들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둘째로 자신의 뜻을 사람들에게 밝히시는 계시의 하나님이시고, 셋째로는 빛과 어두움, 낮과 밤을 주관하시는 섭리의 하나님이시며, 넷째로 땅의 높은 곳도 밟으시는 심판주 하나님, 즉, 교만한 자를 낮추실 하나님이십니다. 마지막으로는 이스라엘의 원수를 물리치고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히 10:31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징벌하시는 손에 떨어지는 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또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크고 두려우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도덕적으로 방종한 삶을 회개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생활을 버리고 하나님 중심의 생각과 생활로 돌이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굶주림과 가뭄과 질병과 전쟁 등, 여러 가지 재앙을 내리심으로써 그들을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모든 재앙을 우연으로 돌리고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강퍅한 범죄자들을 내어 버려두십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죄를 지어도 아무런 형벌이 없다면 사실 그것은 더욱 두려워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을 오래 참으시고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벧후 3:9). 그리고 우리가 어떤 죄 가운데서 돌이키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영접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순간마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는 삶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적용) ‘주님! 제가 주님의 경고를 두렵고 떨림으로 받아들여 영원한 구원에 이르도록 도와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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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S U B J E C T NAME DATE HIT   VOTE
190  아모스 6장 강해 (Amos 6)     Y.J. Choi 2008·10·23 4221 254
189  아모스 5장 강해 (Amos 5)     Y.J. Choi 2008·10·17 7768 266
 아모스 4장 강해 (Amos 4)     Y.J. Choi 2008·10·08 3762 231
187  아모스 3장 강해 (Amos 3)     Y.J. Choi 2008·09·18 6175 261
186  아모스 2장 강해 (Amos 2)     Y.J. Choi 2008·09·11 6447 270
185  아모스 1장 강해 (Amos 1)     Y.J. Choi 2008·09·04 9535 308
184  한국 교회를 사랑으로 섬긴 한 독일 목사님 One German pastor who served Korea     Y.J. Choi 2008·08·23 3883 261
183  요엘 3장 강해 (Joel 3)     Y.J. Choi 2008·06·27 7672 278
182  남전도회 헌신예배 설교 Sermon for Men's group dedication service     Y.J. Choi 2008·06·19 3798 258
181  요엘 2 장 강해 (Joel 2)     Y.J. Choi 2008·06·12 9662 294
180  요엘 1 장 강해 (Joel 1)     Y.J. Choi 2008·05·23 9012 274
179  부모 사명문 (인용한 글)     Y.J. Choi 2008·05·20 3551 222
178  미가서 7장 강해 (Micah 7)     Y.J. Choi 2008·05·15 7492 292
177  미가서 6장 강해 (Micah 6)     Y.J. Choi 2008·05·09 7606 266
176  미가서 5장 강해 (Micah 5)     Y.J. Choi 2008·04·25 8844 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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