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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3장 강해 (Amos 3)
Y.J. Choi ( HOME )09-18 14:11 | HIT : 6,019 | VOTE : 255
수요 찬양예배
성경: 암 3:1-15                                제목: 이스라엘의 심판

  

오늘은 계속해서 아모스 3장을 상고하겠습니다. 1장에서는 아모스가 다메섹, 블레셋, 두로, 에돔, 암몬에 대해 심판을 선포한 것을 말씀드렸고 2장에서는 열방에 대한 심판의 결론으로 이스라엘의 심판을 다룹니다. 3장은 아모스의 첫 번째 설교로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행하는 심판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말씀합니다. 첫 부분은 1-8절로 이스라엘은 아모스의 예언을 들어야함이 당연함을 말씀합니다. 두 번째 부분은 9-10절로 이스라엘의 죄악을 이방들더러 보라고 말씀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 부분은 11-15절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요절은 7절입니다.

1절: 아모스 예언의 대상은 일차적으로는 북이스라엘이지만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모든 족속’이란 구절을 보면 남유다까지를 모두 포함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을 들어라’는 아모스가 자기가 증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2절: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명을 맡은 자가 순종치 않고 범죄한다면 보응을 내리게 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중에서 특별히 택함 받은 백성입니다. 그들만이 하나님의 아신 바가 되었습니다(2절, 개역성경).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 중에 이스라엘을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다른 민족을 알지 못하신다는 말일까요? 그렇지 않지요.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셨고 이방 민족에게도 계시하t셔서, 비록 그들이 구원에 이르는 길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도 자연을 통해 당신의 지혜와 성품이 드러나도록 하셨습니다. 여기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뜻은 이방 민족과는 달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주셔서 구별되게 불러내신 백성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안다"(히. 야다)는 말은 단순한 지식 습득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적인 경험을 통해 상대를 깊이 사랑하고 이해한다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특별한 언약관계로 조상 아브라함 때부터 맺으시고, 애굽에서 해방하시며, 율법을 주시고,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구속사의 통로로 삼으시고, 그 혈통에서 그리스도가 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관계성의 앎을 말합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내가 너희만 알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이스라엘과 똑같은 구원의 은혜가 우리 자신에게도 적용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스라엘을 구속사의 선민으로 삼으셨고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돌봐 주셨지만 이스라엘은 이 모든 은혜를 배반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기 때문에 어떤 죄를 범해도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들이 선택을 받았기 때문에 죄를 지었을 때 더 큰 벌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자를 채찍질하십니다. (히 12:8)

3절: 3-8절에는 7절을 제외하고는 9개의 비유적 또는 비교적인 질문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강조하는 것은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3절의 ‘두 사람’은 누구일까요? 여기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또는 하나님과 아모스로 보는 견해입니다. 전자에 의하면 하나님과 동행해야 마땅한 이스라엘이 범죄함으로 인해 그렇게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며, 후자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선지자 아모스는 하나님의 뜻을 증거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4절: 사자 소리와 같이 하나님 말씀은 공연히 나온 것이 아니고, 당당한 이유가 있어서 나온 것입니다. 여기서 사자의 모습은 하나님의 말씀을 크고 담대하게 전하는 아모스를 비유한 말입니다. 즉, 사자가 먹이를 발견하였거나 포획한 후에는 포효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은 아모스 자신도 담대하게 예언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이것은 아모스 개인에게는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북쪽 사람도 아닌 남쪽 사람이 이스라엘에 와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한다면 누가 좋아할까요? 간첩 내지는 여러 죄목으로 체포되고 처형될 위험부담이 매우 높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모스는 외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듣던지 아니 듣던지 하나님의 메시지는 선포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이런 선지자의 자세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오해와 비난과 심지어 개인적으로 위험한 일을 당할 수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선포하고 그 말씀대로 바르게 살아가야 할 책임과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5절: ‘덫(창애)’이란 새를 잡기 위한 그물을 말합니다. 사람이 덫을 은밀히 놓아 새를 잡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오래 전부터 계획하셨던 재앙으로 저들의 죄를 벌하십니다. 재앙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저들은 재앙을 선포하는 아모스의 예언을 업신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재앙을 우연으로 생각하는 자는 회개하기 어렵습니다. 이번에 미국 굴지의 투자은행 중 하나였던 Lehman Brothers가 파산하고 Merrill Lynch가 Bank of America에 극적으로 구제 합병되었고 AIG는 미국의 연방 준비기금(Federal Reserve)으로부터 850억불이라는 거금으로 구제하는 등, 국제 금융권에 거대한 위기가 몰려오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자칫 이것은 전 세계에 미치는 재앙을 낳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현상 또한 우리가 영적으로 분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 세상의 재물이 얼마나 헛된 물거품이 될 수 있는지를 인식하면서 먼저 주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 모든 생활에 검소, 절약하면서 초대 교회 성도들처럼 더욱 나누며 섬기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6절: 비상 나팔은 전쟁이 일어났음을 알리는 신호입니다. 전쟁은 대부분의 경우 하나님의 징계하시는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행하던지 사명 있는 자에게는 그 비밀을 알려준 뒤에 재앙을 내리기도 하시고 보호하기도 하시므로 사명을 맡은 자로서는 두려운 마음으로 떨며 순종해야 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자연적이든 인위적이든 ‘재앙’이 임할 때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하고 회개하면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7절: 하나님께서는 범죄에 대한 징계도 먼저 예고하신 후 심판을 행하십니다. 가령, 노아의 홍수, 소돔과 고모라, 애굽에 내린 열 가지 재앙 등 대부분의 경우가 그러합니다. 그러나 본 절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이러한 예고는 영적인 통찰력을 가진 사람에 의해서만 감지될 수 있는 하나님의 비밀에 속합니다. 선지자를 선견자라고도 하는데 먼저 알고 보는 영적 통찰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언자는 이것을 미리 선포해야 할 사명을 받은 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전적으로 열린 마음으로 엎드릴 때 주님의 뜻을 알려 주실 것입니다.

8절: ‘사자가 으르렁거리는데’라는 말씀은 하나님 심판 선포의 상징적 표현으로서 임박한 전쟁과 멸망의 예고를 가리킵니다(사 5:29; 렘 2:15). 이 구절은 아모스가 자기의 예언이 여호와에 의한 것임을 밝혀 줍니다. 예언자의 말씀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니, 듣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듯이 경외하는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바울의 전도를 받을 때 사람의 말로 듣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살전 2:13).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으려면, 이러한 선지자의 태도로 해야 합니다. 즉, 우리가 사자를 무서워는 그 이상으로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두려워해야 합니다.

9-10절: 둘째 내용으로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을 심판하실 수밖에 없는 까닭은 그들의 범죄가 심각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아스돗과 이집트 사람들에게 사마리아로 와서 보라고 합니다. 무엇을, 왜 보라고 하였을까요? 아스돗(앗수르의 잘못된 표기라고 한다)과 애굽은 이방나라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들을 하나님 심판의 증인으로 삼겠다는 말입니다. 이들로 곧 멸망할 이스라엘의 현실인 무질서와 학대를 보라는 말입니다. 왜 보라고 할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선민도 범죄하면 가차 없이 심판하는데 하물며 이방인이겠습니까! 여기서 ‘폭력’은 불의와 가혹함과 무자비함을 가리키고, ‘강탈’은 파괴와 약탈과 살상을 뜻합니다. 이것은 잔인무도한 권력자들의 사회적인 범죄상을 말합니다. 이방 나라들에서도 사마리아처럼 포학을 행하지 않음을 지적하면서, 하나님을 알만한 이스라엘이 타락한 것을 통탄하십니다.

11-12절: 그러므로 마지막으로 이제 이스라엘은 원수들의 포위를 당하여 피할 수 없이 될 것을 말씀합니다. 이것은 실제로 주전 722년에 앗수르의 침략으로 성취됩니다. 왕궁에서 사는 자들도 극소수로 구원받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진노 중에도 소멸되지 않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은 남은 성도들의 구원의 근거가 됩니다.

13-15절: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벧엘에 제단을 만들어 놓고 자기 나름대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벧엘은 야곱시대부터 이스라엘의 신앙 중심지였지만 이제는 우상 숭배의 중심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어떤 죄를 지었더라도 벧엘 제단에 나아가면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단을 헐고 제단의 뿔을 파괴하십니다. 여기서 ‘제단의 뿔’이란 제단을 대표하는 부분으로 속죄의 능력, 권위와 영광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믿고 의지하던 우상은 파괴될 것인데 이러한 멸망은 이미 하나님의 사람이 예언한 바 있습니다(왕상 13:1-3).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자랑하는 상아궁, 왕과 귀족들의 부패의 온상인 상아궁도 파괴하십니다. 사람이 범죄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심판이 늘 머물러 있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믿음을 선물로 주셔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분을 더 알고자 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성도가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받고도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과 영광을 변질시키는 교리와 내용을 따른다면, 그것은 큰 죄입니다.

애굽 땅에서 노예로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애굽에서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이나 권세가 없었습니다. 비록 그들이 번성하여 바로 왕이 위협을 느낄 정도였다고는 하지만 애굽을 넘어뜨리고 독립할 만큼 강한 형편은 아니었습니다.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 국가를 세울 만큼의 힘이 있었던 것은 더욱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맺으셨던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의 후손들을 애굽의 땅에서 구원하셔서 정하신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으로 인도되는 모든 여정에서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였고, 그들의 생존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되는 것임을 직접 경험하였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구체적으로 국가적인 형태를 취할 수 있도록 그분의 뜻을 담고 있는 백성의 삶의 방식을 율법으로 제시하셨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반영하여 하나님의 지혜와 성품을 드러내는 백성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이 비취는 민족입니다.

그런데 그 민족이 이제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의 삶의 지표가 되는 율법을 주셨음에도, 그 율법과 반대되는 삶을 살며 하나님의 진리를 왜곡시키는 범죄를 저질렀던 것입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말씀하셨음에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렸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을 향한 자신의 뜻을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이 모든 악을 저질렀으니 내가 너희를 처벌하겠다." (아모스 3장 2절 후반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가장 근본적인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시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진리를 순종하지 않고 그것을 왜곡시켜 이방 민족들과 다를 바 없는 태도를 취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에 대한 보응을 하시겠다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 2절은 우리에게도 무서운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정한 판단으로 우리 모든 삶에 대하여 심판하십니다.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이 책에 적힌 예언의 말씀을 봉인하지 말아라. 이제는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도록 내버려 두고, 더러운 자는 그냥 사람이 더러운 채로 내버려 두어라. 의로운 사람은 그대로 의를 행하게 하고, 거룩한 사람은 그대로 거룩한 사람이 되게 하여라. 보아라, 내가 곧 가겠다. 나는 너희 각 사람에게 그 행위대로 갚아 주려고 상을 가지고 가겠다." (계 22:10-12) 그렇다고 이 구절이 행위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이 구절들은 하나님 앞에서 불의한 자에게 두려움을 주며,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더욱 성도로서의 삶을 살아가도록 위로하는 말씀이 됩니다.

북이스라엘은 아모스 선지자를 통하여 선포되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듣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이며, 세속적인 행동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가를 깨달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해서 선지자들을 배격하였고, 오히려 멸시하며 죽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배도적인 행위를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된 것은 전적으로 주의 은혜임을 고백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고 말씀하신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엄하신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그들에게 두려움이 아니라 그들이 어떤 존재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며, 오히려 참된 길을 가르쳐 주시는 축복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뜻만을 준행하는 민족임을 알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자유롭고 영광된 것인지를 깨달았어야 했습니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에게 아모스 선지자를 통하여 진노의 말씀을 하고 계시지만, 정작 하나님의 마음은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으로서, 자신의 백성이 죄에서 떠나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사랑의 말씀이었음을 이스라엘은 알아야 했습니다.

우리가 아버지의 사랑을 생각해봅시다. 우리 중에는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분들이 있을 수 있으나, 이상적인 아버지를 전제하면서 보면, 자녀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은 그 자녀가 한 인간으로서 온전히 살아갈 수 있도록 자녀에게 최선을 다해 배려해주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녀가 올바르지 못한 일을 할 경우 아버지는 그 자녀가 깨닫도록 타일러 주는데, 그 자녀가 타일러도 되지 않는 경우에는 그에 상응한 벌을 내리게 됩니다. 이 벌은 자녀의 행동을 지적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벌을 통하여 바른 길로 인도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깨우쳐 주실 때, 늘 형통한 길만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그 백성으로서 살지 못할 경우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연약함을 깨닫도록 징계하십니다. 그러기에 이와 같은 징계는 하나님의 백성을 '벌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세우기' 위한 징계이기에 하나님의 사랑이 깊이 배어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모스를 통해 말씀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아듣고 돌아왔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이 회개하면,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시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해야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용서하시고 새로운 길을 열어 주셨을 것입니다. 이처럼 아모스서에 나타난 심판의 말씀에는 사실 하나님의 은혜가 담겨 있으며 하나님의 사랑이 품어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늘 행복한 길만 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에게 그런 슬픔을 주셨을까'하며 의심해야 할까요? 그러나 가난과 해를 당하는 고난이 성도에게 있을 경우, 그 고난은 성도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축복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고난을 받아들일 수 있는 성숙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에서는 고난을 당하는 성도의 태도가 그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이뤄 가시는 '선'을 기대하는 것이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성도에게 임하는 고난이 몸으로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라 하더라도, 그 안에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으며 성도를 성도답게 이끄시는 힘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족하고 미련하고 연약한 우리에게 주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도록 우리에게 신앙을 주셨고, 그 신앙이 꽃을 피우도록 인내하시면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고난의 어려움을 주시기도 하고 인간의 정욕대로 내버려두시는 경우도 있지만, 언제나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셔서 하나님의 지혜와 성품이 드러나도록 인도하십니다. 여기에 성도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향한 이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새겨 나가시길 바랍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먼저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자들 징계하신다는 사실입니다(1-2절). 사랑하기 때문에 징계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잘못해도 전혀 징계하시지 않으면 더 두려워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요, 버린 자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재앙을 선포하시는 것은 헛된 말씀이 아니라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사명가진 택한 자에게 대하여 어떻게 행하시는 것을 가르칠 때에 하나님의 절대적인 예언의 말씀을 따라서 행하시므로 판단을 내린다는 것입니다.

또한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둡니다. 오늘 우리가 회개하여야 할 점을 가지고 함께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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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  아모스 6장 강해 (Amos 6)     Y.J. Choi 2008·10·23 4117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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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모스 3장 강해 (Amos 3)     Y.J. Choi 2008·09·18 6019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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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  부모 사명문 (인용한 글)     Y.J. Choi 2008·05·20 3487 216
178  미가서 7장 강해 (Micah 7)     Y.J. Choi 2008·05·15 7357 286
177  미가서 6장 강해 (Micah 6)     Y.J. Choi 2008·05·09 7438 260
176  미가서 5장 강해 (Micah 5)     Y.J. Choi 2008·04·25 8667 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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