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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2장 강해 (Amos 2)
Y.J. Choi ( HOME )09-11 15:34 | HIT : 6,447 | VOTE : 270
수요 예배
성경: 암 2:1-16
제목: 모압, 유다,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오늘은 계속해서 아모스 2장을 상고하겠습니다. 1장에서는 아모스가 다메섹, 블레셋, 두로, 에돔, 암몬에 대해 심판을 선포한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이 모든 나라들이 이스라엘과 인접해 있었고 틈만 나면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살인과 약탈을 일삼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한 행위 즉, 이스라엘을 침략하고 불의를 행하는 행위 때문에 이 나라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이제 2장에서는 열방에 대한 심판의 결론으로 모압과 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의 심판을 다룹니다. 이것은 결국 아모스 예언의 궁극적인 강조점은 이스라엘에게 집중됨을 보여 줍니다. 여기서 아모스는 특히 하나님께서 심판을 돌이킬 수 없는 죄가 무엇인지 즉,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는 죄가 무엇이냐 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줍니다.

먼저 1-3절에서는 모압에 대한 심판을 선포합니다. 모압은 롯의 큰 딸이 낳은 아들의 후손입니다. 모압은 가나안 입성 직전에 발람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했고(민 22-24장), 바알브올에서 이스라엘을 범죄케 했으며(민 25장), 사사 시대에는 18년 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혔습니다(삿 3:12-30). 특히 본문에서는 모압이 저지른 인륜에서 벗어난 반인간적인 범죄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 모압 족속의 신은 그모스인데 이들은 사람을 죽여 제물로 삼아 자기들의 신에게 바치곤 했습니다. 그만큼 저들은 인체에 대하여 잔인한 짓을 하기가 예사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남을 잔인하게 죽이는 죄는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곧 하나님의 형상을 범하는 것이며 이것은 직접적으로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예언된 ‘모압’의 멸망 사건은 후에 바벨론의 침략으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4-5절: 하나님께서 이방 국가를 심판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전 세계를 다스리심을 나타내 주는 증표이며 이것은 또한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나타내는 증표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이방 국가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주적인 통치자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이방이 심판을 받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만을 유독 특별하게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들을 침략한 대가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유다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이방 국가들까지도 모두 사랑하십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열방들 중에서 특별히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셔서 하나님이 살아 계신 분이시며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분이심을 드러내도록 하셨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스라엘을 선민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을 특별히 선택하였기 때문에 지금의 이스라엘을 타 국가들 보다 더 사랑한다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유다와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그의 다스림을 떠난다면 이방이 당할 심판과 꼭 같은 심판을 받는 법입니다. 오히려 이방은 하나님의 나라를 침략하는 사단의 도구로 사용된 대가로 심판을 받는 반면에,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대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이 4-5절의 말씀에서 잘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과 유다가 오히려 이방보다도 먼저 심판의 대상이 됩니다. 이방은 유다나 이스라엘을 침략하지 않는 한 그것으로 인하여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이방을 침략하기 때문에서가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을 바로 섬기지 못한 대가로 재앙을 받거나 이방의 침략을 당하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심판하심으로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선포하고, 이방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함으로써 이스라엘 민족을 사용하실 뿐입니다. 또한 이방의 구원을 위하여 언제나 이스라엘 민족을 심판하시는 중에서도 의로운 남은 자를 남겨 두신다는 점에서 이방과 이스라엘 민족을 구별하십니다.

곧 이방을 심판하실 때는 하나님께서 주신 양심의 법으로 심판하시지만(롬 2:12, 14-16), 이스라엘 민족을 심판하실 경우에는 오히려 정화를 목적으로 하신다는 점입니다. 그 심판을 통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새롭게 하시며 쭉정이를 걸러내고 알곡만을 모아들이는 선별작업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유다나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되 오히려 이방보다도 더욱 철저하게 심판하십니다. 그러나 이방은 완전히 멸절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 중에서 구별된 알곡 즉, 남은 자를 남겨두시어 인류의 구원을 위해 계속 보존하십니다. 그 목적은 하나님의 우주적인 구원계획을 이루어 가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민족은 자기들이 이방과는 다르므로 결코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착각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이 마침내 잘못된 선민의식으로 자라났고, 드디어는 국수주의로 발전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이방에 대하여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자로 여긴 반면에, 자기들만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영원한 복과 기업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유다, 이스라엘이나 이방이나 하나님을 거역하면 꼭 같이 심판을 받습니다.

가령, 북이스라엘 왕국은 여로보암 1세가 건국할 때부터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를 세우고 우상숭배를 자행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왔었습니다. 더 나아가 아합 왕 시대에는 아예 하나님께 대한 인식마저도 버리고, 바알을 숭배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이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라고 자만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엘리야 선지자가 외쳤던바 "여러분은 언제까지 양쪽에 다리를 걸치고 머뭇거리고 있을 것입니까? 주님이 하나님이면 주님을 따르고, 바알이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십시오."(왕상 18:21)라는 신앙의 촉구에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북 이스라엘왕국은 마침내 이방과 마찬가지로 지상에서 멸절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때까지 언급한 모든 이방들을 벌하신 것은, 단지 저들이 사람들을 상대로 잘못한 죄(인륜상 잘못한 죄) 때문이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이방인들이 ‘여호와의 율법’을 지키지 못한 일에 대하여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저들이 저지른 종교적인 범죄에 대해서도 죄악시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저들을 심판함에 있어서 종교적 문제보다 인륜 문제를 취급하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저들에게는 율법을 주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시지 않은 것을 달라고 하시지는 않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유다와 이스라엘에게 일찍이 율법을 주시고 하나님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유다와 이스라엘을 벌하심에 있어서는 종교적 문제를 따지고 계십니다. 즉 저들이 여호와의 율법을 멸시하고 우상 숭배에 몰두한 종교적인 죄악을 따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멸시하며 미혹을 시키는 거짓을 따라가는 죄는 돌이킬 수 없는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유다라도 하나님의 법을 멸시할 때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대적이 됩니다.

우리의 죄 된 인간성은 악하여서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하나님처럼 혹은 그 이상으로 사랑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쉽게 우상 숭배에 떨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준수하지 않고 멀어질 때, 우리는 자동적으로 다른 무엇을 하나님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러한 우상들이 없는지 계속해서 우리 자신을 말씀에 비추어보고 점검해보아야 하겠습니다.

6절-8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근거로 제시한 증거로서 이스라엘의 죄악상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죄악은

6절: 사회 정의가 무너지고, 비인간적인 탐욕이 가득 차서 물건을 가지고 의로운 사람을 팔기도 하고 사기도 하는 죄로서 이것은 그리스도를 판 가룟유다의 죄와 같은 것입니다. 즉 재판장이 불의하게 뇌물을 받고 판결한 것을 뜻합니다. 이는 인권을 무시하며 공의를 어긴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들, 고아, 과부, 나그네들을 특별히 사랑하시면서 그들을 잘 돌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출 22:22-23)

7절: 가난한 자를 멸시, 학대하고. 가난한 자의 것을 탐내며 자녀를 잘못 지도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는 죄입니다. (잠 14:31) 여기서 ‘여자’란 당시 바알 신전에 있던 창녀들을 의미합니다. ‘다녀서’라는 말이 미완료 시제로 쓰여 있는데 이것은 당시 성적 문란함이 얼마나 심했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8절: 알맹이는 없는 형식적인 신앙생활입니다. 전당잡은 옷을 밤에는 돌려주어야 함(출 22:26-27; 신 24:12-13)에도 불구하고 이를 시행치 않았으며, 종교적으로 마시는 포도주도 착취로 얻어진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1) 의인을 천대하며 2) 가난한 자를 멸시하고 3) 가난한 자의 망하는 것을 보기 좋아하며 4) 음란하고 5) 잔인무도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어떤지 겸손히 자신을 돌아보십시다.

9-12절: 여기서는 다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에 대해 말씀하면서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계속 지속되어 왔다는 사실을 말씀합니다. 즉 자기 힘만으로는 도저히 정복할 수 없었던 아모리족을 비롯한 가나안 원주민들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진멸하였던 것입니다. 특히 본문에는 나실 인과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비를 경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죄를 범한 이스라엘에 대한 아모스의 안타까움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를 힘입어서 구원을 받고도 예언의 말씀을 무시하는 일은 돌이킬 수 없는 죄이며 이것은 배도적인 행동이 되므로 용서할 수 없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

13-16절: 이 부분은 1-2장의 결론이 되는 부분으로 일차적으로는 범죄한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차적으로는 범죄한 모든 열방에 대하여, 확대하면 오늘날 패역한 죄를 지은 모든 자들에게도 적용됩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 범죄한 자는 도망칠 시간도 없고, 도망할 길도 찾을 수 없으며, 도주를 시도할 힘이나 정신도 없이 막다른 골목에 몰려 멸망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무거운 짐을 실은 수레바퀴로 누르는 것 같이 환란과 재앙이 올 때 피할 수 없이 다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무겁게 내려 누르는 수레는 건너뛰지 않고 모조리 그 길을 누르며 나아갑니다. 그 길의 어느 한 토막이라도 빼놓지 않습니다. 요컨대 하나님은 참되신 신이시니 진리대로 심판하고 진리대로 보호하시며 축복하심을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타민족과 다르게 생각하여 심판하시는 것은 열방 중에서 특별하게 이스라엘만을 선별하시어 주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셨고 영원한 상속자(기업을 이을 자)로 삼으셨음은 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 조상(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의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은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내셨으되 응당의 대가(속량)를 치루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온전히 하나님의 소유인 것을 선언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특별한 사랑과 축복을 받은 이스라엘이기에 하나님은 세상 어느 민족보다도 그들을 아끼셨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주장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이스라엘을 탐하거나 업신여길 수 없습니다. 만일 이스라엘을 탐낸다면 하나님의 소유권에 대한 도전이 될 것이며, 이스라엘을 업신여긴다면 그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런 도전에 대해 무엇보다도 냉철하게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반면에 이와 같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호와 사랑을 받은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해야만 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자신들의 삶을 위하여서가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들의 이익과 이상을 구현하기 위한 삶이 아니라 모든 기준을 하나님께 두고 궁극적인 목적까지도 하나님께 두는 새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4-5)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중심주의적인 삶을 표현한 것이 곧 예배였습니다. 그러므로 예배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 그 사랑에 감복하여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예배는 결단코 주술적인 성격을 띠지 않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기 위하여 예배 행위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배는 어디까지나 온전한 사랑에 대한 감격으로 내 자신을 신령과 진정으로(요 4:23-24) 드리는 것이지 무엇을 더 받으려고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가리켜 바울 사도는 "거룩한 산제사"라고 말합니다(롬 12;1). 그러므로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온전히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만이 주인이시며 자기 자신을 다스리시는 유일한 왕이심을 고백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고백으로 예배를 하고 자신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린 사람이라면 이제부터 자신의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온당한 요구에 합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모습을 가리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갈 6:24)고 하면서 자기는 십자가와 함께 죽었다고 말합니다(갈 2:20).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신령한 이스라엘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도 만약 특권의식에 사로잡혀서 교만하여진다면, 그리고 하나님의 법을 무시한다면 주님께서 분명히 우리도 심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 부르신 것은 분명코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 속에서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받는 심판보다는 우리 믿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더욱 엄중함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루하루 순간순간 우리는 이 물질적인 풍요 때문에 더 큰 유혹과 시험이 다가옴을 잊지 말고 항상 말씀과 기도로 깨어 주님의 축복에 감사하면서 우리를 향하신 그 온전하신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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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S U B J E C T NAME DATE HIT   VOTE
190  아모스 6장 강해 (Amos 6)     Y.J. Choi 2008·10·23 4221 254
189  아모스 5장 강해 (Amos 5)     Y.J. Choi 2008·10·17 7768 266
188  아모스 4장 강해 (Amos 4)     Y.J. Choi 2008·10·08 3763 231
187  아모스 3장 강해 (Amos 3)     Y.J. Choi 2008·09·18 6175 261
 아모스 2장 강해 (Amos 2)     Y.J. Choi 2008·09·11 6447 270
185  아모스 1장 강해 (Amos 1)     Y.J. Choi 2008·09·04 9535 308
184  한국 교회를 사랑으로 섬긴 한 독일 목사님 One German pastor who served Korea     Y.J. Choi 2008·08·23 3883 261
183  요엘 3장 강해 (Joel 3)     Y.J. Choi 2008·06·27 7672 278
182  남전도회 헌신예배 설교 Sermon for Men's group dedication service     Y.J. Choi 2008·06·19 3798 258
181  요엘 2 장 강해 (Joel 2)     Y.J. Choi 2008·06·12 9662 294
180  요엘 1 장 강해 (Joel 1)     Y.J. Choi 2008·05·23 9013 274
179  부모 사명문 (인용한 글)     Y.J. Choi 2008·05·20 3551 222
178  미가서 7장 강해 (Micah 7)     Y.J. Choi 2008·05·15 7493 292
177  미가서 6장 강해 (Micah 6)     Y.J. Choi 2008·05·09 7606 266
176  미가서 5장 강해 (Micah 5)     Y.J. Choi 2008·04·25 8844 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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