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Korean Church of Brussels! 브뤼셀 한인교회

 
 
 
 















아모스 1장 강해 (Amos 1)
Y.J. Choi ( HOME )09-04 04:52 | HIT : 9,323 | VOTE : 296
성경: 암 1:1-15                                제목: 열방에 대한 심판                              

오늘부터 아모스서를 함께 상고하려고 합니다. 먼저 선지자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선지자 혹은 예언자란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아 하나님의 대변자로서 인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자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은 자로서 언행으로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면서 자기 시대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 것과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그 시대 상황에 적용해야 할 것을 가르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예언자들은 자연 현상을 통해서 내려지는 재앙과 심판의 의미를 해석해 주는 "자연의 해석자"였고, 역사의 현실 속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일깨워 주는 "역사의 해석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예언자들은 자신의 사명이 여호와께로부터 비롯한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기에 자기 시대의 종교 및 사회상을 고발함에 있어 조금도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밝혀 주면서 이러한 역사관을 배척하는 백성들의 생각들을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그들은 역사가 하나님의 계시의 현장이요 하나님의 활동무대로 보았으며 동시에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그 당시 역사를 이해했습니다. 나아가 예언자들은 이 역사의 현상 속에서 계속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새로운 구원의 역사를 선포하였습니다.

이러한 면에서 아모스는 아주 대표적인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동포를 사랑하면서도 하나님 말씀을 가감하지 아니하고 단호하게 전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확신이 있었고 투철한 정의감이 있었기에 철저한 사회 고발과 경고의 메시지를 선포했던 것입니다. 아모스는 호세아와 거의 같은 시대에 같은 지역에서 예언한 선지자로서 역사적 배경을 공유하면서도 하나님의 의를 달리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모스는 하나님의 ‘정의’에 대하여 확신에 찬 예언을 한 반면에 호세아는 하나님의 ‘사랑’의 확신에 찬 예언을 하면서 상호 보완합니다.

아모스는 12 소 예언서 중 세 번째 책으로 소개되고 있으나 그의 예언이 제일 먼저 기록되었습니다. 신학자 훔발트는 아모스를 ‘정의를 부르짖는 투사’라고 하였고 한스 볼프는 아모스서를 "고성능의 폭탄"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아모스가 당대 기득권층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하고 고독한 투쟁을 하면서 평등하고 자유로운 정의를 외쳤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당시 사회가 정의부재의 사회임을 알 수 있는데 그가 활동한 시기는 여로보암 II세 때였습니다.

아모스의 메시지는 당대의 사회악, 특히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억누르고 괴롭히던 착취성과 부정, 또한 민족의 성격을 해친 부도덕과 사치추구에 대한 죄악을 공격했고 이 모든 것은 여호와께서 반드시 응징할 죄악으로 보았습니다. 아모스는 언약이라는 말 자체는 쓰지 않고 있지만 민족의 죄악을 언약법을 배경으로 하여 예언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한 것이 이스라엘에 대한 보호를 보증한다거나 제사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비난했고 오직 정의를 실현하는 경우에만 희망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아모스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이 언약을 어겨 짓는 모든 죄악을 복수하리라고 믿었습니다.

또한 아모스의 신관은 여호와께서 만민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스라엘을 위한 예언으로 시작하지 않고 만민이 하나님께 순종할 것을 먼저 예언합니다. 아모스가 1장과 2장에서 열거하고 있는 나라들은 작은 나라들이지만 하나님은 각 나라의 역사적 문제에 관심이 있으시다는 것을 서너 가지 죄를 열거하는 장면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역사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나라의 역사에도 관심을 가지고 계심을 뜻하는 것입니다.

아모스와 호세아 이 두 예언자의 대표적인 언어라 할 수 있는 ‘정의와 사랑’을 분리시켜서 사랑은 개인적 관계에, 그리고 정의는 제도적 관계에 적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성경적인 관점에서 정의의 추구는 자기의 몫을 주장하는 것에서 한발자국 더 나아가 이웃을 위해서 자기 몫을 포기할 수 있는 각오가 필요한데 이것은 사랑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즉 이웃 사랑이 정의 추구의 동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모스와 호세아는 그들이 알고 있는 하나님에 대해서 그릇되게 인식하고 행동하는 그의 동족을 향하여 아모스는 정의를 중심으로 호세아는 사랑을 중심으로 예언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두 예언자의 두 개념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아모스라는 이름은 "짐 지는 자"라는 뜻입니다. 아모스의 직업과 신분에 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으나 이스라엘 사회의 일반 대중을 이루고 있던 한 사람으로서 자신을 베들레헴 남쪽 드고아의 목자라고 소개합니다.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사람으로서 직업적 예언자도, 제사장 가문의 자손도 아닌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요, 가난한 평신도였습니다(7:14). 하나님께서는 이 미천한 목자 아모스를 들어 위대한 사역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비록 약하고 우둔하지만 주님은 강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만 의지할 때 주님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남유다 사람으로 북이스라엘을 향하여 B.C. 750년경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은 그만큼 북 이스라엘에는 여호와의 말씀과 이상이 희귀했음을 보여줍니다(8:11). 이 당시에는 남유다 왕국의 웃시야 왕이 주변 국가들을 정복하여 왕성하였고(대하 26장), 북 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 말기로서 가장 부강한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빈부의 격차가 점차 심화되기 시작했고, 물질주의 탐욕이 팽배하던 때였습니다. 사람들은 더욱 부를 축적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난한 자들과 하류층 사람들을 수탈했고 멸시했습니다. 나아가 성적인 방종이 심화되었고, 예배는 형식화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난한 한 목자 아모스가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은 것은 매우 뜻있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장의 내용은 전체적으로 볼 때 ‘목자의 초장이 시드는 죄’(요절 2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배도적인 정치와 종교로 변해갈 때 무서운 지진의 불로 징벌할 2년 앞을 놓고 아모스에게 말씀이 임했습니다(1절, 슥 14:5).

이것은 소위 목자의 초장같이 말씀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바로 지도해야 될 사람들이 배도적인 행동을 할 때에 택한 자들이라도 심판을 받게 됨을 강조합니다. 이들은 먼저 남을 압박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고의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압박하는 것은 심판 받을 행위라는 것입니다(2-5절).

2절에 ‘시온’과 ‘예루살렘’은 같은 곳을 가리키는 두 명칭으로서 여호와의 계시처, 즉 그의 교회를 상징합니다. ‘목자의 초장이 시든다(애통한다)’는 말씀은 유다의 남방 초원지가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재앙 때문에 마른다는 것입니다. ‘갈멜산 꼭대기가 마른다’는 말씀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 때문에 시들어 쇠할 것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이것은 남북 왕조가 모두 가장 큰 환난을 당할 것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3-5절은 다메섹에 대한 심판의 예언입니다. 여기에는 다메섹을 수도로 하는 아람(수리아)이 지은 죄와 심판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아람은 하사엘과 그의 아들 벤하닷 때에 가장 심하게 이스라엘을 압제했습니다(왕하 13:3). 그 때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가 살던 길르앗 지역은 아람의 위협을 계속해서 받았던 것입니다. 아람은 단순히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괴롭힌 것이 아니라 매우 악랄한 방법으로 인간성을 말살했으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됩니다. 특히 ‘쇠도리깨(철타작기, sledges having iron teeth)’로 타작하듯 길르앗을 압박하였다고 했는데 이것은 당시 이빨 달린 쇠 바퀴들을 가진 차인데 이것을 굴려 집을 부서뜨렸다고 합니다. 이렇게 전쟁을 좋아하던 그들은 전쟁으로 인하여 황폐해지며 왕조가 단절되어지는 형벌을 받게 됩니다. 이 예언은 주전 732년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셀 3세의 정복 전쟁으로 인하여 완전히 성취되었습니다(왕하 16:6-9). 하나님의 공의는 행한대로 갚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두려워해야 하겠습니다.

6-8절은 블레셋에 대한 심판입니다. 가사, 아스돗, 아스글론, 에그론과 가드 등 5개 도시로 구성된 블레셋의 범죄와 심판에 대한 언급입니다. 상업을 했던 블레셋은 유다를 침략하여 여호람의 가족들과 왕국의 재물을 약탈해 갈 때(대하 21:16-17), 많은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 에돔에게 넘겼습니다. 산헤립의 유다 침공 때에도 블레셋으로 피난 간 사람들을 헬라인에게 팔아 넘겼습니다(요엘 3:4-6). 이러한 인신 매매 특히 적성 국가인 에돔에 팔아넘긴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로 하나님의 큰 심판을 야기했습니다. 블레셋은 웃시야 왕과 히스기야 왕 때 크게 파괴되었으며(대하 26:6-7; 왕하 18:8), 그 후 애굽, 바벨론, 헬라의 침입을 받았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결코 악을 묵과하지 않으심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9-10절은 두로에 대한 심판입니다. 두로 왕 히람과 이스라엘의 왕 다윗과 솔로몬이 맺은 형제 계약, 즉 상대방을 노예로 팔지 못한다는 언약(삼하 5:11; 왕상 5:1-12; 9:13)은 두로의 일방적인 파기로 무너집니다. 이 두로는 결국 주전 332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두로를 함락시킴으로써 약 3만 명의 거민들을 노예로 팔고, 수천 명의 지도자들을 사형시킴으로 성취됩니다. 하나님과의 언약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약속도 우리는 지켜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반드시 약속을 지키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신실한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사회 정의의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11-12절은 에돔에 대한 심판입니다. 하나님께서 미워하신 에돔의 죄악은 형제를 긍휼히 볼 줄 모르고 항상 분을 품고 무자비한 일을 한 것입니다. 모세는 에돔을 이스라엘의 형제라고 불렀고(민 20:14), 에돔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신 2:4, 8). 그러나 에돔은 출애굽의 행로를 막았으며(민 20:14-21),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공격할 때에 바벨론의 앞잡이 노릇을 했습니다(옵 1:11-14).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셨으므로 우리도 이웃에게 긍휼을 베풀어야 합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일이 없도록 늘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13-15절은 암몬에 대한 심판입니다. 암몬은 원래 롯의 작은 딸이 낳은 아들 벤암미의 자손으로 늘 이스라엘에 적대적이었습니다. 암몬은 영토 확장에 대한 지나친 욕심에서 아람과 동맹을 맺고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이러한 비인도적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이들 역시 하나님의 심판으로 주전 580년경 바벨론 느부갓네살에 의하여 멸망당합니다. 여기서 ‘랍바’는 암몬의 수도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형제에게 사랑을 베풀지 않고 고의적으로 이런 행동을 하는 자는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아모스가 심판을 선포한 다메섹, 블레셋, 두로, 에돔, 암몬은 모두 이스라엘과 인접해 있던 나라들이었습니다. 이 나라들은 한 때 다윗에 의해 정복되었다가 이스라엘이 소란한 틈을 타 모두 독립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 나라들은 틈만 나면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살인과 약탈을 일삼았습니다. 그런데 아모스는 이러한 행위 즉, 이스라엘을 침략하고 불의를 행하는 행위 때문에 이 나라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왜 이방이 이스라엘을 침략한 것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되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특히 이스라엘의 패역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된 이방이 이스라엘을 침략했다는 이유로 심판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리는 나라, 신정국가(Theocracy)입니다. 이런 뜻에서 이스라엘은 지상에 건설된 하나님의 나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 나라를 유지하기 위한 각종 정치적인 제도는 하나님의 나라와 꼭 같지는 않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리시기 위해 제정해 놓으신 것이었습니다. 가령, 이스라엘은 군대 제도가 없었습니다. 어느 때든지 이스라엘이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기만 하면 결단코 외적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지형적으로 볼 때 농사를 짓기 위한 수리 관개 시설을 갖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봄과 가을에 적당한 양의 비가 오질 않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런 가나안 땅에서 농사가 잘 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당히 내려주는 것뿐이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생업을 위한 농사가 순조롭기 위해서는 그리고 외적의 침입이 없이 안전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간섭이 절대적인 조건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에 가뭄 때문에 흉년이 든다든지 외적의 침입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외면하신 심판의 증표였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철저하게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살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하나님을 바라보고 사는지는 그들에게 주어진 율법에 규정된 대로 사느냐에 따라 달려 있었습니다. 그 율법에 따라 절기마다 제사를 드리고 가난한 자들과 이웃들을 돌아볼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하시고 복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에 빠지고 정치적으로 부패하고 윤리적으로 타락할 때,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경고하시고 때로는 주위 이방 국가들을 사용하시어 이스라엘을 침략하도록 하십니다. 그럴 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다시 찾고 자기들의 죄를 뉘우치면 하나님께서 국가들을 물리쳐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방이 이스라엘을 침략할 때 그들이 하나님의 도구로 이스라엘을 징벌한다는 의식을 가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자기네들의 이익 관계를 따져서 이스라엘을 침략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입을 때조차도 어떻게든지 이스라엘을 속박하고 노략하려고 했으며, 더 나아가 이스라엘을 완전히 멸절시켜 자기들의 종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바로 이 점이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요소가 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지상에 건설된 하나님의 나라인데도 불구하고 이방 국가들은 자기들이 이스라엘을 점령하여 다스리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정면으로 거역하는 것이며, 나아가 지상에 건설된 하나님의 나라까지도 멸절시키려 하는 사단의 흉계의 발로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누구도 그들을 주장할 수 없는 법입니다. 그러나 이방은 호시탐탐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멸절시킴으로써 자기들의 이익을 추구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의 구현인 하나님 나라까지도 지상에서 없애 버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물론 이방이 이런 것까지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사단의 흉계는 이처럼 미묘하여서 이스라엘을 송두리째 삼켜 버리려고 하는 사단의 도구로 사용된 것입니다. 더군다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전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유일한 도구로 선택된 특별한 나라였기 때문에 사단은 어느 때고 이스라엘을 멸절시키려 했습니다. 그 이스라엘을 통해 구원자 메시아가 오는 날에는 사단이 완전히 패배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방이 이스라엘을 침략한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자기네들의 정치적인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지만, 내면적으로는 하나님의 통치의 구현을 저지하려는 사단의 음모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나라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되는 것은 그들이 스스로 자고하며 교만에 빠지고 하나님의 통치를 거역한 대가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그들의 배후에 있는 사단이 심판을 받는 것과도 같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사탄은 결단코, 어떤 모양으로든 하나님의 대적이 될 수 없음을 오늘 본문이 말씀하는 이방이 당할 심판에서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말고 이미 승리하신 주님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신앙생활이 승리의 생활이 되도록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말씀과 기도로 늘 깨어있는 삶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추천하기   목록보기

NO S U B J E C T NAME DATE HIT   VOTE
190  아모스 6장 강해 (Amos 6)     Y.J. Choi 2008·10·23 4117 247
189  아모스 5장 강해 (Amos 5)     Y.J. Choi 2008·10·17 7568 259
188  아모스 4장 강해 (Amos 4)     Y.J. Choi 2008·10·08 3697 224
187  아모스 3장 강해 (Amos 3)     Y.J. Choi 2008·09·18 6019 255
186  아모스 2장 강해 (Amos 2)     Y.J. Choi 2008·09·11 6316 264
 아모스 1장 강해 (Amos 1)     Y.J. Choi 2008·09·04 9323 296
184  한국 교회를 사랑으로 섬긴 한 독일 목사님 One German pastor who served Korea     Y.J. Choi 2008·08·23 3817 255
183  요엘 3장 강해 (Joel 3)     Y.J. Choi 2008·06·27 7519 271
182  남전도회 헌신예배 설교 Sermon for Men's group dedication service     Y.J. Choi 2008·06·19 3719 252
181  요엘 2 장 강해 (Joel 2)     Y.J. Choi 2008·06·12 9412 282
180  요엘 1 장 강해 (Joel 1)     Y.J. Choi 2008·05·23 8778 262
179  부모 사명문 (인용한 글)     Y.J. Choi 2008·05·20 3487 216
178  미가서 7장 강해 (Micah 7)     Y.J. Choi 2008·05·15 7356 286
177  미가서 6장 강해 (Micah 6)     Y.J. Choi 2008·05·09 7438 260
176  미가서 5장 강해 (Micah 5)     Y.J. Choi 2008·04·25 8667 267

    목록보기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1][2][3] 4 [5][6][7][8][9][10]..[16]   [다음 10개]

Copyright 1999-2018 Zeroboard / skin by GGAM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