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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 14장 강해 (Hosea 14)
Y.J. Choi ( HOME )02-14 17:33 | HIT : 7,932 | VOTE : 290
수요 찬양예배
성경: 호 14:1-16                        제목: 이스라엘이 받을 궁극적 축복

오늘은 호세아서를 총 마무리하는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호세아 13장을 같이 상고했는데, 이 13장의 내용은 이스라엘의 송아지 우상숭배를 비판하면서 이스라엘에 대해 심판을 집행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선포하여 그들의 파멸이 더 이상 피할 수 없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호세아서 14장은 다시금 회복의 약속을 말씀하시면서 심판의 하나님이 아닌 자비의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여기에 우리의 소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자기 백성을 치시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에게 회복을 약속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본문의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3절까지는 유일한 회복의 길인 회개에 대해 말씀합니다. 그리고 4-9절에는 회개하는 자에게 주어질 영광에 대해 말씀합니다. 이제 말씀을 보시면서 내용을 좀더 깊이 상고하시겠습니다.

1절: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 한번 회개를 권면하고 그로 말미암는 축복을 약속합니다. 그럼으로써 그의 예언의 중점이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보다는 회개를 촉구하는 데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호세아는 이스라엘에게 먼저 우상을 제거하고, 강대국을 의지하는 것을 중단하라고 3절에서 요구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보호자가 인간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비록 우리의 믿음은 보잘 것 없을지라도 하나님은 끝까지 자기 백성들을 사랑하십니다. 포기하지 않는 사랑이요, 실패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그런 증거로 하나님은 본문을 통해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길, 긍휼을 얻는 길을 제시하십니다. 즉 '주 너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1절)고 말씀합니다. 즉 이스라엘은 범죄한 대가로 망하였으나 그들 앞에 새로운 회복이 기다리고 있으므로 지체하지 말고 회개하라고 교훈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궁극적인 계획은 저주가 아니라 회개요, 멸망이 아니라 회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굳어버린 이스라엘의 영성이 회복되고 닫힌 입술에 참회와 찬송이 새롭게 넘쳐나 은혜의 깊은 바다 속에 잠기게 되기를 소원하셨던 것입니다.

2절: 참된 회개는 결단과 행동이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수용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돌아와 고백해야 할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더 이상 인간의 지혜와 힘을 신뢰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않고 말을 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의지하기 시작하면 결국 멸망하고 맙니다. 군사력을 의지하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 수 없습니다. 둘째, 하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이심을 믿고 우상을 철저히 배격하겠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고백이 삶으로 이어질 때 하나님의 긍휼을 얻을 수 있습니다. 호세아는 수송아지 제물보다 참회하는 입술과 통회하는 심령이 더 합당한 제사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다윗은 이 사실을 깨닫고 진심으로 회개함으로 용서함을 받았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상함 심령의 호소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3절: 회개는 말씀에 대한 순종과 더불어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려야 합니다. 이것은 전인격적인 변화입니다. 탕자가 아버지께 돌아오는 것과 같이 지. 정. 의적인 회개가 없다면 참된 구원을 받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고아’란 하나님의 사랑에서 제외된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우상과 헛된 제물은 아버지의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보호자와 인도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출 22:22; 약 1:27).

4절: 본 단락(4-9절)은 이스라엘이 회개한 후 주어질 하나님의 사랑과 회복의 은총을 생명력이 넘치는 자연현상에 비추어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회복의 구체적인 내용은 하나님의 진노가 그치고(4절), 이스라엘이 번영하며(5-7절), 영적 순결이 회복된다는 것(8절) 등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자에게 풍성한 은총을 허락하시는데, 이는 하나님의 한없는 긍휼에 의지하여 죄악에서 돌이킬 것을 촉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한편 예언의 직접적인 대상이었던 북왕조는 곧 망하였기에 본문은 종말의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얻을 최종적인 승리의 영광과 축복을 알려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반역’이란 하나님께 반기를 들고 그분에게서 멀어지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러한 반역을 고쳐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13:4). 그러므로 진정한 회개와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선물입니다(엡 2:8-9). 회개하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기꺼이 사랑’한다고 말씀하십니다.

5절: 호세아는 하나님이 이슬과 같은 은혜를 주신다고 예언함으로 신앙 공동체인 이스라엘이 소생할 것을 알려줍니다. 이슬은 아무도 모르는 시간(밤)에 조용하게 내려 만물에게 생기를 제공합니다. 이슬의 내림같이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고, 볼 수 없는 모습으로 조용히 접근합니다. 이슬과 같은 하나님의 조용한 은혜와 사랑만이 피곤에 지쳐 있는 인간을 소생시킬 수 있습니다.

6절: 가지란 ‘새 싹’이나 ‘새 순’을 가리킵니다(욥 8:16; 사 53:2). 이스라엘의 멸망이 커다란 나무가 베임을 당한 것이라면, 이스라엘의 회복은 베임을 당한 그루터기에서 ‘새 싹’이 돋아나는 것과 같습니다(사 6:13). 아무리 마른 뼈와 같이 죽어 버린 영혼과 인격이라 해도 하나님 안에서는 소생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시 1:3; 엡 2:1).

7절: 여기서 ‘그늘’은 회복된 이스라엘의 거처인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합니다. 이 그늘 아래에서만 참 평안과 휴식과 결실이 있을 뿐입니다(시 91:1). 또한 회복된 이스라엘의 명성과 영광이 유명한 레바논의 극상품 포도주처럼 모든 사람에게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시 112:6; 잠 10:7). 즉 그들은 더 이상 열매 맺지 못하는 들 포도나무가 아니라 최상품 포도가 되어 하나님께 돌아와 옛날의 영광을 회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8절: 이 말씀은 타락한 이스라엘이 우상을 따라가며 외치던 말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회개하는 심령은 오직 하나님만을 높이 받들고 우상을 철저히 혐오합니다. 즉 삶의 주재권을 하나님께 온전히 복속시키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롬 14:7, 8). 예수님께서도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고 말씀하시며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만 열매를 맺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음을 가르치셨습니다(요 15:5-8).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무성한 잣나무’처럼 축복(사 55:13)과 영광(사 60:13)의 근원이 되실 것을 선언하십니다. 특히 나무의 푸름은 하나님의 영원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당신의 영원한 통치를 상징합니다.

9절: 지금까지 호세아 선지자가 증거한 메시지 전체를 요약합니다. 본 절은 호세아의 결론 중의 결론으로 ‘의인의 길은 주께서 인정하시지만, 악인의 길은 망할 것이다.’라는 말씀을 연상시킵니다. 한편 생명의 길인 ‘여호와의 도’는 죄로 오염된 인간의 총명으로 알 수 없습니다(단 12:10).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질서는 인간의 이성을 초월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도는 궁극적으로 의인에게는 생명을, 죄인에게는 사망을 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사 28:16; 요 14:6).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로 의인이라 칭함 받은 성도들은 마땅히 하나님의 도에 주의하며(시 119:15), 길 되신 그리스도를 좇아가고, 십자가의 도를 깊이 묵상하는 생활을 매순간마다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눅 9:23).

이제 호세아서 전체의 내용을 다시 한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호세아는 여로보암 2세의 말기(B.C. 750년경)부터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된 B.C. 722년 이후까지 활동했던 이스라엘의 마지막 선지자였습니다. 당시 막강한 부를 이루었던 여로보암 2세가 죽자 계속된 왕위 찬탈로 인해 급격히 나라가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은 종교적으로 심히 부패하여 있었습니다. 그러한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는 철저하게 심판하실 것을 호세아는 경고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스라엘이 고질적으로 앓고 있던 병인 우상숭배의 도가 너무나 지나쳤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차례 엘리야와 엘리사 그리고 아모스를 통하여 회개하라고 경고했지만, 이스라엘은 더욱 패역해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우상에 더욱 깊이 빠져 이방인과 전혀 다를 바가 없을 정도로 타락하고 말았습니다(4:11-14). 이렇게 되자(4:10)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를 택하셔서 최후의 경고를 선포하십니다.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이다."(1:9)

그러한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은 "내 백성이 나를 알지 못하여 망한다. “네가 제사장이라고 하면서 내가 가르쳐 준 것을 버리니, 나도 너를 버려서 네가 다시는 나의 성직을 맡지 못하도록 하겠다. 네 하나님의 율법을 네가 마음에 두지 않으니, 나도 네 아들딸들을 마음에 두지 않겠다."(4:6)고 저주하시며 지상에서 영원히 이스라엘을 제거해 버리시겠다고 선포하십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되고 맙니다(8:8).

이스라엘의 멸망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점차 패역해가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어린 아이일 때에, 내가 그를 사랑하여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냈다. 그러나 내가 부르면 부를수록, 이스라엘은 나에게서 멀리 떠나갔다. 짐승을 잡아서 바알 우상들에게 희생 제물로 바치며, 온갖 신상들에게 향을 피워서 바쳤지만, 나는 에브라임에게 걸음마를 가르쳐 주었고, 내 품에 안아서 길렀다. 죽을 고비에서 그들을 살려 주었으나, 그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나는 인정의 끈과 사랑의 띠로 그들을 묶어서 업고 다녔으며, 그들의 목에서 멍에를 벗기고 가슴을 헤쳐 젖을 물렸다."(11:1-4).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애굽을 동경하면서 하나님을 싫어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앗수르에게 이스라엘을 넘기기로 하셨던 것입니다(11:5-7).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결단코 이스라엘을 버리실 수가 없으셨습니다. "에브라임아,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이스라엘아, 내가 어찌 너를 원수의 손에 넘기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처럼 버리며, 내가 어찌 너를 스보임처럼 만들겠느냐? 너를 버리려고 하여도, 나의 마음이 허락하지 않는구나! 너를 불쌍히 여기는 애정이 나의 속에서 불길처럼 강하게 치솟아 오르는구나."(11:8).

이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셨습니다. 마치 호세아가 고멜의 돌아옴을 기다리며 "당신은 많은 날을 나와 함께 살면서, 창녀가 되지도 말고,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지도 말고, 나를 기다리시오. 그 동안 나도 당신을 기다리겠소."(3:3)고 했던 것처럼 이스라엘이 이제라도 하나님께 돌아설 것을 오래도록 기다려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호세아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외칩니다. "이제 주께로 돌아가자. 주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어 주시고, 우리에게 상처를 내셨으나 다시 아물게 하신다. 이틀 뒤에 우리를 다시 살려 주시고, 사흘 만에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실 것이니, 우리가 주 앞에서 살 것이다. 우리가 주를 알자. 애써 주를 알자. 새벽마다 여명이 오듯이 주께서도 그처럼 어김없이 오시고, 해마다 쏟아지는 가을비처럼 오시고, 땅을 적시는 봄비처럼 오신다."(6:1-3)

하나님은 결단코 그의 백성을 버리시지 않습니다. 아무리 만신창이가 될 정도로 패역하고 하나님을 거역할지라도 어느 때든지 돌아올 것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끝까지 하나님을 떠나 자기들 갈 길로 내닫기만 합니다. 자기들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고 한다면 누구를 위해 살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분명한데도 도무지 하나님을 찾지 아니했습니다. 오히려 정치적으로 불안하면 애굽을 향하여 도와 달라 하고(왕하 17:4), 그것도 안 될 것 같으면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쳐서라도 이스라엘을 지키려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지키심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주인이신 하나님보다는 이방을 의뢰하고자 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호세아는 그들을 책망합니다. "이스라엘의 교만이 이스라엘에게 불리하게 증언한다. 이 모든 일을 겪고도, 주 하나님에게로 돌아오지 않는다. 나를 찾지도 않는다."(7:10). 그처럼 핍절한 상태가 되도록 하나님의 진노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도무지 돌아설 줄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그처럼 철두철미하게 내던져 버린 이스라엘 민족을 보면서 우리는 인간의 부패한 모습이 얼마나 악독한가를 보게 됩니다. 한번 죄로 인하여 부패한 인간의 심성은 아무리 하나님께서 회유하시고 기다리시고 심지어는 매로 때려서라도 회개할 것을 촉구함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을 저버리는 것이 타락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아무리 애써도 돌이키지 아니하고 자기의 생명이신 하나님을 떠나버리는 것이 부패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아무리 애쓰고 노력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순전하게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사악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보고 있으면서도 거역할 정도로 우매한 존재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간성을 가지고서는 절대로 하나님의 의로운 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그 역사적 증거가 바로 이스라엘의 멸망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능력과 사랑을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성의 한계 안에 있는 이스라엘은 마침내 멸망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우리의 구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인간성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이겠습니까? 이스라엘의 철저한 파괴는 마치 요나가 경험한 스올의 경험과 같이 살벌한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스라엘은 B.C. 722년 역사상에서 영원히 감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이 멸망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한 대가이며 부패된 인간성의 종국이 곧 심판과 죽음인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스올의 죽음 속에서 깊이 침잠되어 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해 일하시고 계셨습니다. 마치 깊음의 혼돈 가운데서 빛을 창조하시던 것처럼 죽음과 같은 흑암 속에 버려진 이스라엘을 전혀 새로운 존재로 재창조하시고 있었습니다. "내가 그들을 스올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내가 그들을 사망에서 구속하겠다.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스올아,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이제는 내게 동정심 같은 것은 없다."(13:14)는 하나님의 선포는 진정 참 생명의 주인이 누구이신가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내가 그들의 반역하는 병을 고쳐 주고, 기꺼이 그들을 사랑하겠다. 그들에게 품었던 나의 분노가 이제는 다 풀렸다."(14:4)는 말씀은 이제 새롭게 태어날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선포입니다. 마치 사형선고를 받았던 죄수에게 최종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시는 이스라엘의 죄를 문책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철저하게 새롭게 지으시고 즐거이 저희를 사랑하심으로 이제 더 이상 이스라엘은 죽음 아래 있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처럼 수없이 회개하고 돌아설 것을 촉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거역한 대가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이스라엘이 다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본래 우리들도 이스라엘과 같이 진노 아래 있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완벽하게 단절된 상태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우리가 어느 날 하나님의 사랑을 입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전혀 새로운 존재로 바뀐 것입니다. 우리가 애써 새 생명을 찾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으로 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롬 5:8)는 말씀과 같이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고, 그 확실한 증거를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어느 날 그 증거를 보고 나서야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알게 되었을 뿐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지혜는 천군 천사들도 전혀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더군다나 사단이 꿈도 꾸지 못할 기묘한 방법이었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그 죽음의 대가를 지불하고 우리를 사서(구속) 새 생명(구원)을 주실 지를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것을 가리켜 바울 사도는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안에 영원 전부터 감추어져 있는 비밀의 경륜"(엡 3:9)이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음을 받았습니다(창 1:26). 그 형상이 인간성의 부패로 인하여 사라지자 이제 하나님께서는 형상이 아닌 직접 하나님 본체이신 성령으로 우리 안에 내주하심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고(롬 8:14) 분명히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철저하게 육신적인 이스라엘을 멸절시키시고 신령한 이스라엘을 새롭게 건설하시고 계십니다. 이것은 곧 새로운 피조물의 창조이며 죽음으로써 죽음을 초월하게 하시는 생명 그 자체이신 하나님의 권능인 것입니다(롬 5:11).

본 14장에서 호세아는 이스라엘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리라고 예언합니다.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푸시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든 불의와 패역이 치유되어 다시는 몰락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번창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도를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 호세아서가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먼저 하나님께서 죄와 죄의 오염을 제거하는 구속의 은혜를 주시기 때문에 성도들은 궁극적인 평안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있었기에 우리는 그 그늘에서 편안히 쉽니다. 우리의 모든 죄짐들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로 성도가 진정한 의미에서 번성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도는 정직합니다. 그 도에 행하는 자는 의인으로 열매를 풍성히 거둘 것입니다. 그러나 죄인은 그 도에 거쳐 넘어집니다. 십자가의 도가 그것을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는 엄청난 능력과 지혜가 되지만 그것을 무시하고 거부하는 자에게는 거치는 반석이요 어리석게 보일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 은혜를 더욱 사모하며,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더욱 감격하여 주님의 도에 행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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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  회중주의 (D. Deddens)     DMKim 2015·08·11 4046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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