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Korean Church of Brussels! 브뤼셀 한인교회

 
 
 
 















호세아 13장 강해 (Hosea 13)
Y.J. Choi ( HOME )02-07 20:20 | HIT : 7,207 | VOTE : 279
수요 예배
성경: 호 13:1-16                설교- 범죄와 심판

지난 시간에는 호세아 12장을 같이 상고했습니다. 호 12장에서 호세아는 계속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외치는 동시에 그들의 교만을 지적합니다. 또한 야곱을 예로 들면서 옛사람의 기질을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았던 그 간사한 야곱을 마침내 겸손한 이스라엘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기억하라고 말씀합니다.

오늘은 호 13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13장은 호세아서의 결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내용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는데 1-3절까지는 다시금 이스라엘의 송아지 우상숭배를 비판합니다. 4-8절은 이 이스라엘에 대해 심판을 집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9-16절까지는 그들의 파멸이 더 이상 피할 수 없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말씀을 보시면서 내용을 좀더 깊이 상고하시겠습니다.

1절: 이 구절은 어떻게 이스라엘이 망했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브라임이 어떤 존재였습니까? 그가 말하면 주위 사람들이 떨 정도였습니다. 에브라임 지파는 원래 이스라엘의 지도적 위치에 있던 지파였고 여호수아, 여로보암 1세 등의 지도급 인사들을 배출한 지파입니다. 특히 당시 여로보암 2세 때에는 이방 열국의 부러움을 살 정도로 막강한 국력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점점 어떻게 되어 가고 있습니까? 점점 망하는 길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점점 망하는 길로 걸어가고 있습니까? 바알을 섬김으로 범죄했기 때문이라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바로 이 일에 대표적인 가문이 하나 있습니다. 바알하면 생각나는 사람, 누구죠? 이스라엘에 바알신을 하나님을 섬기는 일보다 더 흥왕하게 했던 인물, 바로 이세벨입니다. 이세벨은 아합의 아내였고 베니게 왕이자 바알신을 섬기는 제사장의 딸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이 아합 왕과 결혼을 하여 이스라엘에 거하게 되자 바알을 섬기는 일이 점점 더 많아졌습니다. 왕상 18장에 보면 당시 이스라엘에는 바알신을 섬기는 선지자 450명과 바알신과 친척지간인 아세라신을 섬기는 선지자 400명이 있었다고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반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몇 명이 있었습니까? 엘리야의 말대로라면 자기 혼자만 남았다고 했습니다. 다 이세벨이 죽인 것입니다. 이 정도로 당시 바알을 섬기는 일이 흥왕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이 가문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예후의 반역에 의해서 나봇의 포도원에서 처참하게 죽음을 맞이합니다. 또 이세벨은 어떻습니까? 그 역시 난간에서 떨어져 죽어 개들의 밥이 되고 말았습니다. 바알을 섬기다가 망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2절: 그런데 보십시오. 2절은 이 사실을 언급하면서 거듭 범죄를 더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이렇게 우상을 섬기다 처참하게 망한 거울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도 그렇게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저들이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다시 송아지 우상을 만듭니다. 그리고는 그 우상에게 입 맞춥니다. 여러분, 이들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보십시오. 우상을 섬기다 망한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것과 상관없이 그 일을 그대로 행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분명히 교훈적인 사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과거 역사를 통해 배울 줄 모르는 자는 망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역사의 거울은 참으로 필요합니다. 거울을 보면서 나 자신의 모습을 반성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아마 거울을 통해서 자신의 얼굴에 얼룩이 묻은 것을 보고도 그대로 방치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즉시 그것을 고칠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 보지도 않고 과거의 실수를 반복합니다. 그렇기에 저들은 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전 10:6을 같이 찾아봅시다. ‘이 사건들은, 우리가 우리 조상들이 악을 좋아한 것과 같이 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하려고, 우리에게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어떤 것들이 거울이 됩니까? 성경에 있는 여러 사건들이 거울이 된다는 것이지요. 또 고전 10:11도 보십시다. ‘이런 일들이 그들에게 일어난 것은, 본보기가 되게 하려는 것이며, 그것들이 기록된 것은, 말세를 만난 우리에게 경고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거울입니다. 왜 우리가 말씀을 묵상합니까? 우리 영혼이 거울을 보기 위함입니다. 우리 중에 아마도 일어나서 거울을 보지 않고 출근하시는 분은 없겠지요. 이것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나의 최소한의 예절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 위해서 영적인 단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말씀이라는 거울을 펼쳐 들고 내 자신을 비추어 보고 다듬는 것이지요. 여러분, 말씀을 통해 자신을 살펴보십시다. 그리고 내 자신의 영적인 모습이 어떤지 깊이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약 1:23-24을 같이 한번 보십시다. ‘말씀을 듣고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자기 얼굴을 거울 속으로 들여다보기만 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의 모습을 보고 떠나가서, 그것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는 사람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사람은 거울을 보았지만 얼룩을 지우지 않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 사람은 사실 거울을 안본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지요.

3절: 자 이렇게 거울보기를 거부하고 자신을 방치했던 사람들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경고를 보십시다. ~처럼 된다는 이야기가 네 번 나오지요? 아침 안개처럼 되고, 이른 새벽에 쉽게 사라지는 이슬처럼 되고, 타작마당에서 바람에 날려가는 쭉정이처럼 되고, 굴뚝에서 나는 연기처럼 될 것이라고 합니다. 자 보십시다. 이것들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까? 처음에는 있는 것 같으나 쉬 사라지는 것들입니다. 또 정함이 없는 것들입니다. 바로 이것이 거울을 보지 않는 사람들의 말로예요. 하나님을 떠난 죄인들이 이룩한 번영은 헛된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어기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도 부자가 된 것, 그것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더 큰 심판임을 알아야 합니다.

4절: 본 절은 ‘그러나’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울을 보지 않았기에 망하는 길로 들어섰음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이렇게 엉뚱한 길로 갈 동안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하셨습니까? 가만히 계시지 않으셨어요. 오히려 계속해서 ‘나는, 너희가 이집트 땅에 살 때로부터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그 때에 너희가 아는 하나님은 나밖에 없고, 나 말고는 다른 구원자가 없었다. 그러므로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5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른 길로 갈 때 돌아보셨습니다. 이 호세아서도 마찬가지이죠. 다른 길로 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 그리고 우리들을 권고하기 위해서 기록한 것입니다.

종종 우리들이 오해하는 것 중의 하나는 내 신앙이 떨어져 하나님도 잘 느껴지지 않는 그런 상황이 되면 하나님도 내게 무관심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부르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내가 느끼지 못하는 것뿐이지요. 영적인 감각이 없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간절하게 부르셔도 그것을 듣지 못하는 것이지요. 호세아서를 살펴보시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간절하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르시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혹 오늘 우리 중에도 이런 오해를 하고 있는 분이 계시지 않으십니까? 문제는 바로 나에게 있습니다. 내가 영적으로 무감각하기 때문에 그것이 깨달아지지 않는 것뿐입니다.

6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간절히 권고하시면서 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예, 저들을 배부르게 하신 일이에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하면서 어떻게 배불리었는가를 잘 아시지요.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습니다. 또 물이 없을 때는 반석에서 물이 쏟아지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들이 가나안 땅에서 생활하면서 누린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주신 것들입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이 없이 어떻게 저들이 배부를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들이 배부름으로 인해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더욱 교만해지고 하나님을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들을 배부르게 하셨다면 더 감사하고 더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할 텐데도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이것은 사실 모세가 미리 경고한 것입니다. 신 8:11-14을 보십시다. “오늘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주는 주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어기는 일이 없도록 하고, 주 너희의 하나님을 잊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가 배불리 먹으며, 좋은 집을 짓고 거기에서 살지라도, 또 너희의 소와 양이 번성하고, 은과 금이 많아져서 너희의 재산이 늘어날지라도, 혹시라도 교만한 마음이 생겨서, 너희를 이집트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내신 주 너희의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그런데 여러분 이 죄의 발전 과정을 가만히 보십시다. 배가 부르자 어떻게 되었죠? 그것으로 인해 교만해 졌어요. 그리고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배부름으로 인해 자신의 원래 처지를 잊어버린 것입니다. 매일 만나와 메추라기만 먹다가 건포도 떡을 먹으니까 너무 맛있는 거예요. 물론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배불리시니까 고맙고 감사했겠죠? 얼마나 감격했겠어요. 그러나 시간이 점점 흘러가자 타성에 젖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먹어도 감사하지 않아요.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면 이제 자신이 뭔가 잘나서 먹는 것으로 착각을 합니다. 그래 내가 이 정도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이죠. 우리 속담에 개구리 올챙이 시절 생각지 못한다는 말 그대로지요. 이렇게 되면 무엇만 보입니까? 자신만 보이는 거예요. 그러니 하나님을 잊어버리죠. 바로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들을 잘 권고하시고 배부르게 했더니 그만 저들이 망하는 길로 들어서 버리고 만 것입니다.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지요. 배불러서 망한다. 놀라운 것은 의외로 이런 일들이 우리 주변에도 많이 있습니다. 배고플 때는 신앙생활을 잘하다가도 그만 배가 부르면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사람들이 많아요. 아마 여러분들도 주변에서 이런 사람들을 보셨을 줄 압니다. 우리도 배불러 망하지 않도록 늘 주의해야겠습니다. 사람의 심리란 참으로 묘해서, 없고 가난할 때는 작은 것 하나도 그렇게 고맙고 감사하지만 배부르고 나면 작은 것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이게 사람의 간사한 마음입니다. 그래서 사단도 바로 이런 우리들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배부르게 한 뒤 우리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감사도 잊어버리고, 기쁨도 잊어버리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혹 우리들 중에도 이렇게 배불러서 망하고 있는 분은 없는지요? 여기서 배부른 것은 비단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라 영적으로도 그럴 수 있지요. 우리 교회가 받은 축복을 즐거워하고 감사하다가도 시간이 점점 지나면 그 기쁨도 감사도 잃어버리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은 모든 것이 다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배부른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을 잊어버리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더욱 경성하는 우리의 신앙이 되어 더 큰 기쁨과 감사가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7-8절: 이렇게 배불러 교만해지고 하나님을 잊어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경고하십니다. 여기서도 ‘~처럼’이라는 말씀이 몇 번 나오죠? 사자처럼, 표범처럼, 새끼 빼앗긴 암곰처럼 달려들겠다고 말씀합니다. 이런 것들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흉악하다는 것이에요. 포악하죠. 그런데 누가 이렇다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하시던 하나님께서 이제는 그들을 멸망시키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패망할 때의 모습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고 합니다(사 34:8; 렘 46:9).

9절: 9-16절까지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에게 임할 심판을 보여 줍니다.

10절: 왜 저들을 지키는 왕이 없다고 말씀합니까? 왜냐하면 왕들이 저들을 지키기보다 오히려 저들을 괴롭히는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왕들이 백성을 위하는 선한 목자가 아니라 자기의 배만 챙기는 삯군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자들이 당할 어려움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망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되겠습니다.
11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왕으로 친히 다스리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상 나라들처럼 사무엘에게 왕을 달라고 구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분노하시면서도 왕을 세우도록 허용하십니다. 하지만 역사는 어떤 왕도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되지는 못했다는 사실을 증거합니다. 그들은 권력 쟁취에만 급급하다가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사고 만 것입니다.

12절: 또한 이스라엘은 죄를 저장해 두다가 망했다고 말씀합니다. 회개할 기회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계속 쌓아 두었다는 것이지요. 혹 우리도 죄를 저장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죄를 짓습니다. 그러면 문제는 이 지은 죄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입니다. 그것은 요일 1:9 말씀대로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케 하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죄를 자백하는 눈물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없다면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망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어거스틴은 자신이 어린 시절 어머니의 젖꼭지를 깨문 것까지 죄로 느껴져서 회개했다고 하지요.

13절: 이렇게 죄를 저장하고 사는 사람들에게 하는 경고가 있습니다. 즉 해산하는 고통이 임하리라 말합니다. 출산을 하는데 왜 아이가 태에 걸려서 안나 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합니다. 얼마나 고통스럽겠어요. 바로 그런 고통이 있다는 것이에요. 해산이란 원래 엄청난 고통 중에도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사건이므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징계를 회개의 기회로 삼아 하나님께 돌아섰다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못하였기 때문에 징계의 아픔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죄를 저장해 두다가 이런 일 당하시지 마시고 즉시 버리십시오. 회개에는 때가 있습니다. 이 때를 놓치면 영원히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14절: 자, 지금까지 살핀 말씀들을 정리해 보십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망합니까? 첫째 거울을 보지 않아서 망하고, 둘째 배불러서 망하며, 마지막으로 죄를 저장했기 때문에 망합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까? 이것은 사실 돌아오라는 간절한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너희들이 가고 있는 길은 망하는 길이다. 그러므로 내게로 돌아오라는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떤 것인지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 14절 말씀은 그 죄의 결과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담당하시는 지에 대한 놀라운 복음입니다. 14절에 속량, 구속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은 죄에 대한 대가를 지불한다는 것입니다. 그 대가가 무엇입니까? 사망이요 죽음입니다. 바로 이 대가를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통해서 지불하십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지불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속량, 즉, 값을 지불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죄의 대가를 지불하시고 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스올아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죄의 길목으로 들어선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선언입니다. 이 말씀은 아주 유명한 말씀입니다. 누가 이 말을 인용합니까? 사도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적용시키면서 이 말을 바로 오늘 본문을 인용하지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구속의 약속을 성취한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 그리고 우리들을 사랑하십니다. 이렇게 사랑하시면서 돌아오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죄값을 내가 지불하겠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게로 돌아오라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초대에 바로 응답하십시다.

어느 신학자는 그의 주석에서 호세아서의 메시지를 이렇게 정리해 놓고 있습니다.

너 이스라엘의 포로 생활은 스스로에게서 비롯되었지만 너의 구속은 나로 말미암은 것이다.
너의 멸망이야 너에게서 비롯되었지만 너의 구원은 나에게서 비롯되었노라.
너의 죽음은 네 스스로에게서 초래된 것이지만 너의 생명은 나로 말미암았노라.
너의 악은 너 자신으로 말미암았지만 너의 선은 나에게서 비롯되었노라.
너의 영벌은 네 스스로에게 원인이 있지만 너의 예정은 항상 너의 마음의 문에 서서 자비로 그 문을 두드리는 내가 했노라.
너의 의무 태만은 네가 잘못해서 그런 것이지만 너에게 소명을 준 것은 나이니라.
너의 참담함은 네 스스로 자초한 것이지만 너의 축복은 나에게서 비롯되었노라.
네가 받은 저주는 너에게서 초래되었을지라도 너의 구원과 성화는 내가 하는 일이니라.

15절: 앗수르가 이스라엘 땅을 침략하여 마르게 하고 황폐케 하는 것을 동풍에 비유합니다.

16절: 본 절은 히브리어 맛소라 사본에는 14:1로 되어 있습니다. 즉, 본 절은 13장의 결론인 동시에 14장의 서론이기도 합니다. 이 구절에서 이스라엘을 징벌하러 오는 앗수르(동풍)의 군사들이 무자비할 것을 보여 줍니다. 특히 어린이를 메어치고,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가른 것은 교만한 이스라엘의 최후를 보여주는 극적인 표현으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이스라엘의 죄악이 무엇입니까?
첫째로는 그들의 영적인 교만입니다(1, 6절). 이스라엘은 물질적으로 번영할 때 교만하게 자신을 높인 결과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우상숭배에 빠지게 됩니다.
둘째로는 왕이신 하나님(시 10:16)을 버리고 인간을 왕으로 요구한 것입니다(10-11절). 본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친히 통치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에 의해 나타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이스라엘이 왕을 구한 행위는 하나님께 대한 명백한 배반이었습니다(16절).

이스라엘은 이러한 죄로 인해 멸망할 수밖에 없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죄 값으로 인해 멸망할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사 멸망의 길목에서 우리를 구속한다는 메시지입니다. 여러분, 바로 이 사랑이 저와 여러분 앞에 있습니다. 이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서 더욱 경성하여 교만하지 않고 하나님을 나의 왕이요 주님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추천하기   목록보기

NO S U B J E C T NAME DATE HIT   VOTE
235  회중주의 (D. Deddens)     DMKim 2015·08·11 4593 287
234  화룡점정     전원호 목사 2004·07·19 3747 272
233  호세아 9장 강해 (Hosea 9)     Y.J. Choi 2007·12·21 8601 289
232  호세아 8장 강해 (Hosea 8)     Y.J. Choi 2007·12·13 7509 334
231  호세아 7장 강해 (Hosea 7)     Y.J. Choi 2007·12·06 7713 300
230  호세아 6장 강해 (Hosea 6)     Y.J. Choi 2007·11·30 10417 302
229  호세아 5장 강해 (Hosea 5)     Y.J. Choi 2007·11·25 7742 311
228  호세아 4장 강해 (Hosea 4)     Y.J. Choi 2007·11·15 9229 304
227  호세아 3장 강해 (Hosea 3)     Y.J. Choi 2007·11·01 7381 302
226  호세아 2장 강해 (Hosea 2)     Y.J. Choi 2007·10·25 9735 308
225  호세아 1장 강해 (Hosea 1)     Y.J. Choi 2007·10·11 8298 269
224  호세아 14장 강해 (Hosea 14)     Y.J. Choi 2008·02·14 8489 332
 호세아 13장 강해 (Hosea 13)     Y.J. Choi 2008·02·07 7207 279
222  호세아 12장 강해 (Hosea 12)     Y.J. Choi 2008·01·31 6934 280
221  호세아 11장 강해 (Hosea 11)     Y.J. Choi 2008·01·25 8648 305

    목록보기   다음페이지 1 [2][3][4][5][6][7][8][9][10]..[16]   [다음 10개]

Copyright 1999-2018 Zeroboard / skin by GGAM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