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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 12장 강해 (Hosea 12)
Y.J. Choi ( HOME )01-31 06:02 | HIT : 6,933 | VOTE : 280
수요 찬양예배
성경: 호 11:12-12:12                 설교- 야곱을 본받아야 할 이스라엘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셨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되게 하는데 방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 안에 있는 기질이요, 옛사람입니다. 가장 변하지 않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능력은 이것까지도 바꿉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그러한 예들을 많이 볼 수 있지요. 최근에 Rick Warren 목사님께서 쓰신 God's Power to change your life라는 책이 있는데 바로 이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우리의 신앙생활은 계속 긴장의 연속이요, 영적인 전투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새 생명과 옛 사람 간에 끊임없는 갈등이 있습니다. 아무리 우리의 신앙이 좋아도 우리는 한 순간에 이 죄의 세력에 쉽게 넘어갈 수 있고 다시 옛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하나님께서는 이 싸움에서 궁극적인 승리를 주십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소망이 있는 것이지요.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가 상고할 12장의 내용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11장을 같이 상고했는데 이 11장은 사실 호세아서의 클라이맥스인 동시에 구약 성경 전체의 극치라고 말씀드렸지요. 그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불타는 사랑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8절을 다시 한번 읽어 보십시다. “에브라임아,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이스라엘아, 내가 어찌 너를 원수의 손에 넘기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처럼 버리며, 내가 어찌 너를 스보임처럼 만들겠느냐? 너를 버리려고 하여도, 나의 마음이 허락하지 않는구나! 너를 불쌍히 여기는 애정이 나의 속에서 불길처럼 강하게 치솟아 오르는구나.” 여러분, 이 말씀을 읽을 때 화산같이 타오르는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이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호세아 12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첫 부분은 하나님께로 돌아오라(11:12-12:6)고 외치는 부분이며 두 번째 부분은 이스라엘의 교만(7-14절)을 지적합니다. 여기서 호세아가 예로 들고 있는 사람은 야곱입니다. 아마도 성경에서 가장 크게 변화된 사람 중의 한사람이 야곱일 것입니다. 옛사람의 기질을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았던 그 야곱을 마침내 겸손한 이스라엘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드라마틱한 역사를 현재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적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또한 저와 여러분에게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이제 말씀을 보시면서 내용을 좀더 깊이 상고하시겠습니다.

11장 12절: 히브리어 성경에 보시면 이 절이 12장 1절로 되어 있습니다. 거짓말과 음모로 하나님을 에워쌌다는 것은 거짓말을 계속해서 더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거짓말을 정당화하기 위해 더 큰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에게는 통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안 통합니다.

12장 1절: 더 나아가 호세아는 이스라엘의 외교 정책과 국내 정치가 모두 인간적인 술수로 지탱됨을 비난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족장 중에서 가장 인간적인 면모를 보였지만 결국 성숙한 신앙에 도달하였던 야곱처럼 이스라엘이 죄악을 회개하고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길 것을 촉구합니다.

호세아는 이스라엘의 외교 정책에서 나타난 실수가 그들의 죄악을 전형적으로 대표한다고 여긴 듯합니다. 먼저 1-2절은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하여 하나님이 보응하실 것을 예고하는 내용이며 3-6절은 야곱처럼 변화되어 하나님을 신실히 섬기도록 권면하는 내용입니다.

‘바람을 먹고 살며’라는 말은 원래 바람을 지킨다는 뜻입니다. 즉 애굽과 앗시리아의 도움을 얻으려고 헛되이 뛰어다님을 가리킵니다. 에브라임(이스라엘)은 앗시리아와 강화를 맺음과 동시에 앗시리아의 대적인 애굽에는 이스라엘 특산물인 기름을 뇌물로 바쳤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양쪽을 다 의지하려고 했기 때문에 그들은 스스로의 올무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바람을 먹는다’는 표현은 우리나라의 속담에 ‘허파에 바람들어갔다’는 말과 비슷합니다. 즉 실속 없이 허세를 부린다는 것입니다.

‘열풍’을 따라간다는 것은 그 결과 파멸의 길을 간다는 뜻입니다. 이 동풍은 아라비아 광야의 열기를 몰고 와서 팔레스타인 지경의 식물을 태우고 바다에 풍랑을 조성하여 배를 깨뜨리는 등 아무런 효용 가치가 없는 바람입니다. 여기서는 이스라엘이 앗수르와 애굽을 의지한 행위가 덧없는 것임을 꼬집는 표현입니다. 이스라엘은 현재 헛배가 불러 아첨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요컨대 이스라엘의 죄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해 거짓과 음로로 에워쌌고, 동족은 철저히 짓밟으며, 옆에 있는 강대국(앗수르, 애굽)을 의지한 것입니다. 예배는 확실히 그리고 철저히 드립니다. 그러나 예배당을 나간 후에는 동족들을 철저히 착취합니다. 그리고 외국, 특히 강대국에게는 추파를 던지는 것입니다.

2절: 세 번이나 하나님께서 철저히 심판하실 것을 강조하지요. 개역 성경에 보면 ‘쟁변’이란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형벌을 선포하기 전에 책임을 추궁하여 죄를 고발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유다와 쟁변하시고’라는 말씀은 유다의 죄를 책망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하여 쟁변하시며 또한 그들을 심판하시기 위해서도 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남유다가 에브라임보다 아직 덜 부패한 상태임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계속된 경고를 무시한다면 유다도 결국 넘어지고 말 것입니다.

3절: 여기에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의 개인적인 생애가 간략하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호세아 선지자가 야곱의 생애를 말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그들을 선택하시고 언약하신 특별한 관계를 상기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개인 야곱과 맺으신 언약은 곧 야곱의 후손인 모든 이스라엘 백성과 맺으신 언약이 됩니다. 야곱이 간교한 인간성과 기만적인 행동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에 부적합했지만, 진실하게 회개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용서와 축복을 베푸신 사실을 지적하면서 이스라엘의 참된 회개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회개하지 않는 교만한 인간은 심판하시지만 진심으로 회개하는 자에게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은 태어나기 전부터 어머니 리브가의 뱃속에서 형과 싸웠습니다. 태어나면서도 형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지요. 그래서 그 이름의 뜻도 ‘발꿈치를 잡았다’는 뜻입니다. 이 탄생 이야기야말로 그의 천부적인 교활함과 과욕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태어난 후에도 형과 싸웠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장자권과 축복을 쟁취합니다. 그는 어느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했습니다. 심지어 그는 인간의 혈기로 하나님과도 싸워 이기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그의 삶 전부가 어느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하고 속임수를 써서라도 이기고야 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올 때 형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데리고 그에게 복수하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얍복강 가에서 하나님 앞에 온전히 엎드리며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했습니다. 그 겸손과 회개를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이 상황을 역전시켜 ‘야곱’을 ‘이스라엘’이라 개명하시고 그에게 계속되어질 축복을 암시적으로 허락하십니다.

4절: ‘이기자 울면서’란 야곱이 이제 혈기를 청산하고 돌이켜 회개하며 하나님께 축복을 간구한 사실을 칭찬합니다.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즉, 언약이란 시간을 초월하여 모든 이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벧엘에서 야곱에게 하신 말씀은 바로 저와 여러분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살아있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5절: ‘주(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은 일찍이 모세에게 가르쳐 주셨던 ‘스스로 있는 자’라는 칭호입니다. 즉 이 칭호는 하나님께서 과거에도 영원 전부터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장차도 계실 분, 그리고 무한하시고 영원하시고 불변하시는 분이시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각하는 것은 곧 그분의 능력과 통치를 거부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예수께서도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제자들에게 당신의 이름과 행적을 늘 기념할 것을 명하셨습니다(눅 22:19). 이처럼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은 생명과도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그 분의 이름을 망령되이, 헛되이 일컬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 이름이 우리의 삶 가운데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기도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6절: 참된 회개를 통하여 하나님께 돌아온 자에게는 사랑과 정의를 지켜 행하는 것과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며 마음을 강하게 하여 슬픔과 고통을 참고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등의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즉 참된 돌이킴은 지난날에 대한 깊은 뉘우침과 개혁에의 뚜렷한 의사 및 변화된 생활을 동반해야만 합니다.

7절: 이제 다시 호세아는 이스라엘의 교만을 지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속하시고 축복하셔서 번영케 하셨지만 그들은 번영할수록 스스로의 능력을 과신하며 교만해졌습니다. 이런 행위는 심판을 자초하는 것이었습니다. 7-11절까지는 이스라엘이 종교적, 사회적으로 범죄하였다고 알려주는 부분이며 12-14절에는 그들이 하나님을 배반한 대가로 수치를 당하리라고 예고하는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가나안 장사꾼들처럼 거짓말과 속임수로 큰 이익을 얻으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가나안이라는 말 자체가 원래 상인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상인들이 이들을 본받아 항상 무게가 다른 저울을 가지고 있으면서 거짓 저울로 물질을 모았던 것입니다.

8절: 이렇게 거짓 저울로 속여 모은 재산을 가지고도 이스라엘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교만하여 ‘아, 내가 정말 부자가 되었구나!’라고 외칩니다. 세상의 법으로 보면 문제가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이웃의 재물을 탈취하는 죄라고 선포하십니다. 그러나 그들은 양심이 마비되어 습관적인 범죄를 자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죄와 영적 빈곤에 대한 자각이 결여되어 있었던 이스라엘은 자신의 곤고함, 가련함, 가난함과 눈 먼 것 그리고 벌거벗음을 알지 못한 라오디게아 교회와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지요? 문제는 물질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그 물질을 의지하는 우리의 마음이 잘못된 것이지요. 바로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께서는 부자 청년에게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가 더 쉽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9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노력으로 크고 강하게 되려는 오류에 대해 거론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애굽에서부터 이곳까지 인도하신 분이시며, 그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번영과 재난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내세우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이 잘못 때문에 그들은 장막 생활의 어려운 시련을 다시 겪어야만 했습니다. 우리는 이 두 번이나 반복된 역사를 통해 분명한 교훈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10절: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위해 하신 바를 밝히는 역사적 진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셨고, 환상으로도 자신의 뜻을 알리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이 직접 육신을 입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이제 우리에게 성경으로 주어져 있습니다. 이 말씀을 늘 깊이 묵상하면서 깨어있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11절: ‘길르앗’과 ‘길갈’은 이스라엘의 타락과 우상 숭배의 중심지로서 이들의 어원은 ‘갈’인데 이것은 돌무덤(수 7:26; 8:29), 또는 폐허가 된 무더기(사 25:2; 37:26)를 의미합니다. 호세아는 길르앗과 길갈의 제단이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폐허가 될 것을 지적하면서 이스라엘 전체의 멸망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12절: 하나님께서는 선민의식 속에 영적으로 교만했던 이스라엘의 신분이 본래 보잘 것 없었음을 상기시킴으로써 다시금 그들의 겸손을 촉구합니다. 그들의 조상 야곱은 유리하는 나그네에 불과했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에서 창대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손인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번성한 것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축복이었습니다.

야곱은 아내를 얻기 위해 자발적으로 종이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벧엘에서 만난 하나님을 거부했던 것입니다. 벧엘 사건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것은 하나님께서 야곱을 거룩한 대제사장으로 세워 복의 근원을 삼은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7년간 그 하나님의 소명을 고의로 잊어 버렸습니다. 벧엘로 가는 것을 거부하고 아람에서 연애에 빠진 것입니다. 그러다가 20년을 그곳에서 보내어야만 했지요.

13절: 여기서 예언자는 모세를 가리키며,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구원된 것이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 활동에 의한 것임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출애굽하여 가나안에 정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오히려 가나안의 신 몰렉에게 제사하면서 그들의 자녀를 제물로 바치는 악행을 저질렀습니다(왕하 17:17). 이러한 범죄는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심판 아래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의 하나님이셨습니다. 여기서 택한 백성을 향해 진노 중에서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합 3:2).

14절: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격노케 했기에 결국 망할 수밖에 없다고 다시금 강조합니다.

여러분, 호세아는 이스라엘이 이방 나라들과는 달리 하나님이 사랑하실 대상임을 알려주며 현재의 타락을 회개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호세아는 간절하게 이스라엘이 변화하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호 12장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이 축복의 근원임을 인정하며 항상 감사해야 합니다. 형식적인 예배가 아니라 우리의 영적 성품까지 바뀌는 온전한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성도가 부당한 방법으로 생활할 때 그 대가를 받게 됩니다. 야곱이 벧엘을 잊었을 때 그는 라반의 종이 되었고 결국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습니다.

3. 자신의 부패한 성향을 회개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야곱이 이스라엘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시 벧엘로 올라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야 하겠습니다. 얍복강 가에서 이스라엘로 변화되었던 축복이 저와 여러분에게도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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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  회중주의 (D. Deddens)     DMKim 2015·08·11 4593 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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