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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 7장 강해 (Hosea 7)
Y.J. Choi ( HOME )12-06 16:52 | HIT : 7,523 | VOTE : 294
수요 예배
성경: 호 7:1-16         설교: 하나님을 떠난 민족의 장래

1. 서론: 오늘은 계속해서 호세아 7장을 상고하겠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호세아서 6장을 같이 상고했는데 여기서 호세아는 하나님을 힘써 알고 그 분 앞에 진실히 회개할 것을 촉구하면서 다시 한번 이스라엘 지도자들과 일반 백성들의 죄악들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7장은 호세아 선지자의 세 번째 설교가 시작되는 부분인데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심판을 재촉함을 말씀합니다. 이제 말씀을 보시면서 내용을 좀더 깊이 상고하시겠습니다.

2. 본론
1절: 1-7절을 보시면 앞 단락에 이어 이기적으로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해 왕과 방백들과 온 백성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환락에 빠져들며 치안을 교란하는 등으로 말미암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심각한 부패상을 달궈진 화덕의 이미지를 빌어 생동감 넘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삶 가운데 사랑과 희생이 없음을 슬퍼하시고 그들의 죄악을 치료하기 위해 선지자들을 보내어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히려 노골적으로 악행을 일삼았습니다. 왕과 방백들은 음란한 행위와 불법 및 정권 탈취에 광분하였으며 백성들은 그들의 비리에 적극 동참하였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죄악을 도말하시기 위해 심판을 예비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1. 하나님의 경고는 곧 심판을 수반하며 2. 회개의 기회는 무한정으로 주어지지 않고, 3. 악은 전염성이 강하여 공동체 전체를 일시에 오염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극도로 타락한 이스라엘은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중환자와 같은 처지였습니다. 이에 영혼의 의사이신 하나님께서는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셔서 그들의 회복에 착수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류가 지닌 어떤 병도 근본적으로 치유하실 수 있는 능력의 주님이십니다(사 57:18, 눅 5:31, 32). 그러나 당시 이스라엘 전체는 안팎으로 죄악의 도성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에브라임의 죄는 북왕국 이스라엘 전체의 죄를 의미하고 사마리아의 악은 당시 수도인 사마리아에 살던 지도자들의 죄악을 뜻합니다. 그 죄악을 한마디로 ‘서로 속인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단지 거짓을 범하는 정도가 아니라 행하는 모든 일이 거짓으로 가득 차 있음을 뜻합니다. 치료하고 싶어도 치료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중적인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당장 힘들 때에는 도와 달라고 기도하면서도 그 위기만 지나가면 그만이지요. 너무나 얄팍한 신앙이었습니다. 13, 14절을 보십시오. 진정한 문제의 근원은 바로 그들이 하나님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네 가지 비유가 나옵니다. 아주 기가 막힐 정도로 정확한 비유입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황을 진단하고 그 치료 방법을 제시합니다.

2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죄악을 기억하시기에 심판하시고 징계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 사실 내 것은 하나도 없어요. 다 임대한 것입니다. 집도 내 집이 아니지요. 사실은 빌린 것입니다. 내 몸도, 시간도 삶도 다 주님의 것입니다.
3절: 악과 거짓말로, 남의 것을 빼앗아 치부하면서 왕과 방백들에게 뇌물을 주고 아첨하고 있습니다. 땅을 빼앗기 위해 혈안이 된 사람들의 죄악상입니다.

4절: 첫 번째 비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빵 만드는 자에게 화덕 같다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공동으로 화덕을 구웠습니다. 화덕을 공동으로 관리하는 이유는 불을 잘 관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시에는 불을 관리하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불이 한번 꺼지면 다시 불을 붙이기가 매우 어려웠다고 합니다. 반죽할 때는 불을 낮춰 놓다가 빵을 구울 때 다시 그 불을 달구는 것입니다. 범죄하는 것을 달궈진 화덕에 비유하는데 그것은 반죽할 때에만 조용히 있다가 다시 타오르는 정욕의 노예가 된 지도자들의 마음을 말합니다.

5절: ‘왕의 날’은 왕이 즉위하는 날 또는 생일을 가리킵니다. 왕은 이날 신정 왕국의 수반으로서 하나님께 엄숙한 맹세와 감사로 자신의 앞날을 의뢰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신하들과 술에 만취되어 갖은 추태를 보였습니다. 자기 돈으로 이렇게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 뇌물로 들어온 것입니다. 더욱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오만한 자들과 뇌물로 결탁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불의한 정체(政體)의 연대가 길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특히 호세아의 활동기인 여로보암 2세의 아들 스가랴 이후 마지막 왕 호세아에 이르는 20년 동안 네 번의 혁명이 있었고, 통치했던 6왕(스가랴-살룸-므나헴-브가히야-베가-호세아) 중에 자기 수명대로 죽은 자는 므나헴 왕뿐이었을 정도로 정국은 혼미를 거듭했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말기 역사는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고,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모두가 허사임을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의 법을 망각한 정권은 그 날이 길 수 없습니다. 마치 탈선한 기차가 큰 사고를 내듯이 하나님의 법도를 버린 결과는 심각합니다.

6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엎드리어 기다리면서 마음이 화덕같이 예비하다가 아침에 다시 죄악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합니다. 에브라임의 죄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1절에 나오는 ‘속인다’라는 말입니다. 바로 9계명을 어긴 것입니다. 가난한 백성들이 6년 후에 종살이에서 돌아와 자기의 땅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증인들이 그것을 부인하고 거짓말하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이 자기 땅을 회복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땅이 부의 근본이었습니다. 특별히 지도층 인사들이 이러한 부동산 투기를 하면서 탐심의 불길이 솟아오르는 것, 이것이 바로 치료할 수 없는 욕심이었습니다. 많은 한국교회도 별로 다른 것이 없어 보입니다. 한국 교회 성도들 교회에 와서는 예배도 잘 드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한숨 돌리고 있는 것이지요. 교회만 나서면 다시 불이 붙어서 정신없이 욕심의 노예가 된다는 것입니다.

7절: 재판장들도 뇌물의 노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왕들도 다 엎드러졌습니다. 그들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가 하나도 없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못할 짓이 없지요. 하나님을 겁내지 않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불법으로 돈을 벌수도 있고 재산을 모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것을 다 기억하심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8절: 8-16절은 인본주의적인 외교의 결과를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은 세상에 복을 전달할 사명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특별한 민족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거룩’을 생명처럼 여기고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스라엘은 거룩을 상실하고 이방과 전혀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세속화되었으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민의 특권을 스스로 포기하였습니다. 호세아의 설교는, 하나님을 떠난 민족은 피의 혁명으로 사멸될 수밖에 없다는 준엄한 메시지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비유는 뒤집지 않은 빵입니다. 이것은  고운 가루로 반죽하여 잘 구운 소제의 예물입니다(레 2:4-5). 이것은 첫 곡식을 빻아서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의 고백으로 드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한쪽은 불에 타고 다른 쪽은 설익은 뒤집지 않은 빵처럼 종교적인 위선과 세속화에 깊이 빠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성과 속은 결합될 수 없으며 양자를 겸한 신앙인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북이스라엘은 주변 이방 민족의 풍습과 종교를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혼잡’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이방 민족을 의지한 불신앙, 신앙의 혼잡이 바로 뒤집지 않은 빵과 같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괜찮을 텐데 인간적인 방법으로 강대국에게 조공을 바치다보니 계속 돈이 더 들어가는 것입니다. 결국 나라는 엉망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9절: 재난으로 인해 머리가 셀지라도 하나님의 징계를 깨닫지 못하는 이스라엘을 풍자하는 표현입니다. 너무 고민이 많은 사람은 머리가 셀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스라엘은 말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앗수르를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교회의 능력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사람에게 있지 않습니다. 성령의 능력에 있습니다. 숫자가 많다고 해서 부흥되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성령의 능력이 있다면 가장 힘이 있는 교회가 됩니다. 이스라엘이 참 이스라엘 되는 것은 하나님만을 바라볼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 경건의 모습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려움이 닥쳐 올 때 더 이상 기도의 능력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돈으로 혹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때 우리는 다시 신앙의 원점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새롭게 출발해야 합니다.

10절: 그러나 이스라엘의 교만이 얼굴에 나타나도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습니다.

11절: 이제 세 번째 비유입니다. 어리석은 비둘기는 사냥꾼이 매설해 놓은 그물망을 발견하지 못하고 뛰어듭니다. 얼굴은 뒤를 향하고 몸은 앞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롯의 아내처럼 남겨둔 재산에 미련이 있어서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원수인 이집트를 구원자로 알아 그들을 의탁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 호세아가 애굽과 동맹을 맺고 앗수르를 배반했지만, 애굽은 이스라엘을 도울 힘이 없었으며 마침내 이스라엘은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이 그 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망각하고 이방을 의지하다가 오히려 그들에게 망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호와를 떠난 인간의 계획이 맞이할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 결과 우리가 받는 것은 부도수표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문제를 다른 사람이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 나와 엎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하나님을 온전히 향한다면 우리가 그물에 빠지지 않습니다.

12절: ‘그물’이란 여호와의 징계를 상징하는데(욥 19:6; 겔 12:13; 17:20), 결국 자유를 부르짖으며 하나님의 품을 떠났던 이스라엘이 오히려 자유를 잃어버린 포로가 되어 앗수르에 잡혀갈 것을 의미합니다.

13-14절: 바로 이 말씀이 오늘의 요절 말씀입니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과 인간의 계속적인 반역이 큰 대조를 이루며 묘사되어 있습니다(신 7:8-10).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결코 안식을 누리지 못합니다. 하나님 안에서만 안식과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이 있을 뿐입니다. 이스라엘이 당한 문제의 근본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참된 마음으로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을 다하지 않는 기도는 위선이요, 형식에 불과합니다. ‘부르짖음’은 하나님의 구원을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불신앙적인 낙망과 생활고로 울부짖는 것을 가리킵니다. 곡식과 새 포도주가 없어서 기도하는 것이지 그것만 있으면 더 이상 기도하지 않습니다.

15절: ‘힘있게’란 여로보암 2세 때에 이스라엘은 열방에 미쳤고,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왕하 14:25) 그 영토를 넓혔던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약속하신 축복의 성취였으며(신 32:36), 최대의 부귀와 영화를 누리던 솔로몬 시대와 같은 영토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 하나님을 반역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묵살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마땅히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했어야 했습니다(고후 1:3)

16절: 마지막 비유는 ‘풀어진 활’입니다. 활을 쏘기는 쏘았는데 전혀 다른 곳에 맞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강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인데 엉뚱한 곳으로 날라 가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 생각, 내 방식대로 믿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결국은 속이는 화살이 되고 맙니다.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조롱거리가 되리라’는 말씀은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당할 때에 동맹 관계에 있었던 애굽이 이스라엘을 돕지 않고 오히려 조롱했음을 가리킵니다(사 30:3-5). 이는 하나님보다 인간을 신뢰하는 자가 받을 당연한 보응입니다. 하나님과 주파수가 맞아야 합니다. 생활리듬이 맞아야 합니다. 우리 나름대로도 열심을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속이는 화살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움직여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주파수에 자신을 맞추는 훈련입니다.

3. 결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치료하기를 원하셨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거짓된 외식적인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건들을 거울삼아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믿음과 삶이 일치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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