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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 1장 강해 (Hosea 1)
Y.J. Choi ( HOME )10-11 05:10 | HIT : 8,013 | VOTE : 264
2007년 10월 10일 수요 예배
성경: 호 1:1-2:1                        
제목: 내 백성이 아니다

1. 서론: 오늘 저녁부터는 호세아서를 상고하려고 합니다. 본서는 인간의 패역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자기 백성을 사랑하고 계시는지에 대해 교훈합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은 음란한 애인 고멜을 아내로 둔 호세아의 가정을 통하여 보다 생생하게 증거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고멜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출 19:5-8; 신 6:1-25)을 버리고 우상 숭배와 각종 범죄를 일삼던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그 같은 아내를 버리지 아니하고 끝까지 돌아보시는 호세아는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본서의 이름은 저자의 이름 그대로 호세아인데 그 뜻은 ‘구원’입니다. 본 서의 기록연대는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2세(주전 793-753)의 통치 말기로부터 이스라엘이 멸망(주전 722)하기전의 어느 시점(주전 755-710)으로 봅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최후의 선지자입니다. 이 호세아서를 기록하게 하신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을 경고하면서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심판의 확실성과 그분의 신실한 사랑을 증거하기 위함입니다. 본 호세아서의 특징은 은유법, 즉 호세아와 고멜과의 관계를 통해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비유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본서는 내용상 크게 두 단락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 첫 단락은 음란한 아내인 고멜과 신실한 남편인 호세아의 가정을 예로 삼아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영적 교훈을 주고 있는 부분이며(1:1-3:5), 둘째 단락은 호세아가 패역한 이스라엘과 신실하신 하나님을 대비시키는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책망하며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그 후에 있을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 예고하고 있는 부분입니다(4:1-14:9).

당시 북왕국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 인간적인 이상향 건설을 목표로 하면서 이방 문화를 수입하였고 개인의 나태함으로 인해 결국 우상 숭배와 극도의 윤리 부재현상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나라 전체가 영적인 암흑 속에 휩싸였을 때 하나님께서 ‘이제라도 늦지 않으니 돌아오라’는 소망과 사랑의 메시지를 제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실현과 더불어 사랑의 완성을 이루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호세아서를 읽을 때 바로 이 패역한 인생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와 사랑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1장의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먼저 1-9절의 내용은 여로보암 2세때의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당시 여로보암 2세는 국제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하였고, 국제 정세 또한 이스라엘에 매우 유리하여 당시 최고의 번영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그렇게 놀라운 풍요를 누리고 있었지만 영적으로 볼 때에는 암흑기였습니다. 도덕적으로 너무나 음란했고 영적으로는 우상 숭배에 빠져 있었습니다. 바로 이 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이스라엘의 비극을 폭로하시려고 호세아에게 음란한 고멜과의 결혼을 명하십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세 자녀의 이름을 통해 당신의 뜻을 제시하고자 하셨습니다.

두 번째 부분은 10-2:1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징계하시는 목적은 영원히 멸망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성숙한 인격과 신앙을 가지게 하여 당신과 바른 관계를 형성하도록 하려는 데 있었습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셨고 그들에게 복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하나님의 나라가 구체적으로 실현될 것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보시면서 내용을 좀더 깊이 보시겠습니다.

2. 본론
1절: 호세아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기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북이스라엘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남유다의 왕들을 먼저 열거하였고 북이스라엘 왕국에 대해서는 여로보암 2세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호세아가 어디까지나 다윗 왕조의 정통성을 남유다에 두고 있으며, 남유다야말로 하나님의 구원 성취와 특별한 연관을 지닌 언약 백성임을 암시합니다. 즉 호세아는 남유다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해 가는 구속사적 입장에서 북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와 사랑을 선포한 것입니다.

2-3절: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다가 ‘비로소’ 호세아를 통해 말씀하시기 시작합니다. ‘음란한 아내’는 문자적으로 ‘음란한 자들 중의 아내’라는 뜻을 지닙니다. 즉, 북이스라엘 전체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행음’하고 있었으므로 호세아는 필연적으로 음란한 여인과 결혼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한편 여기서 ‘음란’이란 단순히 음탕한 기질이 있다는 의미라기보다는 평소에 무질서하고 방만히 행하는 것을 뜻합니다. 본서에서 이 단어는 주로 우상을 섬겨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의 종교적 부패상을 지적할 때에 사용됩니다. 당시에는 바알 우상을 섬기면서 음란에 물들지 않은 여자가 없었습니다.

여기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의 말만이 아니라 이제는 행동으로 계시하십니다. 즉 이 음란한 여인과 결혼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센세이션을 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행위계시를 통해 말씀하시는 것은 더 이상 말만으로는 사람들이 듣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음란한 아내는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 전체를 뜻하고 음란한 자식들은 이스라엘 백성들 개개인을 뜻합니다. 당시에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떠나 크게 행음’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택하신 것은 그들만을 사랑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은혜의 통로’, ‘은혜의 도구’가 되어 결국 이방인들에게도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무나 자기만족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들은 바알 숭배에 빠져 바알 우상을 음란히 섬겼던 것입니다. 유목민족들이 이제는 농경문화에 익숙해지면서 비를 가져온다고 믿는 바알 우상을 매우 음란히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외식적인 모습은 여호와를 섬기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바알을 섬겼던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혹시 우리는 이러한 자기만족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요? 우리 교회를 통해서 얼마나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살고 있습니까?

4절: 호세아가 낳은 아들에게 ‘이스르엘’이라는 이름을 짓게 하십니다.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이스라엘’이라는 말과 비슷한 ‘이스르엘’은 사실 아합의 왕가가 예후에게 멸망당한 곳입니다(왕하 9:10). 이스르엘의 피는 아합 왕가가 예후에 의해 완전히 없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다시 예후의 집에 갚겠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의 패망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문자적으로도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겨루어 승리한 자’라는 뜻이지만 ‘이스르엘’이란 ‘하나님께서 쫓아버리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 이외의 것들에 마음을 뺏기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철저히 배척하십니다(사 1:10-17).

5절: ‘활을 꺾는다’는 의미는 완전히 그 나라를 폐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백성들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6절: 호세아가 다시 딸을 낳았을 때 그 이름을 ‘로루하마’라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지금까지는 이스라엘을 사랑했지만 그들이 죄악이 극도에 이르렀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지 않겠다는 진노의 표현입니다. 밀월의 아름다움을 파괴한 주모자는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음란과 배신으로 갚은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거두어 가시면 이스라엘은 더 이상 소망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내가 좀 손해를 보더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교회 위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내 것을 내가 철저히 챙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이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백성들의 우상숭배를 철저히 따르다가 그만 하나님의 은혜를 다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의 특별은총 뿐만 아니라 일반은총까지도 잃어버린 것입니다. 호세아 이후 북왕국 이스라엘에는 더 이상 선지자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700년 동안 그 곳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지 않았습니다. 말씀이 선포되지 않을 때 더 이상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은 역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실 로루하마 이후에 하나님의 은혜는 요나를 통해 이스라엘에서 니느웨로 갑니다. 이 귀한 하나님의 은혜가 더 이상 이스라엘 위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니느웨 백성들에게, 이방인들에게 옮겨가는 것입니다. 700년 후에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긍휼이 다시 선포됨을 보면서 그 백성들은 너무나 기뻐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아직 하나님의 은혜가, 여호와의 긍휼이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을 때 이 은혜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 위에 이 하나님의 은총이 머물 수 있도록 깨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7절: 북왕국 이스라엘은 심판을 당하는 반면에 남왕국 유다는 구원을 얻을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유다왕 아하스 때 망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마할살랄 하스바스’라고 짓습니다. 그 의미는 ‘노략이 속하다, 빠르다’는 뜻입니다. 이 이스르엘과 마할살랄 하스바스가 거의 동시대에 자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 아이들이 완전히 자라기 전에 시리아와 이스라엘은 멸망하고 맙니다.

8-9절: 고멜이 다시 아들을 낳자 그 이름을 ‘로암미’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의 관계를 청산하시겠다는 가장 무서운 심판의 선포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 호 1:9이야말로 구약성경에서 가장 무서운 구절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언약 때문이었습니다(출 19:1-8). 그 당시 이스라엘은 ‘암미(내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언약의 파기는 곧 이스라엘의 멸망과 죽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관심과 보호와 사랑에서 제외된 나라는 아무리 물질적으로 그리고 군사적으로 든든한 기반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아무런 소망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하는 자 그 언약을 저버리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결국 버림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10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징계하시는 목적은 영원히 멸망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성숙한 인격과 신앙을 가지게 하여 당신과 바른 관계를 형성하도록 하려는 데 있음을 강조합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셔서 그들에게 복주시기를 원하십니다.

11절: 특별히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무수한 자손의 축복과 관계의 회복 및 유다를 중심한 한 위대한 지도자의 탄생이 예언되어 있는데 이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건설될 하나님의 나라, 이방인들이 포함된 교회를 예견한 약속입니다. 이 말씀은 바로 신약 교회, 저와 여러분에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타락과 불신에도 불구하고 계속 발전, 완성되어 갈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신실성과 하나님의 통치의 절대성에 근거한 확신입니다.

2:1절: 구약에 있는 모든 축복들이 이제는 새로운 이스라엘인 교회에 적용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구약을 부지런히 읽고 연구해야 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암미’요 ‘루하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바로 하나님과의 언약관계에 있는 새 이스라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반복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세상을 닮아가지 않도록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활이나 칼이나 마병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3. 결론: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고 있습니까? 믿는다고 하면서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고 있습니까? 만일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로암미’라고 하신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는 조건적이면서도 무조건적입니다. 무조건적이라는 말은 외모를 보시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의 응답을 주의해서 보십니다. 우리가 이만하면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아직 덜된 사람입니다. 호세아서을 읽으며 다시금 우리 자신을 철저히 반성하고 우리에게 주시는 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귀한 말씀에 올바로 응답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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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  회중주의 (D. Deddens)     DMKim 2015·08·11 4429 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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