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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중주의 (D. Deddens)
DMKim08-11 17:30 | HIT : 4,895 | VOTE : 345
이 글은 Inleiding tot de studie van het KERKRECHT (교회법 연구 개론)에서 9장 회중주의 (Het congregationalisme)를 완역한 것입니다. 이 글의 저자는 Detmer Deddens (1923-2009)이며 Kampen의 해방파 신학교에서 네덜란드 교회사와 교회법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잘 알려진 Karel Deddens (1924-2005)의 친형이며, 그들의 아버지는 Pieter Deddens (Kampen 해방파 신학교에서 교회사 교수)였습니다.

회중주의
17세기 무렵, 영국 (England)과 미국 (New England)에서 탄생한 교회가 있었는데, 이들은 교리적으로 볼 때 유럽의 개혁주의 교회들과 스코틀랜드의 장로교와 연결점을 가지고 있지만, 교회정치와 관련하여서는 자기들만의 고유한 방식을 택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어떤 이들은 그런 교회들의 성격을 규정할 때 “독립된 (independent)” 혹은 “독립주의 (independentism)”이라는 라벨을 붙이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이 용어를 부적합하다고 여기기에 배격한다. 이 교회의 성격을 말할 때 사용되는 또 다른 표현은 ‘회중주의’인데, 이 표현에 대해서는 강하게 배격하지는 않았다. 1640년대에 회중주의를 주창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스코틀랜드식의 장로교와 대조하면서 나타나는 교회법적인 차이에서 발견하였다. 이런 교회법적 차이는 스코트랜드 개념의 장로회 (지역교회 위에 서 있는 결정기구)에 부여된 기능과 권한에 입각해서 나오는 것인데, 말하자면 교회에서 의사결정 (치리)을 할 때 그 주체가 ‘회중’이냐 아니면 ‘권한을 받은 부류들 (장로교 개념으로는 노회, 혹은 시찰)’인가의 차이이다. 회중주의 교회들은 앵글로 색슨계 (일반적으로 영국계)에 한정되어 있었고, 그 영향력 또한 그 지역 안에서만 나타났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네들 안에서 회중적 교회라는 명칭이 보편화되었다. 이 회중주의는 17세기에 미국에서 더 강하게 나타나게 되었는데, 말하자면 영국에서보다는 보다 더 자유롭게 발전할 수 있었다.
영국에서 엘리자베스가 통치하던 시절에 이미 국가교회 (성공회)와 결별한 교회들이 나타나는데, 이들은 우리가 방금 명명했듯이 교회정치의 한 행태로서 회중주의를 띄었다. 신앙의 박해로 인해 이들 중 대부분은 네덜란드 (예를 들면, Robert Browne는 Middelburg에 Francis Johnson은 Amsterdam에, 그리고 John Robinson은 Leiden에)로 이주했다. 1610에서 1640년에 네덜란드에 다양한 영국 선두주자들이 거주하게 되었다. 이들은 영국 국가교회 (성공회)와는 결별하지 않으면서 영국으로 복귀하거나 아니면 뉴잉글랜드 (미국)으로 떠난 이후에도 회중주의를 가장 잘 수호하는 자들이 되었다. 자신들의 회중주의를 형성할 때, 그들은 R. Browne의 영향력을 철저하게 배제했기에 그의 영향력은 감지되지 않는다. 그에 만해 이들은 Willam Ames 와 Robert Parker (둘 다 네덜란드에서 작고했다)에게서 나온 영향력을 우호적으로 언급한다. 물론 그 사람들은 네덜란드가 교회법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며 실천에 옮기는지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칼빈, 베자, 그리고 종교개혁 이후, 그들의 후예들의 교회법적 사상 또한 이미 세상에 알려져 있었다.
1640년에서 1660년대 사이의 기간은 회중주의가 그 초기의 모습을 갖추는 시기라 규정할 수 있다. New England (미국)에 1648년에 방대한, 말하자면 17개의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는 Cambridge 강령이, 그리고 영국에서는 1658년에 신앙과 예배에 관한 사보이 선언문 (Savoy Declaration of Faith and Order)이 작성된다. 여기에다 의회가 소집한 웨스트민스터 회의에서 이루어진 논의들에서 회중주의자들과 소위 장로교주의자들의 공통점과 차이점들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교회법과 관련된 저작들이 수 없이 쏟아지게 되었다.
그 당시의 시대에 회중주의에 대해서 사람들이 설명하고 밝힌 바대로 그 특징을 나열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신약이 가르치는 교회는 회중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데, 그 회중은 자기 위에 군림하는 어떠한 상위기관을 가질 수 없고, 또한 그 회중은 자기 스스로 그 상위기관에 속한 하위기관으로 여기면 안된다.
2. 회중은 말씀과 성례를 중심으로 하나의 건물 안에 회집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말은 총 회원 수가 한 건물 안에 회집할 수 없을 정도로 비대해 져서는 안된다.
3. 신약시대의 교회가 탄생할 무렵에 생긴 ‘특별한’ 직분자가 존재하던 시절이 지난 이후, 지금은 그리스도께서 각 회중 안에 ‘정상적’인 직분자들을 지명하셨으니, 이른바 목사, 교사, 장로, 그리고 집사이다.
4. 목사와 교사는 회중 안에서 자신들의 직분을 수행한다. 이 두 직분간의 차이는 크지 않다. 장로와 집사는 항존직이다 (기한 없음). 왜냐하면 신약성경은 어디서도 이들의 사역의 기한을 한정시키기 않았기 때문이다.
5. 그리스도께서 직접 직분자들을 부르시지만, 그분은 이 일을 회중을 통해서 하신다. 따라서 성숙한 회중은 교회생활에서 발생하는 모든 업무에, 심지어 권징을 해야 하는 경우에도 관여해야 한다.
6. 직분자란 회중의 뜻을 집행하는 자가 아니며, 교회의 치리 (govern)방식은 민주주의적이지 않고 귀족주의적 민주주의 (aristocratic-democratic: 소수의 엘리트가 전체의 이익을 파악하고 이끌어 가는 방식)이다. 직분자들은 자기의 고유한 책임을 진다. 모든 회중은 그리스도의 통치에만 복속하는데, 바로 그 그리스도께만 모든 회원들과 직분자들은 전적으로 순종한다.
7. 모든 회중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에 상호간 공동의 실천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 요구가 있을 시, 총회를 열어서 성도간 교제하는 것은 선한 일이다. 신약성경은 정규적인 총회의 회집을 규정하지 않았다. 총회로 모인다고 해서 이 모임이 직분자들의 회집으로 보아서는 안되며 이 총회는 어떤 ‘상위’의 권위도 가지지 못한다.
이상 모든 특징들을 나열해 보았다. 여기에 나열된 특징들은 주로 회중주의 교회의 초창기 시대에 제한한 것이다. 그때 회중들의 삶이란 대부분 상호간에 맺어진 약속에 기인한다 (church covenant: 전문용어로 교회언약이라 부른다. 이 언약으로 교인들은 자신들의 책임과 의무에 충실할 것을 서약하는 셈이다.). 대체적으로 그 언약의 내부를 들여다 보면 특정 신앙고백서에 대해서 어떤 언급도 하지 않난다. 캠브리지 강령 뿐 아니라 사보이 선언문 안에서 조차 특정 신앙고백서에 서명하는 것과 관련하여서 어떤 것도 명시되어 있지 않다. 영국과 미국의 교회들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는 동의하지만 교회와 관련된 특정 항목에 있어서 예외를 두고 있기는 하다. 이 교회들은 고백문에 대한 동의를 표명하기 위해 서명한다는 개념을 모르며 그런 고백문서나 기도양식문 (전통적으로 내려오며 정착된 기도문)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교회에서 공적으로 신앙고백의 순서가 있을 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나 요리문답에 동의하는지 묻지 않는다. 그렇기에 따로 성도들의 친교모임 때에 마음속 깊은 신앙을 고백하며 나누어야 했다. 주로 미국에서 문제가 시급하게 발생했는데, 왜냐하면 교회에서 공적으로 신앙고백을 하지 않아서 완전한 교인의 권리를 얻지 못한 부모에게서 아이가 태어났을 경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미국 회중교회는 처음부터 반쪽 언약 (Half-way covenant: 불완전한 언약)을 만들었다. 방금 말한 이 반쪽 언약문서에는 당회에 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이 눈에 띈다. 실제로 명백한 독재체제가 싹트고 있었다. 17세기 에 접어들면서 많은 회중주의 교회들에서 영국이든 미국이든 장로들이 사라진다. 캠브리지 강령과 사보이 선언 간에 총회에 대한 입장에 있어서 분명한 차이가 감지된다. 말하자면 캠브리지 강령이 총회에 대해 보다 긍정적이다. 17세기 이후에는 회중주의는 다양한 변화를 겪게 되었다. 현존하는 회중주의 교회들 대부분은 다른 교회들과 합병하였는데, 영국에서는 장로교회와 합병하였다. 이것이 이후에 지금의 URC (United Reformed Church)의 모체이다.
1640년대에 스코틀랜드 장로교회는 웨스트민스터 총회가 소집될 무렵 화란의 신학자들에게 긴급한 요청을 보내서 자신들을 지지해 주며 회중주의를 지지하는 자들을 거부하는 편을 택해달라고 했다. 말하자면 Zeeland (네덜란드 남서쪽 지대)에서 Apollonius가 스코틀랜드 장로교를 지지하는 글을 썼다.
다른 나라에서도 회중주의의 개념을 지지하면서 확실한 연관성을 드러내는 생각들이 드러났다. 프랑스에서 Jean Morély가 대표적인데 결국 프랑스 개혁교회들이 그를 파면하고 만다. 영국과 미국에서의 회중주의자들도 그의 사상과 거리를 두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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