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Korean Church of Brussels! 브뤼셀 한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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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주일 예배 | 수요 예배 | 초청 설교 | 특별 예배 |
주일 예배 : 2015.10.04. / 참된 양식 참된 음료 (요 6:41-58) / DMKim
 DMKim  | 2015·10·29 19:20 | HIT : 1,046 | VOTE : 191
오늘 추수감사주일로 지킵니다. 혹 이 자리에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가장 기본적인 주제, 구원에 대해서 설교하려고 합니다. 동시에 성찬식을 거행합니다. 성찬식은 세례를 받은 교인들만 참여할 수 있습니다. 오늘 설교를 통해 아직 세례 받지 않은 분들에게 주시는 그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았지만 여전히 연약함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이 주님의 음성을 통해 더욱 강건해 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구원이란 무엇일까요? “죄용서 받고 내가 천국 가는 것…” 이것이 틀리지는 않았지만, 이렇게만 이해하면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첫째는 오해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고요, 둘째는 구원의 풍성함을 얻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선 첫째 문제를 봅시다. 구원을 그렇게만 이해할 때, 어떤 오해가 생길까요? 우선 교회에 대한 태도에서 드러납니다. 즉, 교회에 다니는 것은 내 신앙생활에 있어서 옵션이지 필수가 아니라고 여깁니다. 요즈음 말로 하자면 교회는 선택과목이지 필수과목은 아니라는 것이죠. 우리는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또는 교회의 선배들로부터 주일성수를 엄격하게 배웠습니다. 심지어 주일에 가급적 오락도 하지 않고 그야말로 주님과 이웃을 위하여 하루를 온전히 살았습니다.
요즘 세대들은 어떤가요? 우리 세대들은 이전 세대들에 대해 율법주의, 형식주의… 온갖 비판을 합니다. 그러나 지금 세대들은 주일을 구별하여 지키는 그 엄격함을 많이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이전 세대들보다 신앙에서 퇴보하고 만 것이죠.
굳이 교회에 꼬박 출석하지 않아도 내가 구원받고 내가 예수님 믿을 수 있다는 거짓된 사상이 점점 부상하고 있습니다. 교회 다니지 않는 불신자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 오래 다닌다고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주일성수에 대한 태도와 그 사람의 신앙 정도가 거의 비례합니다.
구원을 ‘죄용서 받고 내가 천국 가는 것’이라고만 이해할 때 생기는 오해는 세상에 대한 태도에서도 드러납니다. 내가 죄용서 받고 내가 천국가면 되는 것이지, 굳이 이 세상의 부조리, 불법에 대해서 관여할 필요는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죠.
결국 지난 시절 한국 교회는 이 땅의 문제, 우리 사회 문제에 무관심한 많은 교인들을 양산하고 말았습니다. 개인의 구원, 개인 영성을 강조했지만, 세상에 대한 관심은 많지 않았습니다. 기독인들이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말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닙니다만, 결국 개인의 구원, 개인 영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가 교인들을 그렇게 만들어 버린 중요한 이유들 중 하나입니다.
그 결과는 너무 비참합니다. 사회의 문제에 아예 등을 돌리든지, 아니면 지나치게 극우파로 혹은 극좌파로 갑니다.
구원을 ‘죄용서 받고 내가 천국 가는 것’이라고만 이해할 때 생기는 두 번째 문제는 무엇일까요? 구원의 풍성함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풍성함이 무엇일까요? 사실 이 문제는 오늘 본문과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요 6:56의 말씀입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주님이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것”을 말할 때, 유대인들은 그것을 문자 그대로 이해합니다. 우리가 식인종인가… 이것이 말이 되는 소리인가… 우리가 어떻게 사람의 살을 먹을 수 있는가… 유대인들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저들이 무식해서가 아닙니다. 그 이유는 영적으로 눈과 귀가 닫혔기 때문입니다.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 이 말의 뜻은 죽음, 그리고 믿음으로 그 죽음을 바라보는 것, 그리고 나도 그 죽음에 참여하는 것, 그리고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이 죽음-믿음-참여-영생 (파워포인트)을 단계적으로 풀어 설명하겠습니다.
이것을 요 6:40절이 잘 말해줍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첫째, 죽음입니다. 예수님은 도대체 자신의 살과 피를 어떻게 우리에게 내어 주셨습니까? 정답은 십자가의 죽음이죠. 자신과 살을 먹고 피를 마시라는 주님의 부탁에서 우리는 우선 그 죽으심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믿음입니다. 주님의 죽으심은 바로 당신의 백성들 때문인 것이죠. 39절에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바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맡겨주신 자, 그들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바로 이 사실을 믿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부탁하신 자… 즉, 이들은 살려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죽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들이죠. 아들에게 주신 자를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 그게 믿음입니다.
그러니 의심하면 안됩니다. 과연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맡기신 자의 명단에 나는 포함되었을까 안되었을까… 저 사람은 포함되었을까 안되었을까… 그것을 생각하는 것은 시간낭비입니다. 이미 지난 역사상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로 씨름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 뛰어 넘는 길은 바로 믿음입니다. 어떤 믿음이죠? 그 아버지가 아들에게 맡기신 자, 그 안에 나도, 우리도 포함됩니다. 바로 우리를 위해 아들이 죽으셨습니다. 이것은 헛된 믿음이 아니라, 참 믿음입니다.
그 다음 참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생각할 때, 머리로만 믿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참여는 아주 다릅니다.
(머리로만 믿으면 안된다… 실제로 행함도 있어야 한다. 행함이 없으면 죽은 믿음이다… 누구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좀 더 심각한 것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 참여하지 않고서 나는 나의 종교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아주 위험합니다.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이죠.)
참여라는 말에 주님은 자신의 죽으심으로 살과 피를 주시고, 우리 역시 죽음을 통해 (여기서 죽음은 자신의 육체의 욕심, 즉 옛 사람의 본성을 죽이는 것이죠!) 우리 자신을 주님께 드립니다. 서로 헌신하는 것이죠. 서로 주고 받습니다.
그리고 참여라는 말에 이미 하나님과 나의 1:1 관계를 넘어서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한 몸에 참여합니다. 만일 다른 형제가 섬기는 신이 서로 다르다면, 우리는 각 자가 섬기는 신과 1:1관계를 하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 하나님을 섬깁니다.
이것을 잘 말해주는 본문을 읽겠습니다. 엡 4:4-5 [4]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5]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요 6: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머리로만 아는 것… 이 표현은 대개 믿음과 행함이 일치하지 않는 삶에 대해서 비판할 때 사용됩니다. 그런데 그 뿐만이 아닙니다. 실제로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참여하면 다른 형제를 돌보는 것 까지 가야 하는데, 머리로만 알면 결국 그 사람의 신앙이 추상적이고 실체가 없다는 비판도 됩니다. 다시 말해서 나만 예수님 잘 믿으면, 나만 뜨거우면, 나만 만족하면 된다고 하는… 지극히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인 신앙생활에 대한 비판이기도 합니다. 자기만 영적으로 만족하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예술 군사 교육 모든 측면에 무관심한 것에 대한 비판이기도 합니다. 머리로만 안다고 할 때, 이런 비판도 포함되는 것이죠.
요즘 기독교가 사회로부터 왜 비판받는지 우리는 압니다. 딤후 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지금 우리가 사회로부터 비판을 받는 이유가, 우리가 경건하게 살아서 그럴까요? 결코 아닙니다. 바로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주의적인 신앙생활 때문입니다. 지역사회를 고려하지 않고, 약자를 배려하지 않고, 지극히 종교생활에 젖어 있으면서 자기 이익과 관련하여서는 결코 양보하지 않고 자기 배만 불리는 우리의 연약함 때문 아닐까요!!!
이것을 교정하는 길은 예수님의 살과 피에 진실로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인 우리의 신앙을 교정합니다.
이제 예수님의 살과 피에 참여하는 것이 주는 마지막 의미는 바로 영생입니다. 요 6: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소망 없는 우리들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이 땅에 오셨습니다. 자신의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살과 피를 내어주시고, 여기에 참여하면 영생을 주시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찬식을 거행합니다. 그 영생을 이 땅에서 미리 맛볼 수 있도록 예수께서 친히 제정하신 예식입니다. 우리는 떡을 나누고 잔을 나눕니다. 그 떡은 예수님의 몸이고, 잔은 예수님의 피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주님의 살을 먹고 주님의 피를 마신다는 의미를 네 가지 단계로 살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죽음-믿음-참여… 그리고 영생이었습니다. 구원은 이와 같이 풍성한 것입니다.
나만 하나님과 1:1 관계를 맺으면 되는 것이야…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주님의 살을 먹고 주님의 피를 마신다는 진정한 의미를 모릅니다. 형제와 화해하지 않고 여기에 참여하는 자들도 그 진정한 의미를 모릅니다. 여전히 죄악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면서 여기에 참여하는 자들도 그 진정한 의미를 모릅니다.
오늘 주님의 살을 먹고 주님의 피를 마시는 자에게 주님이 영생을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나는 자격이 없어… 자신의 연약한 모습만 바라보는 자들, 나는 연약한 상태에 계속 있을래… 그러면서 늘 그 상태가 편하기 때문에 그런 연약한 상태에 안주하는 자들, 죄 가운데 여전히 눌러 앉아 있는 자들, 주님의 음성을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녀들아, 내가 의인을 구하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구하러 왔다. 그 죄인을 불러 의인으로 삼고 내 자녀로 삼고 약속된 생명을 주려고 왔다. 내가 그 죄인을 위해 친히 십자가상에서 내 살을 찢고 피를 흘렸으니 부디 자기의 죄, 자기의 연약함을 바라보지 말고,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바라보라”
그리고 그 죽음을 믿음으로 참여하는 자에게 약속하신 영생을 이 시간 맛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 짓고 있는 죄악에서 돌이키며, 개인주의적, 이기주의적 신앙에서 벗어나서 형제 자매를 돌보며, 하나님과 1:1 신앙에서 만족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며 치유하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도신경은 모두 세 구조로 되어 있는데, 성부, 성자, 성령의 구조이죠. 마지막에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이 나옵니다. 성령을 믿는 것, 그분의 인도를 받는 그 첫 행보가 거룩한 공회, 즉 이 지역교회를 품는 것, 그리고 성도의 교제를 품는 것입니다.
아직 세례를 받지 않은 분들, 주님이 온 인류에게 약속하신 이 영생의 약속, 아버지께서 그 아들에게 맡기신 자를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그 약속을 의지하시고, 세례 받고 성찬까지 나아오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교회가 주님의 살과 피에 진실로 참여할 때, 즉, 죽음 – 믿음 – 참여 – 영생… 이 과정을 경험할 때, 교회는 세상을 이깁니다. 칼과 전쟁이 아니라 이 네 가지 과정이 세상을 이깁니다. 세상으로 가서 이것이 다른 모든 것보다 우월함을 행함으로 보여주십시오. 약육강식의 사회, 갑-을 관계의 사회, 그리고 땅의 행복으로 만족하며 저 영원한 것에 눈이 멀어 있는 사회에 들어가서 동화되지 말고 죽음 – 믿음 – 참여 – 영생… 이것으로 세상 가운데에서 승리하시는 브뤼셀 한인 교회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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