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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 : 2015.09.06 / 공의로 재판하라 (출 18:13-27) / 김동민 목사
 DMKim  | 2015·09·08 18:04 | HIT : 1,375 | VOTE : 177
¬물과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하던 이 이스라엘 민족이 이제는 좀 자랐습니다. 아말렉 군대의 위협으로부터 하나님은 이 백성을 구원해 주심으로 여호와가 과연 우리 가운데 계시는지, 안계시는지… 시험하는 그 이스라엘의 불신을 제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불신을 제거하실 때,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남기셨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우리 가운데 보이려면 모세 홀로 이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없고 모든 백성들이 협력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설교 역시 하나님의 임재와 관련됩니다. 다만 환경이 바뀌었습니다. 이번에는 아말렉과의 전투가 아니라, 재판하는 문제가 전면에 서 있습니다. 과연 재판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조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수많은 사람들을 재판하기 위해서 신실한 사람들을 세워야 하는데, 말하자면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세워야 합니다. 이들을 세우는 기준이 무엇인지를 살피려고 합니다.
첫째, 재판의 의미를 살피겠습니다. 대지: 공의로 재판할 때 하나님의 임재가 드러납니다…
가장 단순하게 말해서, 재판이란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죠. 선과 악을 분별하는 것, 가리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이 타락하면 선을 악이라고 하고, 악을 선이라 합니다. 이사야 5:20에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선과 악을 분별하고 공의로 재판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마음이 부패했기 때문에, 그리고 이해관계가 걸려 있기 때문에 공의로 재판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마음이 부패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도대체 판단하는데 있어서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죠. 누구나 어떻게든 이해관계에 걸려 있습니다. 즉, 자기의 이익과 관련되면, 판단이 흐려지고, 정의롭지 못하게 판단을 내림으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들이 크고 작은 손해를 보는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기독교인들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이 사람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입니다. 창세기 3장에 동산 중앙에 선악과가 있었죠. 정확하게 번역하자면, 선과 악의 지식을 알게 하는 나무입니다. 갓 이 땅에 태어난 아담과 하와, 아직 어리죠. 옳고 그름을 판단할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죠. 선과 악을 알려면 배우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그 선악과를 탈취합니다. 따 먹습니다. 그것은 그냥 배고파서 과일 하나 먹은 것 아닙니까… 라고 변명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은 듣지 않으면서 자기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욕심에서 따 먹은 것입니다. 뱀 속에 들어간 마귀가 이 사실을 분명히 말하지 않습니까? 창 3:5에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기서 우리가 배우는 교훈은, 선악을 아는 것은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으로부터 선악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선과 악을, 옳고 그름을 분별하게 됩니다. 그때 우리를 통해 하나님이 드러나십니다.
반대로, 우리가 우리의 이해관계 안에 갇혀서 선과 악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면 하나님이 드러나지 않고, 도리어 욕을 먹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의 백성들 사이에서 재판하는 문제는 아주 중요합니다. 질서, 도덕 때문만이 아닙니다. 재판하는 행위를 통해 바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드러나야 합니다.
한 때, 한국 교회들이 교회 성장, 성장…. 할 때, 교회들이 이 재판하는 문제에 있어서 너무나 많은 오점을 남겼습니다. 교회 성장,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것에 관심을 가졌지,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문제에 소홀했죠. 그 결과는 비참합니다. 교회 안에 이단들이 들어와도 교회 성장이라는 이해관계가 걸려 있기 때문에 이단이든, 누구든 환영하며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목사가 범죄해도 공의롭지 재판하지 않습니다. 동료목사가 범죄한 목사를 공의롭게 재판하기 쉽지 않죠. (물론 모든 범죄한 목사가 아니라, ‘성공한’ 범죄한 목사의 재판이 쉽지 않은 것이죠.) 이해관계가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니 교인들도 공의롭지 못하게 변해갑니다. 이 이해관계라는 것은 무섭습니다. 그가 신학 교수든, 유명한 목사든, 이 이해관계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합니다. 재판을 공의롭게 하지 못하면 뭐가 사라진다고요? 하나님의 임재가 사라집니다.
이 백성들이 이방민족과는 달리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이 바로 공의로 재판하는 것,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이죠. 오늘 본문을 보니까 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로 살았기 때문에 옳고 그름을 스스로 모릅니다. 다행히 이들이 스스로 판단하며 살지 않고 모세에게 찾아옵니다. 그런데 그 줄이 얼마나 길까요? 이 문제를 알기 위해 두 번째의 대지를 살펴야 합니다.
둘째,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이 광경을 보고 유익한 조언을 줍니다.
대지: 신실한 이방인 (outsider)도 공동체 안에 있는 문제에 대하여 영적인 조언을 줄 수 있습니다.
한 때, 누구나 동의하며, 훌륭한 정책이었다 하더라도 세월이 지나면 업그레이드, 보완해야 할 때가 옵니다. 그렇지 않으면 군데 군데 균열이 생기게 되고 그 균열이 점점 커져서 나중에는 사태를 수습하지 못할 지경까지 오게되는 것이죠.
군데 군데 작은 균열들이 생길 때, 그 문제를 내부에 있는 사람들은 잘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외부에서 온 사람들이 그 문제를 보고 통찰력을 주는 경우를 우리는 경험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여기서 선을 그을 필요가 있죠. 모든 외부인사들이 영적인 통찰력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를 보면서 그가 외부에 있지만, 어떻게 이스라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는지를 세 가지 정도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그는 그냥 아웃사이더가 아니라 실제로 그 사회 안으로 들어와서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살펴 보았습니다. 출 18:14절에 보면, 이드로가 모세의 모든 일들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일단은 들어와서 봐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들여다 보지 않고 바깥에서 판단합니다. 그러면 정밀한 판단을 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브뤼셀 한인교회 처음 온 사람은 예배 순서에 좀 어색함을 느낄 것입니다. 지금의 예배순서로 정착한 지 딱 1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예배순서입니다. 그런데 유럽에서, 특히 개혁주의 혹은 칼빈주의 전통의 교회들은 아주 익숙한 예배 순서입니다. 프랑스에서 오신 분들 중, 우리 교회 예배 순서가 친숙하다고 이야기 하는 것을 듣습니다. 한 교회 안에 예배, 직분, 모든 전통들이 한 순간에 만들어지지 않았고 긴 역사가 있죠. 고민과 기도의 흔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내가 한국에서만 경험한 것을 절대화하고, 다른 교회의 전통을 '이상하다'고 단정지으면 교회에게도 본인에게도 유익이 없을 것입니다.
회사나, 어느 조직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섣불리 판단하다가 우리는 종종 실수를 하지 않습니까? 왜 그런 전통이 형성되었는지를 알려면 들어와서 직접 경험해 봐야 합니다.
둘째, 신실한 사람들이야 말로 주의 교회 안에서 신실한 조언을, 건설적인 조언을 할 수 있습니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귀한 신앙고백을 한 사람입니다. 자기네 사회, 즉 미디안 공동체에서 조직하고 관리하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자입니다. 그런 조직하고 관리하는 탁월한 은사가 하나님을 찬양하며 경배하는 것과 매치될 때, 그것이 폭발적인 영향력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조언을 하기를 두려워 합니다. 책임지기도 싫고, 조언을 할 만큼 그 조직에 깊이 관여하기도 싫기 때문이죠. 왜 사서 그런 고생을 하려하겠습니까? 그냥 적절하게 거리를 두고 내가 취하고 싶은 것만 취하면 된다고 여기기 쉽습니다.
그동안 브뤼셀 한인교회를 거쳐간 성도들, 헌신과 조언을 통해 교회를 유익하게 한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신실했습니다. 그리고 문제 앞에 깊이 들어와서 함께 뒹굴고 함께 씨름하고 기도하면서 교회에 귀한 기여를 했던 자들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벨기에로 보내셨고, 이 교회로 보내셨습니다. 목사도 한 때 외부인이였죠. 그러나 들어와서 깊이 관찰하고, 이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성도들을 하나씩 하나씩 설득해서 걸어갑니다. 이 방식이 이 교회에 맞습니다… 여러분의 체질에는 이것이 나아 보입니다… 그러면 성도들도 이해하고 한걸음씩 한걸음씩 따라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듣고서, 이렇게 결심하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목사님, 장로님, 리더들 붙잡고 조언을 해야겠다… 교회가 이래서 되겠느냐, 저래서 되겠느냐… 아니요. 우리가 해야 할 급선무는, 우선 깊이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아하… 이런 역사가 있었구나… 문제를 발견하지만, 그것을 이해하고 동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품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그 뜻을 공유하고 함께 이루어가는 것이죠.
마지막 대지: 하나님의 공의로운 재판을 위해서 교회 안에 협력자들이 필요합니다.
21절을 보겠습니다. 『너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능력 있는 사람들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를 살펴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능력 있는 사람을 뽑으라고 하는데, 재력과 사회적 지위보다도, 세 가지의 덕목을 제시합니다. “능력 있는 사람들,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
예수님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해관계에 매이지 않으려 하고 진실한 사람들 보면 존경스럽습니다. 그러나 주의 교회 안에서 사람들을 섬기려면 Gentle 하고 nice 한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성품, 그리고 진실, 불이한 이익을 탐하지 않는 성품을 겸비해야 하는 것이죠.
말씀을 맺겠습니다.
신실한 한 성도의 제안으로 교회 안에 건전한 문화가 정착됩니다. 재판을 하려고 할 때, 이해관계에 흔들리면 안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세 가지 덕목, 하나님을 두려워 해야 하고, 진실해야 하고, 불의한 이익을 탐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일들은 모세 홀로 할 수 없었고, 다양한 리더들을 세워서 할 수 있었습니다.
재판을 공의롭게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 선과 악을 분별하는 일이 쇠퇴하고, 이해관계, 인간적인 요소들이 개입되면 주님의 뜻이 이 곳에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해관계, 인간적인 요소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예를 들지는 않겠습니다. 한 주 동안 우리의 삶 가운데 우리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드는 요소들이 무엇인지 돌아보십시다. 특별히 교회 안에 직분을 맡은 자들 그리고 모든 성도들에게,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마음, 진실된 마음, 그리고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마음을 주시고, 이해관계, 인간적인 요소들로부터 자유케 하시며, 우리의 판단, 결정들을 통해 주님의 영광이 드러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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