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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 : 2015.06.14 /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고후 10:1-11) / 김동민 목사
 DMKim  | 2015·06·28 14:34 | HIT : 1,299 | VOTE : 181
바울은 사도인데, 사도가 되는 자격은 적어도 예수님 곁에 머물면서 그분과 동행하고, 예수님의 죽으심, 부활, 승천을 목격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사도들에게 당신의 교회를 맡기셨습니다. 따라서 사도는 자기의 욕심, 자기의 뜻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이 교회를 세워나가야 합니다. 그 일을 위해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은사와 능력을 베푸셨습니다. 참 사도는 이제 그 은사와 능력을 사용하여서 주님의 교회를 세워가야 합니다.
예상할 수 있듯이 마귀는 반대로 일합니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여서 주님의 교회를 무너뜨립니다. 고후 11:13-14에 『[13]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14]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사탄도 예수님을 흉내냅니다. 그것은 거짓 사도들을 교회에 파송하고 그들로 하여금 교회를 무너뜨리는데 일조하게 하는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 바울의 사도직은 아주 중요했습니다. 바울의 사도직이 무너지면, 그가 전하는 복음이 무너지고, 그 복음 위에 서 가고 있는 고린도 교회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본문에서 우리는 두 가지 관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합니다. 첫째, 우리 교회 올 해 표어와 관계 있습니다: 교회의 기둥과 터. 기둥과 터는 교회라는 건물을 지탱합니다. 주께서 원하시면 우리 교회는 교회를 신실하게 세우기 위해서 새로운 직분자들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요긴할 것입니다. 둘째, 요즘 신천지라는 이단이 한국을 강타하고, 이미 외국에도 그 세력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신천지 이단의 중요한 전략 중 하나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교회에서 사역하는 목회자, (혹은 우리 교회시스템으로 보자면 가정교회의 리더들과)와 성도들간의 관계를 끊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목회자 혹은 가정교회 리더들의 흠을 찾고, 그것을 퍼뜨립니다. 그러면 순진한 성도들은 귀가 솔깃해서 그것이 사실인가 보다 하고 추종하게 됩니다. 그런식으로 교회가 분열하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모든 인간은 약점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 약점을 볼모로 해서 세력을 형성하고 교회를 분열시키는 것이죠. 이 두 가지 관심을 함께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시길 바랍니다.
바울의 사도직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유래합니다. 사도는 모름지기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야 합니다. 그는 자기 욕심을 드러내는 자가 아닙니다. 갈 5:24말씀처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이제부터 그는 그리스도를 위해 살고 그리스도를 위해 죽습니다. 바로 이 점에서 모든 직분이 파생됩니다. 목사, 장로, 안수집사, 권사, 서리집사, 그리고 가정교회 리더들과 교사.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를 따르는 자들입니다.
사도직은 왜 존재합니까? 바울이 직접 말합니다. 고후 10:8에
『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무너뜨리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 세우려고 하신 것이니 내가 이에 대하여 지나치게 자랑하여도 부끄럽지 아니하리라』
모든 직분자는 사도직처럼 교회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세우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자기는 드러나지 않고, 자기의 사역을 통해 남을 세우고, 이 공동체를 세우는 자들이어야 합니다.
(현재 저의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제직들과 가정교회 리더들이 자기 일을 맡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람을 섬기고,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애 쓰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압니다. 목사가 해야 할 사역이지만, 홀로 다 할 수 없기 때문에 모두가 분담해서 하는 것이지요. 상처받은 사람들, 외로운 사람들을 만나 위로해 주고, 모든 이야기 다 들어주고, 식사 대접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감사할 일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바울이 반대에 직면하는 것을 봅니다. 바울의 대적자들은 아주 교묘한 방식으로 바울의 사도직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대적자들의 공격에 대해서 우리가 살피려고 합니다. 그리고 바울이 그 반대에 직면할 때, 그가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우리는 보고 배우려 합니다. 결론부분에서도 말씀 드리겠습니다만, 그 태도는 한 마디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입니다.
우선 본문에서 이 대적자들이 바울을 어떻게 공격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고후 10:10을 보겠습니다. 『그들의 말이 그의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그가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그 말도 시원하지 않다 하니』
쉽게 말하면, 바울이 쓴 편지들을 보니 엄청 강하고 용기 있는 사람 같아 보였는데, 막상 직접 만나서 대해보니 약해빠졌고, 언변도 별로다… 입니다. 대적자들은 바울을 직접 만나고서 실망했나 봅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대적자들이 사도 바울을 공격하는데, 문제는 고린도 교인들 역시 그런 논리에 빠져들어가는 것이지요. 그것이 참 위험합니다. 바울이 대적자들의 논리에 편승하려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7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외모만 보는도다 만일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 같이 우리도 그러한 줄을 자기 속으로 다시 생각할 것이라』
외모로 그 사람을 본다고 할 때, 얼굴이나 생김새를 주로 말합니다. 그런데 외모로 그 사람을 본다는 것은 보다 폭 넓은 의미를 갖습니다. 가령, 그 사람의 나이, 학력, 계급, 가정배경도 포함됩니다. 지금 바울의 대적자들은 바울을 판단하는데, 어떻게 판단합니까? 무슨 신비한 영적 체험이 없다는 둥, 깊은 영적 세계를 모른다는 둥, 능력과 기적을 일으키지 못한다는 둥, 사람을 휘어 잡는 카리스마가 없다는 둥, 판단합니다.
그러면 바울이 그들과 비견해서 보여줄 것이 정말로 없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도 자랑할 것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자랑하면서 저들과 대결하는 것은 그야말로 육신에 속한 것이죠. 고후 10:3에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즉, 우리가 땅에 살고 있는 연약한 존재이지만,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않는다… 저들과 같은 방식으로 비방하며 남의 약점을 잡는 방식으로 싸우지 않는다고 합니다.
경험적으로 볼 때, (이 말은 저의 개인이 지내면서 스스로 내리는 평가라는 의미도 있지만, 지난 날 교회 역사적으로 본다는 의미도 포함), 개인의 카리스마가 강한 사람들, 무슨 특출한 경험을 했다고 하는 지도자들이 교회 문제 더 많이 일으키는 것을 봅니다. 묵묵히 한 교회를 섬기며 성실하게 목양하는 자들, 그들이 실력이 없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 실력입니까? 교회 안에 문제가 터지면 해결하지 않고 도망가는게 실력입니까? 아니면 남아서 모든 오해와 불신을 종식시키고 그 안에 주님의 복음이 훼손되지 않게 애를 쓰고, 주님의 이름이 높아지게 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 실력입니까? (고후 10:4-5) 자기 편만 붙들고 반대편은 내 몰아치는 게 실력입니까? 거기에 무슨 실력이 필요합니까? 정치영역에서는 그런식의 방식을 많이 봅니다만, 교회가 그러면 되겠습니까?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까지도 품고 설득해서 한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 실력 아닙니까?
성도 여러분! 오늘 진지하게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도대체 무엇이 실력입니까? 그 모든 학력, 그 모든 외모, 그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Spec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정작 그리스도의 복음을 훼손시키고, 교회를 분열시키고, 자기 욕심을 따라 내 편을 모으고, 반대파를 물리친다면, 이후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제대로 설 수 있겠습니까?
바울이 결코 ‘외모’에 있어서 눌리는 사람, 소위 말해서 꿀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도 대적자들 못지 않게 많은 은사들이 있습니다. 말 싸움 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가진 모든 영적 체험을 말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출신배경에 대해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것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바울은 자기의 약함을 자랑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영성이죠. 모든 것을 갖추었지만, 그것을 드러내지 않고 철저하게 감추고 자기의 약함을 자랑하는 것. 왜요? 거기서 하나님의 능력이, 바로 하나님의 강함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강함을 자랑하는 자들, 그들은 연약한 자들을 부추겨서 교회 안에서 세력을 형성합니다. 결코 복음에 유익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몇 주 전에 ‘보는 문제’에 대해서 영적인 진단을 내린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않는 자들은 결국 자기 경험, 자기 기준으로 사태를 바라봅니다. 철저하게 자기의 욕심으로 점철된 눈으로 보는 것이죠. 내 눈은 객관적이지 않고, 내 영적 상태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여기서 ‘외모로 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죠. 미모가 최고다라고 여기는 사람은 모든 사람을 얼굴로만 판단합니다. 학력이 최고다 여기는 사람들 역시 다른 것은 보지 않습니다. 가난한 자는 자기가 노력하지 않아서 가난해진 것이기 때문에 자기 불찰이다… 라고 세상을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부유한 자는 내가 실력이 있어서 부유하게 되었고, 나는 그런 부를 누릴 권리가 있다고 철저하게 생각하는 부류도 있습니다.
오늘 바울의 대적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저들을 쫓는 무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들이 생각하기에 이것을 가져야만 참 지도자다… 그런 자기들만의 기준이 있습니다 (고후 10:12). 지도자가 예수 믿으면 성공하고 잘 살고 세상의 머리가 되고 실패하지 않는다… 라고 가르치면 그것이 자기 생각과 맞기 때문에 그 지도자를 따라갑니다. 자기 철학, 성공논리, 자기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과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그 지도자를 추종합니다.
바울이 7절에서 날카롭게 말합니다. 『너희는 외모만 보는도다 만일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 같이 우리도 그러한 줄을 자기 속으로 다시 생각할 것이라』
당신이 그리스도에게 속했다면, 남들도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다시 생각하라는 것이죠. 자기의 눈이 자기의 행동반경을 결정합니다. 자기가 그리스도인이면, 성령의 사람이면, 또한 다른 사람도 성령에 속한 줄을 알아본다는 것이죠.
주 안에서 성도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마무리 하면서 사도 바울이 그런 공격을 받고 있을 때, 그가 대처하는 방식을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처음에 제시했던 두 가지 목표… 교회의 진리를 받들 기둥과 터, 차기 신실한 직분자가 될 자들이 무엇을 갖추어야 하는지 알게 됩니다. 그리고 대적자들이 자기 기준으로 교회의 직분자들을 공격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지혜를 얻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1절에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
바로 이런 태도이죠.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 온유는 부드러운 맘으로 상대방을 인정해 주고 용납하는 태도입니다. 관용은 누가 나에게 피해나 상처를 줄 때, 그것에 앙심을 품지 아니하고 도리어 너그럽게 품어주는 태도입니다.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 이것이 제대로 드러난 사건이 바로 바로 십자가 사건이죠. 죄 없으신 주님, 모든 오해와 비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분이 언변이 부족합니까? 기적을 일으키지 못합니까? 모든 것을 할 수 있지만, 온유와 관용하는 태도… 그것이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해 유익한 태도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6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 고린도 교회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복종하게 될 때, 그 때가 되면 대적자들을 여전히 추종하는 세력들을 벌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우리는 오해합니다. 온유와 관용은 끝까지 참는 것 아닌가? 대답은 “아니요" 입니다. 온유와 관용이 책망과 경고와 같이 갈 수 있다는 생각 해보셨는지요?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해 친히 십자가를 지신 그 주님도 다시 오실 때, 온 인류를 그 행한대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온유와 관용이든 책망과 경고이든 교회를 세우며 남의 구원을 위해 사용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자기 욕심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며 남을 섬기기 위해 직분을 맡는 신실한 종들은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을 가지되, 거짓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과 교회를 무너뜨리는 행위에 대해서는 과감한 행동을 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 성령께서 이 성품을 우리 가운데 풍성히 내려주시사, 남을 섬기고자 하는 많은 주의 종들이 배출되고, 비난과 오해 속에서도 인내하며 거짓을 분별하며, 성도를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때로는 주님의 이름으로 책망할 줄 아는 그런 주의 종들이 우리 교회 안에서 많이 배출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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