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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 : 2015.06.07 /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믿음 (약 1:18-27) / 김동민 목사
 DMKim  | 2015·06·13 02:20 | HIT : 1,238 | VOTE : 193
야고보서를 신약의 잠언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야고보서 안에는 지혜의 교훈들이 풍성하게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는 잠언은 잠언이지만, 세속적 꾀나 처세술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야고보서는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지혜를 줍니다. 특별히 오늘 청년부 헌신예배로 드립니다. 청년들은 젊고 냉철한 지성을 가지고 있으며, 정의에 대한 열망,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데 있어서 열심이 남 다를 줄 압니다. 그게 젊음이고 청년 다움이죠. 그런 열정, 혈기를 하나님의 말씀과 지혜로 잘 다스리고 발전시켜 나갈 때, 언젠가 여러분들은 모범적이며 리더쉽 있는 그런 중년의 사람들이 되어 갈 것입니다.
그런 열정과 혈기를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 가운데 잘 다스리지 못하면, 주로 두 가지 길로 가게 될 것입니다. 첫째, 나이가 많아도, 그 열정과 혈기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듬어 지지 않았기 때문에 늘 남에게 상처 주고, 공동체를 힘들게 합니다. 오래 전에, 저와 함께 신앙생활 하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늘 매사에 비판적이었습니다. 늘 담당 교역자 비판하고, 선배들, 어른들 비판하고, 그 덕에 후배들의 존경을 받고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20여년이 지나 서로 나이가 들어서 만났습니다. 그 친구는 여전히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람들과 화합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참 사랑이 많이 필요한 친구다…” 그리 생각하게 됩니다.
둘째, 젊은이가 자기의 열정과 혈기를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 가운데 잘 다스리지 못하면, 결국 나이가 들어서는 변화를 싫어하고, 내가 비판했고 질색했던 그런 어른의 모습이 자기의 모습으로 굳어가게 됩니다. 그런 기성세대가 싫어서 그렇게 냉정하게 비판했건만, 지금 자기가 그런 비판 받는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위로합니다. “너도 이 나이가 되어 보라. 그러면 세상을 알게 될 것이다. 너도 나처럼 될 것이다.”
주 안에서 청년 여러분! 이 두 가지 연약함을 피하려면 여러분의 열정, 혈기를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다듬어야 하고 그 안에 지혜를 배워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볼 때, 세상의 처세술이 아닌, 성경의 지혜를 배우려고 합니다. 세상의 처세술은 순간적으로 나에게 이익을 주지만, 결국은 유익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지혜는 나와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것이죠. 그런 차이를 인식하면서 오늘 본문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래 19절부터 새로운 단락이 시작하지만, 18절이 19절 부터의 말씀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기 때문에 18절을 잠깐 살피겠습니다.
우선 18절을 봅시다.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여기서 하나님은 마치 어머니 같습니다. 우리를 낳으시는데 진리의 말씀으로 낳으십니다. 이 말의 뜻은, 말씀 선포, 즉 설교를 듣는 것을 통해 우리를 거듭하게 하신다는 것이죠. 이것을 알 때, 19절부터 나오는 내용들은 분명해 집니다. 말씀으로 거듭난 자들이 지속적으로 그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지침을 줍니다.
19절에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고 합니다. 세상에도 대개 급하게 자기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사람은 별로 인기가 없죠. 그래서 과묵하고 말을 아끼는 사람이 마치 신비주의 컨셉처럼 인정을 받곤 합니다. 일면 맞는 이야기이지만, 이것은 결국 세상 처세술입니다. 왜냐하면, 남이 말할 때, 들어야 할 때가 있고 아무도 말하지 않을 때 홀로 말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듣기는 속히 하라”는 말의 의미는, 말씀을 듣고 거듭났다고 해서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계속해서 그 말씀을 듣기를 속히 하라는 가르침입니다.
그에 비해 “말하기는 더디 하라”고 합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말씀과 관련된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우선 주력해야 하지, 듣지는 않으려 하면서 이것이 저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다… 라고 단언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성내기를 더디 하라”고 합니다. 그 이유가 20절에 나옵니다.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여기서도 성내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과 관계가 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설교를 들을 때, 혹은 가정교회에서 말씀으로 교제할 때, 내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부대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화가 치밀어 오는 경우를 말합니다.
성내는 것과 관련하여서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내 명예, 내 자존심이 다쳐서 성을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영광, 교회의 이름이 다치기 때문에 성을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야고보가 우리에게 성내기를 더디 하라고 할 때 ‘전자’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 교회의 이름이 아니라, 자기 상처, 자기 자존심이 손상되는 것을 참지 못해서 성을 낼 때, 그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말씀으로 낳으셨지만, 우리는 여전히 죄인입니다. 따라서 속히 말하기 전에, 속히 성을 내기 전에 우선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속히 해야 합니다.
21절에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앞 부분만 번역을 다시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종잡을 수 없이 너무 커 버린 그 악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이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지만, 우리가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지만, 우리 안에 죄성이 완전히 제거된 것이 아닙니다. 정원을 가지고 계신 분들 그런 경험을 하죠. 어디 휴가 갔다 왔는데, 와 보니 정원이 거의 정글이 되어 있습니다. 잔디도 얼마 안 자랐을 때 깎으면 쉽습니다. 그런데 10 센티미터만 자라도 잘 깎이지 않습니다. 잔디를 아무리 잘 관리해도 잡초는 어떻게든 자라는데 잔디보다 훨씬 잘 자랍니다. 조금만 방심하면 걷잡을 수 없게 되는 것이죠.
이것이 우리의 죄성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권면합니다. 이것을 벗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마음에 말씀의 씨가 뿌려져 있으니, 그것이 자라고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온유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눅 8:15에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정리하자면, 마음 속에 말씀의 씨가 뿌려져 있는데, 이것은 자동적으로 자라지 않습니다. 성령이 역사하셔야 합니다. 성령은 역사하실 때,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서 역사하십니다. 그때 우리 안에 쓴 뿌리, 잡초, 우리의 영혼을 갉아 먹는 것들이 뿌리 뽑히고, 우리를 능히 구원할 말씀의 씨가 깊이 자리잡게 되고, 점점 열매를 맺는 것이죠.
22절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말씀을 듣고 행해야 하지, 듣기만 하면 그는 자기를 기만하는 자, 속이는 자라고 합니다. 이 점에서 우리는 26절을 함께 보려고 합니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여기서 ‘경건하다’는 말은 ‘종교적 (religious)’이다는 말입니다. 신적인 존재를 믿고 그 가르침을 따라 행하는 모양을 말합니다. 22절과 26절의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22절에 의하면 말씀을 듣는 것에 그치는 자들은,
26절에 스스로 경건하다, 종교적이다… 라고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22절에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들은,
26절에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않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모두 자기를 속이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달리 표현하면,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에게 구원을 주십니다. 말씀을 듣기만 하고 모든 종교생활을 하는 것 같지만, 혀를 재갈 물리지 않는 자들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참 심각한 말씀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스스로는 구원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주 안에서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말씀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말씀을 듣기는 하는데 그 말씀을 따라 살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23절-24절은 그런 사람들을 이렇게 비유합니다.
“[23]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24]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그 당시 거울이 지금 21세기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거울과 달랐죠. 그 당시에는 은이나 동을 열심히 닦아서 광을 내면 거기에 내 모습이 보입니다. 그때는 아무리 자세히 들여다 보아도 지금처럼 내 모습이 거울에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충 보고 “음… 괜찮네”라고 자화자찬한 뒤 외출을 합니다. 그러고서는 자기가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 곧잘 잊어버리는 것이지요.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으면, 그 들은 말씀의 효력이 사라집니다. 씨가 자라 열매를 맺지 못하고 죽어버립니다. 그러면 생명력이 없는 말씀이 되는 것이죠.
25절은 간단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자신을 그저 희미하게 비추는, 그래서 그 거울 안에서 자신의 죄,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지 못하고, 스스로 경건한 사람으로 기만하게 하는 것이 아니죠. 온전한 율법은 우리의 모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율법을 보면서 자기를 돌아보고 말씀대로 실천하는 자에게 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27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말씀을 듣고 실천해야 참 믿음인데, 그 실천사항을 두 가지로 말합니다. 첫째, 환란 중에 처한 고아와 과부를 돌보고, 둘째,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이 관계를 이렇게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서 예배가 회복되고 나면 우리의 관심은 환란 중에 있는 이웃에게 가고 교회 안의 약자, 사회 안의 약자에게 간다는 것입니다.
같이 예수님을 믿는데, 영광 받고 칭송 받는 자리에는 항상 사람이 붐빕니다. 그런데 고난 받고 손해 보는 자리에 사람이 텅 빕니다.
(예화)
교회에도 보면, 약은 사람은 늘 약지만, 늘 봉사하는 사람이 봉사합니다. 굳은 일 하는 사람이 늘 그 일을 합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면, 교회 안에 약자가 보입니다. 그 사람들에게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손해 보고, 고난 받는 일에 가서 참여하세요. 원망하지 말고, 자원하여서 참여하세요. 정말 돈 주고 가질 수 없는 가치를 알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절 27절은 말합니다. 참 경건은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이다… 산이나 굴에 들어간다고 세상을 피할 수 있을까요? 자기를 잘 지켜야 합니다. 뭐가 세상이고 세속입니까? 우리는 술, 담배, 게임, 오락 이런 것을 마냥 세속적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세속적인 것은 바로 자기 욕심입니다. 내 욕심이 묻어 있는 곳, 그것이 다 세속이고 세상적인 것이죠.
청년들에게 도전합니다. 이 세상을 닮지 마세요. 말씀과 기도,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세상으로 들어가서 세상을 이기고 사탄을 이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듣기만 하고, 종교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정작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받지 않는 말쟁이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사람은 점점 영적이며 하나님을 사랑하거나, 아니면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지만, 그렇게 자신을 포장하고 스스로 속이지만, 사실은 자기를 사랑하거나, 그렇게 됩니다.
오늘 주의 말씀 앞에 선 모든 성도 여러분! 예배에 목숨 걸고, 약한 자를 돕고, 자기를 세상으로부터 지키세요. 그것이 참 종교이고, 경건이고, 신앙생활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듣고, 행하고, 참된 경건을 보여주고, 주님 다시 오실 때, 인자가 믿음을 보겠느냐 할 때, 참 믿음을 보여줄 수 있는 브뤼셀 한인교회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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