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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 : 2015.05.24 / 하나님의 양육 (출 13:17-14:1) / 김동민 목사
 DMKim  | 2015·05·27 16:50 | HIT : 1,280 | VOTE : 165
우리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백성들을 애굽의 종살이 하는데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 백성을 이끌고 최종적으로, 약속의 땅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런데 만일 이 백성들이 블레셋이라는 땅을 통과하면 수 일 안에 가나안 땅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뺑뺑이 돌리십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40년만에 도착합니다.
(지도)
수 일만에 갈 수 있는 길인데, 이렇게 오랜 세월이 걸리도록 다른 길로 인도하신 이유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출 13:17에
[17]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믿음이 성숙한 사람은 전쟁을 만나면 믿음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약한 자들이 전쟁을 만나면 믿음에서 떠나기 쉽습니다. 그런데 그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상태가 이전보다, 예수 믿기 전 보다 더 악화된다는 것이죠. 블레셋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나쁜 것은 지름길로 보이는 그 블레셋 안에 전쟁이라는 복병이 있다는 것이고, 그것이 백성을 이전보다 더 피폐하게 만든다는 것, 이것이 나쁜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은 아직 믿음이 연약한 이 백성에게 전쟁을 피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오묘한 하나님의 섭리가 1초 앞을 예상치 못하는 사람의 눈에는 철저하게 감추어져 있습니다. 짧고 효과적으로 보이는 길에는 전쟁이라는 복병이 숨어 있으니 그 복병을 만나기 보다는 차라리 길게 돌아가는 것이죠.
믿음이 성숙한 자들은 바로 이점을, 즉 이러한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체험해야 하고, 동시에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배려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예수님을 갓 믿기 시작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인도를 잘 인식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마치 아이가 태어나 밥을 먹기까지 부단히 훈련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밥을 먹기까지 수년이 걸리지 않습니까? 처음에는 소화가 잘 되는 분유를 먹이고, 시간이 지나면 미음, 시간이 지나면 수저를 잡는 법을 배워야죠. 특히 젓가락을 제대로 쥐는데 얼마나 많은 세월이 필요합니까? 부모가 부단히 인내하고 가르치기 때문에 아이가 어느새 밥이라는 것을 먹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과정이 귀찮다고 여기고, 아니 내 생각엔 더 빨리 아이가 자랄 수 있다고 여기고 처음부터 단단한 음식을 주면 어떻게 됩니까? 아이가 그것 받아먹으면 큰 일 납니다.
사람의 연약함을 아시는 하나님, 그러나 이 연약한 백성을 훈련시켜서 결국 생명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안식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는 그 하나님의 섭리, 인도를 받고 있는 성숙한 사람들이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에게 조언을 잘 해 주셔야겠죠. 갓 믿기 시작한 성도들은 잘 모를 때, 친한 사람들에게도 물어야겠지만, 더더욱 여러분의 영혼을 담당하는 목사 혹은 목자/목녀들에게 물어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인도 잘 못 받고, 쉽게 빨라 보이는 길로 가다가 전쟁을 만나면 어떻게 됩니까? 17절은 애굽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애굽이 뭡니까? 세상이 주는 성공의 노예, 정욕의 노예, 게임의 노예, 이기심의 노예로 가득찬 세상, 한 마디로 자기를 포기하지 못하고, 늘 자기 자존심, 자기 이기심에 매여 있게 만드는 그런 세상입니다. 그런 노예의 세상에서 우리 하나님이 나를 기적적으로 구원해 주셨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렵게 교회에 왔습니다. 그러니 처음부터 걸음마를 잘 해야 하죠. 함부로 블레셋을 횡단하면 큰일 납니다. 풍파가 오고, 시험에 들면, 신앙에서 영영 멀어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갓 믿음에 이른 자들이 너무 쉽게 블레셋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그 사람들을 블레셋으로 인도해 놓고 뒷 감당 못합니다. 책임 못 집니다. 여러분의 리더들은 영혼에 대한, 자녀에 대한 책임을 집니다. 그런 사람들을 의지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먼 길로 뺑뺑이 돌리시지만, 섬세하며 책임 있게 백성을 돌보시는 그 하나님을 만나려고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와 같이 사람의 연약함을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블레셋이 아닌 광야로 이 백성을 인도하셨습니다.
‘광야’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릅니까? 일단 생명이 살 수 없는 곳, 희망이 없는 곳, 끝 없이 방황하는 곳… 그런데 ‘광야’는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이기적이며, 자기사랑이 판치는 그런 세상적인 것으로부터 격리되는 곳입니다. 그리고 자기를 철저하게 낮추는 곳입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누군가가 돌보아 주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곳…. 그곳이 광야입니다. 신명기 8:14-16이 잘 설명합니다.
[14]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15]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16]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많은 사람들이 특별한 체험, 남들이 경험해 보지 못한 신비한 것들을 체험하길 원합니다. 그런 체험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누구나 한 번 이상 이런 체험을 갈망합니다.
그런데 사실 아무 것도 없는 그 광야에서 매일 만나로 먹여주신 것, 특별한 체험이죠.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를 몇 년 먹었냐 하면, 무려 40년을 먹었습니다. (사실 아무리 맛있어도 같은 음식을 여러 번 먹으면 참다가 나중에 버럭 화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무리 특별한 체험도 40년동안 매일 하면, 나중에는 그게 특별한 지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광야에 이 백성을 인도하시고, 더 귀한 것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인도하심, 계획하심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와 같이 우리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곳, 비록 광야이지만, 특별한 보호, 특별한 인도, 특별한 섭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 보호하심이 있는 광야로 누가 인도합니까? 우문일 수 있지만, 굉장한 현답을 요구합니다. 출 14:1을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 섭리, 보호가 있는 광야로 가는 것에는 많이 인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인도하심을 당신의 종, 모세를 통해서 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함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걸어갑니다. 그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백성들에게 알리는 자는 바로 지도자 모세입니다. 세우신 종을 통하여 생명의 길로 인도하게 하십니다.
주 안에서 성도 여러분!
블레셋으로도 가지 말아야겠죠. 그런데 그것은 소극적인 대처방안입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모두가 한 사람도 열외되지 말고 함께 광야로 가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함께 걸어갈 수 있어야겠죠. 교회가 공예배를 회복하고 주일 성수 하자고 외칠 때, 동참하는 것, 교회가 신앙의 계승과 거짓된 공격에 대비하기 성경을 읽자고 할 때, 함께 동참하는 것, 교회가 마음을 합하고 이 시대에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함께 기도하자고 할 때, 동참하는 것, 교회가 다음 시대를 준비하자고 할 때, 교사로 자원하는 것, 찬양대로 섬기고, 목자/목녀로 섬기고, 남/여전도회 임원으로 섬기는 것, 직분으로 섬기고, 제직으로 섬기는 것… 지금은 선교바자회를 앞두고 선교에 총력을 기울입니다. 거기에 동참한느 것…
이것 가볍게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도 40년간 만나 먹었습니다. 우리 교회도 이런 섬기는 일들을 35년동안 해 오고 있었습니다. (늘 하니까 별 것 아닌 것 같죠. 밥을 늘 먹지만, 한 끼 굶어도 별 차이가 없다고 하다가 하루만 굶어보면 매일 먹는 밥의 위대함을 알게 됩니다. 늘 함께 살고 있는 부부, 하루라도 어디에 가서 좀 눈에 안 띄었으면 좋겠다… 사라져 주었으면 좋겠다…. 라고 하는데, 실제로 며칠 안 보면 그 사람의 위대함을 알게 됩니다.)
매일, 혹은 매주 규칙적으로 하고 있는 것, 이것 형식에 매였다… 습관적으로 한다… 라고 하면서 자기도 감당하지 못하고 책임지지 못하는 비판 쉽게 하지 맙시다. 매일, 규칙적으로 하는 것이 무섭죠. 그리고 단언컨대, 거기에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 인도가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하나님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는 사람의 연약함을 아시기에 짧고 효과적으로 보이는 길이 아니라 길고 험한 길로 인도하시는 그 하나님의 오묘함을 보았습니다. 광야, 40년간의 긴 여정, 거기엔 사실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와 인도가 있었습니다. 특별한 것도 늘 겪다 보면, 일상이 되어 지루하게 보이지만, 이스라엘은 그 일상적인 것, 규칙적인 것을 결코 무시해서는 안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하나님의 인도는 사람 모세를 통해서 이루어짐을 보았습니다. 모세는 과연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다 알고 이 백성을 인도했을까요? 아닙니다. 모세는 1초 앞 일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찌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백성을 인도합니다. 그러니 백성들이 잘 따라옵니다.
(예화)
아이에게 맞는 인도방식이 있습니다. 우리는 내 경험사례로 아이에게 주입하기 쉽습니다. 매일 성경 읽고 기도 하고 찬송하는 것, 그것이 아이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여기기 쉽지만,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다른 방식으로 아이를 억압합니다. 그리고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억압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오묘해서 우리가 우리의 이성과 우리의 경험으로 결코 측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블레셋의 땅을 횡단하게 하는 대신 아주 긴 여정이 되겠지만 홍해를 지나 광야로 인도하길 원하십니다. 그냥 고생 좀 하면 인간된다… 라고 하는 동네 아저씨들의 지혜 때문이 아닙니다. 광야에서 특별하게 보호하시고 돌보시기 위함입니다. 이 백성은 그런 돌봄, 그런 보호가 필요하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주 안에서 성도 여러분
이런 연약한 자를 향한 하나님의 섬세한 배려, 좀 힘들지만 광야를 통해서 축복의 땅으로의 인도하심, 많이 연약하지만, 당신의 종을 통해 하시는 방법을 깨닫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매일 돌보시는 그 하나님의 인도 아래 함께 거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별한 것도 매일 하면 식상해져서 감사와 그 귀함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우리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서 공예배, 주일성수, 가정예배를 지속적으로 감당하며, 특히 선교바자회를 앞두고 모두가 함께 하나님의 인도하심 아래 거하고, 그 가운데서 우리가 차마 다 파악하지 못하는 그 특별한 하나님의 인도하심, 배려하심, 섭리를 깨닫고 감사하는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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