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Korean Church of Brussels! 브뤼셀 한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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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 : 2015.05.17 / 승천이후를 살아가는 교회 (계 12:1-17) / 김동민 목사
 DMKim  | 2015·05·27 16:47 | HIT : 1,241 | VOTE : 182
오늘 우리는 승천주일로 지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40일이 지난 후에 하늘로 오르셨기 때문에 하늘로 오르신 그 날을 기념하여 승천주일로 지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계시록, 모든 세세한 부분들을 다 설명하지 않겠고, 다만 큰 주제들 예수님의 탄생, 그 배후의 사탄의 공격, 예수님의 승천, 그리고 이 땅에 남은 교회와 사탄의 최후의 결투를 본문안에서 살피려고 합니다.
우선 4절을 봅시다.
『그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유대인의 왕 헤롯이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 모든 남자 아이를 살해하라는 명령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5절은 예수님의 승천을 말합니다.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6절은 교회가 광야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양육을 받는 장면입니다.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이스라엘이 출애굽 한 이후 광야에서 그냥 생고생 한 것이 아닙니다. 만나, 메추라기 떼, 반석에서의 물을 통해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통해 특별한 보호를 받고 살았죠.
13절은 사탄이 땅에 남겨진 교회를 공격하는 내용입니다.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는지라』
17절은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쌍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이 예수님의 승천을 가장 두려워 하는 자가 있었으니 바로 마귀, 사탄입니다. 왜 그럴까요?
구약 시대에 마귀의 공격대상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메시야, 즉 구원자이고, 다른 하나는 그 구원자로 인해 구원을 받게 될 성도들, 다시 말하자면, 교회였습니다. 마귀는 경건한 자손들을 죄로 오염시키고 거룩하지 못하게 부정과 거짓을 심어놓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구원자의 탄생을 부단히 방해를 해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위기때마다 막혀 있던 구원의 물줄기를 터뜨리시고, 새로운 역사를 이어가셨습니다.
이제 신약시대가 되었습니다. 아기 예수께서 태어날 즈음 유대인의 왕 헤롯을 자극하여서 예수님의 생명을 위협했습니다. 마귀는 구원자 예수님을 넘어뜨리기 위해서 끊임 없이 공격했습니다. 광야에서 세 번의 시험으로 공격합니다. 그리고 동족, 유대인들을 통해 공격합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 할 때, 예수님은 늘 피해 다니셔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들의 욕심 때문에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려 한다는 저들의 심중을 다 아셨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가까운 친족들을 통해 공격합니다. 가족들은 자주 예수님의 지위를 이용해서 이점을 보려고 했습니다.
주님의 가족 개념은 독특했습니다. 혈연이 아니요,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이 한 가족이라고 늘 천명하셨습니다. 마 12:50에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마귀가 예수님을 아주 코너에 몰고 결정타를 날린 적이 있죠. 바로 당신의 신실한 제자 베드로를 통해 공격합니다. 공격의 내용이 무엇이죠?
주님이 이제 제자들이 믿을 만하다고 여기고서 자신이 정작 해야 할 사역에 대해서 알려주십니다. 마 16:21에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바로 이 일을 위해 세상에 오셨거든요.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고, 자신의 희생이 없이는 이 백성을 생명의 길로 인도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죽음의 길로, 말하자면 십자가의 길로 점점 가까이 가고 있습니다. 자기 이익만 생각하고, 걸핏하면 한 자리 차지하려고 다투는 이 제자들에게 주님은 자신이 왜 이 땅에 오셔야 했는지, 이루어야 할 사역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해 주었습니다.
그때 수제자 베드로가 이렇게 말합니다. 마 16:22에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마치 항변하면서 (꾸짖으면서 다그치면서), 말합니다. 주님은 이런 유혹을 단칼에 물리치십니다. 마 16:23에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베드로는 자기도 모르는 새 사탄이 되어 버렸고, 온 인류를 위한 주님의 속죄사역을 가로 막는 방해꾼이 되었습니다. 참 묘한 순간이죠. 생사를 같이 하겠다는 사람이 정말 나의 미래를 염려하며 달콤한 말을 하는데,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었다가는 잠시 유익할지 몰라고 치명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이죠.
사탄은 동족을 통해, 가족과 친족을 통해, 그리고 신앙 안에서 운명을 같이 하는 자기 제자 베드로를 통해 예수님을 공격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돌아가시는 순간, 상당한 데미지를 입게 되기 때문입니다. 골 2:15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십자가는 실패가 아니라 죄인을 의롭게 하시는 주님의 속죄사역이며, 그것은 곧 승리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셨고, 심지어 승천, 하늘에 오르셨습니다. 주님 다시 오실때까지 사탄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교회를 공격할 것입니다.
사탄에게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사탄이 교회를 공격한다고 할 때, 어디를 공격할까요. 어디가 치명적일까요? 가끔씩 동물의 왕국을 보면, 사자나 호랑이가 사슴을 잡는 장면을 봅니다. 공격할 때, 여지없이 그 타겟의 목을 뭅니다. 숨통을 끊어야 편하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이죠.
사탄이 교회의 숨통을 끊기 위해서 어디를 공격할까요? 우선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사탄은 교회 안에 분쟁을 일으킬 것입니다. 아주 유력한 공격임에 틀림 없습니다. 사람 관계에 불신이 가게 만듭니다. 서로 의심하고 경계하고 미워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사탄은 지혜로운데, 물론 악한데 지혜롭습니다 (롬 16:19). 사탄은 하늘에 오르신 예수님과 당신의 백성간의 관계를 끊으려 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안다는 것은 머리로 아는 지식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영적인 통찰력입니다. 어떤 교회가 시험에 들고, 인간 관계에 문제가 있고, 외부의 공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 어려움들은 대부분 우리가 예수님과 관계가 멀어졌기 때문에 옵니다.
사탄은 하늘에 오르신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를 끊어버리는데, 마치 어머니로부터 탯줄을 통해 영양분을 공급받고 있는 태아를 공격할 때, 탯줄을 끊어버리듯이, 그리스도와 우리를 연결해 주는 그 탯줄을 끊어버립니다.
주 안에서 성도 여러분
사탄의 이러한 공격을 볼 수 있는 힘, 그것이 영적인 통찰력 중 하나입니다. 영적인 통찰력, 즉 성령이 주시는 지혜이죠. 모든 시험의 근원, 모든 문제의 근원,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
그래서 브뤼셀 한인교회도 이 승천주일을 맞이하여 어떻게 하면 사탄의 총공격에 대비할까 대책을 마련해야 하죠. 크게 세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공예배를 통해 무너져 가는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도의 중요한 의무 중 하나는 이 공예배를 위해 기도하며 말씀과 말씀을 전하는 자를 위해 기도합니다. 공예배, 말씀, 직분자들이 변질되면 나도 함께 병들게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공예배는 필수이지만, 공예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바로 형제, 자매를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공예배는 공식적 예배의 준말이죠. 목사의 축도 (강복선언)가 선포되고 나면 공식적 예배는 끝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의 예배의 삶은 계속됩니다.

(예화 - 구체적인 실천사항: 예배 후 식사교제 때)

주님이 승천하신 후 사탄이 이젠 교회에 대하여 총공격을 퍼부을 텐데요, 이 때 우리가 대비해야 할 마지막 셋째는 이 지역사회를 섬기는 것입니다. 지역사회를 섬기는 방법은 많죠. 봉사, 전도, 그리고 선교를 꼽을 수 있습니다.
1960년대에서 80년대 말까지 한국 교회는 양적으로 꾸준히 성장했습니다. 그때 교회는 영원 구원이라는 구호를 외치고 가정, 직장, 이웃에게 전도에 열심을 내었습니다. 그것은 귀하고 고무적인 것이죠.
우리가 가진 복음, 그 안에 사랑과 위로가 있고, 구원과 영생이 있습니다. 동시에 복음은 죄로부터의 회심을 요구하고 자기 부인하고 자기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실 것을 요구합니다. 복음은 포용성과 배타성을 내포하고 있죠.
우리는 복음이 가지고 있는 배타성 때문에 고난을 받을 수 있다고 성경은 늘 말합니다. 그러나 자주 우리의 약점, 우리의 욕심이 복음 전도에 방해가 되고 맙니다. 벧전 2:20은 말합니다.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제 한국 교회의 성장이 멈추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급속도로 퇴보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한때 죽어가는 서구 교회를 향하여 “교회 성장의 비결이 여기에 있다..”고 큰소리 떵떵 쳤습니다. 그래도 서구 교회는 수 백년을 버티잖습니까? 우리는 해방 이후에 급 성장했다가 급 하강하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우리의 현주소를 돌아봐야 합니다. 한 영혼에 대한 열정은 잃어버리지 않으면서 그 한 영혼을 품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기 위해서… 말하자면, 남은 구원하려고 하면서 과연 나는 주 앞에 올바로 서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내가 학업에 성실한 지, 내가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에게 존경을 받는지, (내 공부, 학교생활에서 태만한 사람이 어찌 복음에 대해서 말할 수 있습니까…), 내가 교우들로부터 인정을 받는지, 그리고 내가 가정에서 배우자에게 자식에게 부모에게 인정을 받는지, 심각하게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주 앞에서 재정비할 때, 주변에서 우리가 할 일들이 보입니다. 벨기에의 개신교 1퍼센트 정도 됩니다. 오늘 오후에 개신교 장학사께서 자신은 어떻게 회심했는지 신앙간증을 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벨기에 개신교 현황을 소개해 주시고 동료크리스찬인 우리가 어떻게 섬길 수 있는지 제안을 해 주실 것입니다.
남을 변화시키기 위한 신기한 선교전략, 산뜻한 프로그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바로 알고 우리가 먼저 복음에 합당하게 사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성도 여러분
주일성수, 공예배에 대한 개념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탄이 기뻐하는 일입니다. 우리 주님은 승천하셨고, 사탄은 끊임 없이 주님의 교회를 공격하는 이 시대에 우리는 혈과 육으로 사탄의 공격에 맞설 수 없습니다. 영적 전쟁이기 때문에 우선 주일성수와 예배를 회복합시다. 그리고 내 형제, 이웃을 돌아봅시다. 그리고 주변 지역을 돌아봅시다. 승천하신 주께서 이 번 한 주도 여러분들 각 자의 삶 영역에서 다스리시며 저희들을 통해 곳곳에서 귀한 열매 맺게 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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