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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 : 2015.05.10 / 제5계명의 의미 (출 20:12) / 김동민 목사
 DMKim  | 2015·05·12 18:43 | HIT : 1,241 | VOTE : 173
요즘에 5계명에 대해서 설교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5계명은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에 대해서 말하는데, 지금은 권위에 대한 반감이 극도에 달한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사실5계명은 아주 구체적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고 말하고, 그에 따른 보상,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할 것에 대해서 말합니다. 5계명에서 다른 사람이 아닌 부모를 언급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최초의 권위자가 바로 부모이기 때문입니다. 학생이 학교의 선생님이 싫으면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갈 수 있습니다. 심지어 자기 나라의 대통령이 싫고 이 나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민을 갈 수 있습니다. 내가 가진 국적이 마음에 안 들면 국적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자기 앞에 있는 부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부모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권위자, 그래서 제 5계명에 부모가 등장합니다.
사실 5계명의 핵심은 ‘효도’만이 아닙니다. 제 5계명의 보다 근본적인 핵심은 바로 ‘권위’인 것이죠. 권위란 쉽게 말하자면 어떤 집단에서 영향력을 나타낼 수 있는 힘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아버지에게 권위가 있다…” 이 말의 뜻은 아버지가 가정이라는 집단을 이끌고 그 안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죠. 목사에게 권위가 있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서 갈 수 있도록 이끌고 그것을 위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죠. 대통령의 권위는 무엇일까요? 한 나라를 이끌고 그 안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이죠.
지금 우리 사회에 권위의 위기가 왔다는 말은 이젠 식상할 정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권위의 위기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데 권위의 위기가 왜 오는가?… 라고 물으면 저마다 다르게 대답합니다. 여기에는 정치적 양극화의 문제도 함께 나타납니다.
대체로 보수주의자들은 문제의 원인이 아랫 사람들에게 있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정부는 공권력을 사용해서 권위를 회복해야 한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대체로 진보주의자들은 문제의 원인이 현재 기득권을 쥐고 있는 자들이라고 여깁니다. 이들은 대체적으로 기존의 권위를 좀처럼 인정하지 않고 걸핏하면 저항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편이든지 간에 문제가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여기는 사람을 좀처럼 만나기 힘듭니다. 대부분은 문제의 원인이 상대방에게 있다고 여깁니다. 성도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금 한국 사회에 권위의 위기는 무조건 상대방 때문일까요?
주 안에서 성도 여러분!
오늘 설교를 통해 우선 교회 안에서의 권위의 회복에 대해서 말씀드리려 합니다. 교회 안에 권위가 바르게 회복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가정과 우리의 삶의 영역에서 권위가 바로 서 갈 수 있도록 도우실 것입니다.
우선 교회 안에서의 권위의 문제를 살펴 봅시다. 아니나 다를까 교회 안에서의 권위의 문제 어떤 영역에서보다도 건드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직도 적지 않은 성도들은 목사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경우 좋은 지도자는 성도의 눈을 열어주고, 말씀을 골고루 가르쳐서 잘 분별하며 목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맹목적이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하겠죠. 목사는 성도가 목사에 대해 가지는 존경심을 결코 남용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는 목사도 역시 사람이고 죄인이라고 여기는 세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고무적인 현상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이들이 목사를 맹종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목사도 사람이고 죄인에 불과하다는 시각은 자주 목사에 대한 좋지 않은 경험에서 나오기 때문에 문제이죠.
칼빈은 기독교 강요 (IV.iii.1)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 (하나님은) 때로는 우리보다 못한 사람들을 통해서 말씀을 선포하시는데, 이를 통해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는 습관을 가지도록 하신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직접 말씀하신다면 모든 사람이 두렵고 떨림으로 즉시 귀를 기울이고 받아들일 것인데, 이것은 결코 놀랍지 않다……. 그러나 흙에서 나온 보잘 것 없는 인간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할 때, 그가 우리보다 나은 점이 없을지라도 그를 하나님의 일꾼으로 여겨 배우는 태도를 보인다면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경건과 순종을 가장 잘 증명하게 된다 (고후 4:7).”
많은 사람들은 권위를 가지고 있는 자들은 흠이 없고 깨끗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작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이 권위의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해법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주께서 요단강가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음성이 들리죠. 마 3: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먼저 사랑하여 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본질상 동등하시지만, 자신을 낮추시고 그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지극히 당연하고 간단한 공식을 만들 수 있습니다.
‘권위의 회복은 위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회복이 아래로 전달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권위자에게도 의무를 요구하지만, 아랫 사람에게도 의무를 요구합니다. 제발 성경을 진보주의 관점에서 읽지 말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정치인, 부유한 자, 지도자들의 폐단을 말하고 아랫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을 무조건 옹호하는 것 같죠?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모두에게 자신의 의무를 다하라고 가르칩니다 (엡 6:1-9).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순서는 위에서부터 입니다. 내리 사랑이 있고 난 다음에 상호 사랑이 있는 것이죠.
이와 같이 권위자들이 바르게 권위를 행사하고, 아랫 사람들이 그 권위를 인정하고 나면,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른 방향으로 교정하는 작업입니다. 저는 브뤼셀 한인교회 가정교회 리더들에게 이렇게 강조합니다.
“여러분, 목원들을 보살피고 신경 쓰시느라 얼마나 수고가 많으십니까? 그것 참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더 어려운 것은 뭔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저들을 때론 책망하고 그래서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본래 본성적으로 칭찬은 좋아하고 비판은 싫어합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 안에도 이런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정착하고 있습니다. ‘너는 너, 나는 나…’ 이런 식으로 상대방과 거리를 두고서 서로 싫은 소리 하지 않는 것이 미덕인 양 여겨집니다. 그러다 보면 싫은 소리 하는 사람은 교회 안에서 별로 인기가 없어집니다.
(예화)
요즘 교회 뿐 아니라 가정 안에서 일반적으로 보이는 현상은 일단은 상대방에게 혹은 자식에게 듣기 싫은 소리를 도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한인 사회가 좁다 보니 싫은 소리 한 번 잘못했다가 소문을 타고 나는 매장되고 나쁜 사람으로 낙인 찍히는 것이 두렵기도 한 것이죠.
남에게 싫은 소리 하기 힘든 이유는 또 있습니다. 나에게도 약점이 있는데, 남이 나를 지적할까 두렵기도 합니다. 그냥 서로 덮어주고 관계에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살자는 것이죠.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마 7:5
[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자기 눈에 들보를 빼고, 그 다음에 형제의 눈 속에 있는 작은 티를 빼 주라는 것입니다. 적지 않은 성도들이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이렇게 생각하려 합니다. “내 눈에 들보가 있겠지…” “내가 문제의 원흉이지…” 라고 자책하면서 자신을 반성하고 넘어가는 스타일이 많습니다. 그것도 때론 귀하죠. 그러나 더 어려운 것은 나와 우리 모두가 죄를 멀리하고 주님이 원하시는 길로 함께 걸어가자고 권유하는 것입니다.
(예화)
끝으로 가정의 문제를 살피기 전에 지금까지의 말씀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십계명 중 제 5계명을 다루면서 권위의 문제를 살폈습니다. 지금 우리의 사회는 권위의 문제로 상당히 진통을 겪고 있기 때문에 5계명 설교는 아주 적실합니다. 위에서부터 권위를 회복해야만 아래로 전달이 된다고 그렇게 서로 상호 사랑의 결실을 얻는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우리는 이 모습을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모습이 교회에서 우선 드러나야 하기에, 교회에서의 권위의 문제를 잠깐 살폈습니다. 권위가 회복되고 나면, 즉 권위를 행사하는 자들은 합당하게, 그리고 아랫 사람들은 거기에 순복할 때, 그 다음 밟아야 할 스텝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교정하는 것이었습니다.
끝으로 이제껏 배운 내용을 가지고서 가정의 문제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요즘 집에서 아이에게 싫은 소리를 못하는 시대가 되었죠. 그 이유는 많이 있겠지만 출산율 저하도 한 몫을 합니다. 최근 통계에 의하면 우리 나라의 경우 한 가정 당 자녀 수는 1.3명이 조금 넘습니다. 그러니까 한 가정에 자녀가 두 명이 있는 집보다 한 명이 있는 집이 더 많다는 말입니다. 북한에는 한 가정 당 평균 두 명입니다. 수치로만 볼 때, 우리 상황이 더 암울해 보입니다.
더구나 이 서구 사회에서 우리 아이들은 부단히 벨기에 가정과 우리 집을 비교합니다. 저 집에는 이런 저런 것이 있는데, 우리 집은 왜 없는가…
그런데 부모도 아이들을 비교하죠. 저 아이는 공부도 잘하고, 착하고… 넌 왜 이 모양이냐… 서로 비교하지 맙시다. 일단 부모들이 비교하는 것을 그만두고 인내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의 형편보다 더 나아 보이는 대상과 비교하지, 나보다 못해 보이는 대상과는 비교하지 않습니다.
가정에서 부모가 권위를 세우는 방법이 있다면, 일단은 부부가 서로 마음이 맞아야 하죠. 의견에 충돌이 생기면, 서로 조금씩 양보해서라도 합의를 이룰 수 있어야 하죠. 아이가 크면 클수록 부부간의 의견차이가 쉽게 좁혀지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결코 아이 앞에서 다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야 하고, 아이가 없고 둘 만 있을 때, 서로 이야기를 해서 서로 의견을 조율할 수 있어야 합니다.
5계명은 부모를 공경할 때, 다시 말해 위 사람의 합당한 권위에 순복할 때,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한다고 본문은 가르칩니다.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 이유는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아이에게 가르쳐야 할 책임과 의무를 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차적으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주님이 주시는 복을 풍성히 누린다는 말입니다. 21세기에 적용하자면, 가나안 땅은 천국이죠. 죄 많고 불의가 가득찬 세상에서 오래 사는 것이 하나님의 복이다… 우리는 그렇게만 말할 수는 없습니다.
부모를 공경해도, 사람이 장수할 수도 있고 단명할 수도 있습니다. 그 땅에서 잘되고 장수한다는 것, 이것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땅에서의 복도 있지만,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살아서 뿐 아니라 죽어서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가 되고 그분과 영원히 사는 것이죠.
권위가 무너져가는 사회, 교회에서 권위를 회복합시다. 내리 사랑을 기억합시다. 윗 사람이 잘해야 하고 권위를 가진 자가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합니다. 그러면 아랫 사람들이 따릅니다. 그러면 우리의 자녀들이 따릅니다. 그 결과는 땅에서 잘되고 장수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을 통해 교회 안팎에 무너진 권위를 주께서 다시 세워주시길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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