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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 : 2015.04.19 / 종됨 (출 5:1-9; 롬 6:16-23) / 김동민 목사
 DMKim  | 2015·04·19 16:14 | HIT : 1,450 | VOTE : 225
성경에 보시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여러 번 다른 나라의 포로 혹은 노예가 됩니다. 예를 들면 애굽에서의 노예생활을 꼽을 수 있죠. 그리고 이후에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갈라질 때, 북쪽은 앗수르에게, 남쪽은 바벨론에게 각각 포로로 잡혀 가게 됩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노예생활을 하게 됩니다.
왜 하나님의 백성들이 포로생활을 하게 될까요? 국력이 약해서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난 죄로 인해 받는 징벌이었습니다.
신 28:36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여호와께서 너와 네가 세울 네 임금을 너와 네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나라로 끌어 가시리니 네가 거기서 목석으로 만든 다른 신들을 섬길 것이며
레 26:40-42
[40] 그들이 나를 거스른 잘못으로 자기의 죄악과 그들의 조상의 죄악을 자복하고 또 그들이 내게 대항하므로 [41] 나도 그들에게 대항하여 내가 그들을 그들의 원수들의 땅으로 끌어 갔음을 깨닫고 그 할례 받지 아니한 그들의 마음이 낮아져서 그들의 죄악의 형벌을 기쁘게 받으면 [42] 내가 야곱과 맺은 내 언약과 이삭과 맺은 내 언약을 기억하며 아브라함과 맺은 내 언약을 기억하고 그 땅을 기억하리라
하나님의 백성이 노예 혹은 종이 되는 조건은 (좀 이상하게 들리지만) 바로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떠나는 것입니다. 한 번 떠났다고 하나님께서 곧 바로 종살이를 시키시지 않습니다. 기근으로 질병으로 재앙으로 경고하시죠. 그래도 돌이키지 않을 때, 하나님은 이 백성이 더 이상 쓸모 없음을 아시고 다른 나라에 팔려가도록 내버려 두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타국에서 노예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겸비하여 하나님을 찾고 왜 우리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를 알고 애통해 할 때, 하나님이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 백성을 회복시키십니다. 그런 깨달음이 오기까지 수 백년이 걸립니다.
그런데 노예생활을 하면서도 이것이 죄 때문에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이가 없습니다. 이 즈음 되면 우리가 소위 ‘중독’이라고 부르죠. 혹은 ‘무감각’이라고 불러도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저들을 설득하려 하시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진리의 말씀을 전해도 들리지 않습니다. 이미 그 마음이 강퍅해지고 굳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노예로 전락하게 되면 그냥 선지자들의 말을 거절하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심지어 바른 말을 전하는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때려 죽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이 백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자기의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이 미련한 백성들은 그 아들 마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죄로부터 종살이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죠.
오늘 본문을 통해 1)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종살이 하는 이유를 살필 것입니다. 2) 그러면서 저들이 겪고 있는 종살이는 그 특성 상, 단지 애굽이라는 제국이 주는 ‘물리적인 종살이’가 아니라, ‘영적인 종살이 (죄의 종)’라는 점을 깨달을 것입니다. 3) 우리는 이 과정에서 성경에서 말하는 종, 노예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측면을 살필 것입니다. 4) 이런 인싸이트를 가지고 현대 사회를 조명해 보려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겉으로 보기에 자유인이지만, 실제로 많은 것들에 종살이 하고 있음을 돌아볼 것입니다. 5) 그래서 예수께서 오신 이유가 우리로 하여금 이런 종살이하는 데에서 자유케 하시기 위해 오셨다는 사실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요셉이 죽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점점 힘을 잃어가다 못해 아예 노예로 전락한 상황을 기록합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 백성이 다시 하나님을 만나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풀어달라고 바로 왕에게 요청합니다. 그 사이 무슨 일이 발생할 것일까요? 어쩌다가 하나님의 백성들이 노예가 되었을까요?
우선 요셉이 죽은 이후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등극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출 1:8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
요셉을 알지 못한다는 말은 의미심장하죠. 요셉의 영향력을 무시하며, 그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그 하나님의 역사를 무시하려는 의도를 우리는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또 다른 바로 왕은 아예 하나님 자체를 무시합니다. 출애굽기 5:2에
『바로가 이르되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하리라』
(참고로 성경에 많은 바로 왕들이 등장하죠. 400년 전에 아브라함이 만났던 애굽 왕도 바로왕이고, 요셉을 알지 못하던 왕도 바로 왕, 오늘 본문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왕도 바로 왕입니다. ‘바로’라는 명칭은 애굽의 모든 왕들을 일컫는 통칭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또 다른 바로 왕이 말합니다.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 말에는 다분히 직접적이며 고의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이 거대한 제국이 자기 제국을 살려준 일등공신인 요셉을 잊어버리고, 그 요셉 배후에서 역사하셨던 그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죠. 성경은 여기에 대한 이유를 제시합니다.
요셉이 죽은 이후 신앙이 점점 퇴보하고 맙니다. 퇴보하다 못해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애굽의 신들을 섬겼다는 사실을 압니다. 여호수아 24:14을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경제적인 풍요, 정치적인 안정이 이들의 눈을 멀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기 사명을 망각하면, 자기도 망하고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지역도 망하는 줄 모르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의 눈을 멀게 만드는 모든 것들을 부서뜨리십니다. 출애굽기 12:12에 보시면 10가지 재앙 중 마지막 재앙, 즉 장자의 죽음의 재앙이 나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읽겠습니다.
『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애굽 땅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을 내가 심판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사실 애굽에 내려진 10 가지 재앙, - 1. 물이 피가 됨, 2. 개구리, 3. 티끌이 이로 변함, 4. 파리, 5. 가축의 죽음, 6. 악성 종기, 7. 우박, 8. 메뚜기, 9. 흑암, 10. 장자의 죽음 – 을 내리시면서 애굽의 모든 신을 심판하신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애굽에 실제로 다른 신들이 존재했다”… 이것은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이 아닙니다. 여기서 나타나는 신들의 정체는 백성들이 자기 욕심을 투영해서 만든 우상들이죠. 애굽에 살면서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도록 눈을 멀게 만드는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 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치시지 않으면 이 백성들이 도무지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실제로는 내 유익을 위해 선택했는데, 나중에는 내가 노예가 되어 버립니다. 이런 경우를 우리는 주위에서 자주 보지 않습니까?
마약에 빠지면 마약의 노예가 됩니다. 마약에 빠지는 것은 나의 의지입니다. 술에 빠지면 술의 노예가 됩니다. 도박에 빠지면 도박의 노예가 됩니다. 내가 자발적으로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내가 도리어 노예가 됩니다.
이것이 바로 노예 상태입니다. 흔히 우리는 노예에 대해 생각할 때, 그리스 로마 시대를 떠올립니다. 그 때에는 노예는 물건과 진배 없었죠. 주인이 대가를 치르고 시장에서 노예를 삽니다. 그때부터 그 노예는 힘 없이 아무 권리 없이 그저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노예는 아주 다릅니다. 그리스 로마 시대처럼 주인이 노예를 사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사람이 스스로 섬길 주인을 선택합니다. 자기의 운명을 맡기고 의지할 만한 주인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주인을 선택하고, 그 주인에게 복종하면서 노예처럼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분명히 애굽이 주인이고 이스라엘 백성이 식민지이며, 노예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있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더 심각한 문제는 물리적인 노예 상태가 아니라 바로 ‘영적 노예 상태’라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백성들은 사실 상 죄의 노예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저들이 죄의 노예로 전락한 것은 어쩔 수 없이 된 것이 아니라, 바로 ‘자발적으로’ 된 것이라는 점이죠.
로마서 6:16에서 바울은 노예에 대해서 아주 통찰력 있는 말씀을 줍니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주인이 종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사람 자신의 욕심을 이루기 위해 주인을 선택하고 스스로 그 주인에게 종노릇 합니다. 그러면 죄의 종이 되고 그 삯은 사망이라고 성경은 분명하게 가르칩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이스라엘을 제국 (애굽, 로마…)의 압제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의 뜻이 무엇입니까? 마 1:21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그렇습니다. 주님은 죄의 포로에서 우리를 해방시키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중국에서 ‘자녀의 노예’라는 말이 유행합니다. 자녀를 하나를 낳아서 그 자녀에게 올인하고, 그 자녀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합니다. 중국에서는 자녀의 노예와 함께 내 집 마련에 목숨 거는 집의 노예, 카드의 노예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한국은 예외일까요? 한국에도 역시 자녀의 노예들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부모들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자녀들의 노예가 되어 갑니까? 아니면 다분히 자발적인 행동일까요?
지금 우리 사회를 보십시오. 누가 우리 발에 쇠사슬을 채우지 않았습니다. 누가 봐도 자유인입니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노예가 되어 가고 있습니까? 학벌의 노예, 자녀의 노예, 성공의 노예, 부동산의 노예, 돈의 노예, 정욕의 노예, 얼마나 많은 종류의 노예들이 있는지요.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참사1주년이 되는 날이었죠. 한 마디로 일부 어른들이 탐욕의 노예가 될 때, 얼마나 많은 (어린) 희생자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를 알게 한 사건이었죠. 참 뼈아픈 교훈이었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났지만, 우리 사회는 좀처럼 나아진 것 같지 않습니다. 권력의 노예, 탐욕의 노예, 여전히 존재합니다.
수 많은 종류의 노예들은 바울의 표현대로 하자면, 결국 죄의 종, 사탄의 종으로 거슬러 갑니다. 사람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욕심을 투영하여 주인을 만들고, 스스로 그 주인에게 복종하기 때문입니다.
주 안에서 성도 여러분!
사탄은 끊임 없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노예로 삼으려 합니다. 이러니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귀에 들릴 수가 없죠. 교회 조차 성공의 노예, 돈의 노예, 명예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출 6:9는 말합니다.
『모세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나 그들이 마음의 상함과 가혹한 노역으로 말미암아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더라』
주 안에서 성도 여러분!
올 해는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해방 된지 7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영혼들이 죄의 종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조국이 다시 다른 종류의 노예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벨기에 사회, 기독교 인이 1퍼센트도 되지 않습니다. 여기에도 많은 종류의 노예들이 있습니다. 그 핵심은 바로 죄의 종이죠.
성경은 말합니다. 롬 6:21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그러나 롬 6:22이 말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성도 여러분!
우리를 얽매며 유혹하며 결국 사망으로 인도하는 모든 종류의 노예들로부터 우리 주께서 해방시켜 주시길 기도합니다. 다시는 죄의 지배를 받지 않고, 다시는 내 정욕의 지배를 받지 않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영생으로 가까이 가는 브뤼셀 한인 교회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KCB  받은 은혜를 댓글로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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