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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 : 2015.04.12 / 복음의 힘 (골 1:3-6) / 김동민 목사
 DMKim  | 2015·04·12 16:52 | HIT : 1,086 | VOTE : 107
오늘 설교의 포인트는 바울이 골로새 지역의 교회들을 위해 기도를 하는데, 기도 가운데 또한 감사를 하는 이유와 관련된 것입니다.
기도와 감사, 이는 아주 좋은 조합 (good combination)입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늘 우리의 필요를 구하기만 하고, 구한 것을 받지 못해서 늘 염려와 근심을 가지고서 기도의 문을 나서야 한다면 참 불행할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 가운데 감사를 합니다. 우리는 언제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합니까? 여러 경우가 있겠습니다.
오늘 바울이 기도하면서 감사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4절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너무 분명한 메시지이죠. 예수님에 믿음, 신뢰가 또한 성도를 향한 사랑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만큼 또한 우리 형제 자매들을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 안에서는 이 두 가지, 주님을 향한 믿음, 이웃을 향한 사랑, 이 두 가지가 늘 같이 가는 것은 아니지요.
사실 형제, 자매들끼리 서로 다투는 이유가 얼마나 많습니까? 다툼이 왜 발생하는지 아시는지요? 야고보서 4:1 은 말합니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맞습니다. 내 자존심이 강해서 싸움이 납니다. 내 고집과 뜻이 강해서 싸움이 납니다. 참지 못해서 싸움이 납니다. 그런데 바울은 골로새 교회로부터 좋은 소문을 듣습니다. 주님을 향한 믿음이 있고, 그리고 성도를 향한 사랑도 있습니다. 그 말은 모두가 스스로 겸손히 여기고,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섬기려 하고, 실족하지 않게 하려고 애쓰고 있다는 말입니다.
아흔 아홉 번 참아도 백 번째 화를 내면 이전에 쌓은 것이 다 날라 가기 쉽습니다. 그래서 백 번째도 참아야 합니다. 내가 이번에는 못 참는다… 그러면 사고가 터집니다. 지금 골로새 교인들이 서로 믿음과 사랑 안에서 용납하기 때문에 좋은 소문이 들리는 것이죠.
지금까지 바울이 말하는 내용은 비교적 이해하기 쉽습니다. 기도할 때, 감사하는데, 왜냐하면 골로새 교회에 믿음과 사랑에 대한 좋은 소문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5절에 보겠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사실 3절과 4절, 그리고 5절과의 관계를 이해해야 합니다. 이것을 풀지 않으면, 바울이 왜 기도할 때 감사하는지 그 이유가 분명하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골로새 교인들의 믿음과 사랑 때문에 감사하는 것인지, 아니면 하늘에 쌓아둔 소망 때문에 감사하는지 그 감사하는 이유가 모호합니다.
5절과 이전 구절들 간의 관계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이 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하늘에 쌓아둔 소망은 모든 성도들의 사랑과 연결된다는 점입니다. 앞서 4절에서 바울은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더 쉽게 말씀 드리자면, 모든 성도들이 어떻게 서로에게 사랑을 나타낼 수 있었을까요? 그것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바로 하늘에 쌓아 둔 소망입니다.
하늘에 쌓아둔 소망이라고 하니까 꼭 하늘에 무슨 재물을 쌓아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내가 선한 일을 한 번 할 때마다 하늘 저장고에 금 한 조각이 쌓이고, 많이 하면 그 만큼 많이 쌓이는 것, 그것이 우리의 소망일까요? 순서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모든 성도들이 남에게 사랑을 베풀면 하늘에 뭔가 보물이 쌓이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 쌓인 소망이 성도들로 하여금 서로 사랑하게 했다는 것이죠.
하늘에 쌓아둔 소망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골 3:1이 잘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죠. 우리도 언젠가 주님처럼 되는 것, 그것이 하늘에 쌓아둔 소망입니다. 그 소망은 지상에 있는 모든 성도들이 품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 에베소서 4:4에서 비슷한 표현을 발견합니다.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가 선한 일을 할 때, 상을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받을 최고의 상, 예수 그리스도처럼 죽고 부활하고 영광 중에 새로운 몸, 육을 얻어 영원히 사는 것, 이것이 가장 큰 상이죠. 그 소망이 우리로 하여금 선행을 베풀며, 서로 사랑하도록 자극하는 것입니다. (롬 8:24; 골 1:27을 참고).
이들이 어떻게 이런 소망으로 오게 되었습니까? 골 1:5는 계속해서 말합니다. 바로 저들이 복음 즉, 진리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금 바울은 이 편지를 골로새 지역의 교회들 에게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복음을 전파하다가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복음 전파의 선두에 서 있는 그가 갇혀 있으면 복음 전파가 방해를 받고 진전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을 잘 가르쳤습니다. 비록 자기는 갇혀 있지만, 그 복음은 갇힐 수가 없었습니다. 바울이 갇히니까 골로새 교인들이, 혀를 차면서, 바울도 별 수 없구나… 자기가 전한 복음 때문에 저런 꼴을 당하다니… 하면서 바울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골로새 교인들에게 전파된 그 복음이 저들 가운데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6절에서 말합니다. 골로새 교인들이 복음을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기억하십니다. 복음, 진리의 말씀은 그 자리에서 머물지 않습니다. 그것은 지속적으로 뻗어나갑니다. 그것이 복음의 속성입니다. 지속적으로 뻗어나간다… 이 말을 오해하기 쉽습니다. 사람이 자기 직업, 이 세상에서의 자기 의무를 다 포기하고 오로지 길거리에서 지하철에서 복음만 전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복음이 뻗어나가는 것은 그런 방식에만 제한되지 않습니다.
복음이 뻗어나간다는 것, 진리를 받은 사람들이 진리를 따라 이 세상 가운데서 살아가기 때문에 점점 퍼지는 것이죠. 진리가 가야만 거짓이 드러납니다. 진리가 가지 않거나, 진리가 없기 때문에 거짓이 버젓이 버티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바울이 말합니다. 너희 중에서와 온 천하에서 열매를 맺어 자라는 도다… 복음이 머물지 않고 뻗고 뻗어서 온 천하에서 열매를 맺는 것, 지금 바울이 감옥에 있지만, 복음의 진전을 보면서 기도하며 감사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은 바울이 왜 골로새 교인들을 생각하면서 기도하는데, 또한 저들을 생각하면서 감사하는지, 그 이유를 살피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5절이 앞 뒤 구절들 속에서 가치는 의미를 살폈습니다. 그 의미는 비교적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습니다. 골로새 교인들로 하여금 주님을 신뢰하며 서로 사랑할 수 있게 한 것은 하늘에 쌓은 소망이었습니다. 하늘에 쌓은 소망의 핵심은 이 세상적인 것, 물질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핵심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이런 소망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저들이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지만, 복음이 저들 가운데 열매를 맺고, 또한 온 천하에서 열매를 맺는 것을 보면서 도리어 감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지난 3월 23일 월요일 새벽에 그리고 3월 31일 화요일 아침에 있었던 두 번의 죽음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의 장례예배를 생각했습니다.
기도하는데 감사와 눈물이 납니다. 우선 그 시작은 첫 번째 죽음으로 거슬러 갑니다. 첫 죽음이 발생한 이래로, 저는 성도들 간에 막혔던 담들이 무너지며 관계들이 미미하지만 회복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유가족을 찾아가서 위로하며 장시간 함께 있어 주었습니다. 요양원에서 장례예배를 드릴 때, 그렇게 많은 성도들이 올 줄 몰랐습니다. 모두가 장지까지 따라가서 함께 믿음으로 사도신경을 암송했습니다.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살 것”을 믿고 서로 격려했습니다.
강영인 집사님이 저에게 말합니다. “이 모든 일에 목사님께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집사님, 이것이 복음의 힘이고 교회의 힘입니다. 우리 교인들 의리 있죠?"
그리고 복음의 역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이 전진하고 열매를 더 풍성하게 맺습니다. 정말 예상치 않게 아니 충격적이게도 두 번째 죽음을 우리는 겪게 됩니다. 이는 우리 교회 주일학교 학생의 죽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난관이 있었습니다. 장례 예배를 드리지 않겠다고 유가족 중 누군가가 엄포를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성도들이 지속적으로 방문하면서 부드럽게 권면했습니다. 그래도 설득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손주 사망 소식을 듣고 온 친정어머니가 기적적으로 설득합니다. 그래서 장례 예배를 드리기로 합의를 보았습니다.
이 번에는 지난 번 장례 예배보다 약 두 배 더 많은 인원이 참여했습니다. 물론 지난 번 장례 예배는 고인이 사망한 지 3일 만에 있었지만, 두 번째 장례 예배는 아이가 죽은 지 8일만에 있었기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소식이 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복음의 진전과 관련하여서 몇 가지 특징을 전해드리려 합니다.
첫째, 이번 장례 예배를 위해 많은 성도들이 애를 썼습니다. 다 나열할 수는 없을 정도로 수고한 것이 많습니다. 하늘에 쌓인 소망이 여러분들을 그렇게 하게 했다는 사실을 알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둘째, 이전에 여러 가지 사정으로 저희 교회를 떠났던 형제, 자매들이 장례 예배에 왔더군요. 그 중 한 사람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신문에 브뤼셀 한인 교회에서 장례 예배를 드린다는 소식을 보고 정말 감사했습니다. 이 교회가 이 귀한 일에 쓰임을 받으니 참 기쁘답니다.
셋째, 장례 예배 중 거의 절반은 벨기에 사람이었습니다. 죽은 아이의 담임선생님을 위시하여 학교측 인사들, 그리고 죽은 아이의 아버지의 회사 동료들이었습니다. 약 45명이 왔습니다. 이들 중 무슬림들이 제법 있었습니다. 저는 제 설교를 화란어로 번역해서 저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무슬림들이 교회에 앉아서 함께 예배를 드렸다… 정말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넷째, ATV라는 방송극에서도 취재하러 왔는데, 저희 교회 메스콤 탔습니다.
마지막 다섯째, 이것을 말씀 드리고 설교를 마치려 합니다. 설교를 마치면서 왜 복음이 우리 안에 머물지 말아야 하고 널리 퍼져 온 천하에 그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하는지 그 당위성을 피력하려 합니다.
아이의 학교측 인사 중 한 사람과 만나 오래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와 이야기를 나눈 사람은 벨기에 초등학교에서 기독교 교육의 총책임을 맡은 사람, 일종의 장학사 정도로 보면 됩니다.
저는 그 장학사와 벨기에에서의 기독교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벨기에의 개신교 교회… 취약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자신은 목사는 아니지만, 교회를 섬기고 있는데, 설교도 자주 하는데, 사례를 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벨기에 사람들이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믿음이 없어서이겠죠. 한국이 벨기에 보다 못사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자체 건물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더군요. 제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한국 성도들은 헌신적이고 헌금도 많이 한다고 자랑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저는 그 장학사에게 우리 교회가 함께 품었으면 하는 비전을 나누었습니다. 주위에 수 많은 불신자와 무슬림들이 있고, 그리고 종교는 카톨릭이지만 실제로 불신자와 방불한 자들이 주변에 득실거리는 이 곳에 저희 교회가 서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한국사람이지만, 벨기에의 복음 전파를 위해, 그 속에서 쓰러져 가는 벨기에의 개신교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라 여깁니다.
그 장학사가 마치 어두움 가운데 한 줄기의 빛을 보았다는 듯이 그렇게 환한 미소로 저를 바라보면서 SOS, 일종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왜냐하면 깊은 적진에서 전쟁 패배의 위기에서 아군을 만났기 때문이죠. 벨기에의 기독교는 줄고, 일할 사역자가 없어서 양들이 방황하고 있는데, 혹시 협력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꼭 자기에게 연락을 달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했습니다. 6절 끝에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우리가 하나되었다면 걸어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우리 중에서 복음이 열매를 맺어 우리를 하나되게 했다면, 이젠 온 천하에서 그 복음이 열매를 맺을 차례입니다. 복음은 그 속성 상 자리에 머물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저와 여러분들의 눈을 뜨게 하셔서 이 미약해져 가는 지역교회들을 위해 우리 동료 기독교인들을 위해, 그리고 한인사회와 벨기에 사회 가운데 브뤼셀 한인 교회가 귀하게 쓰임 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KCB  받은 은혜를 댓글로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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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4.19 / 종됨 (출 5:1-9; 롬 6:16-23) / 김동민 목사 1143
  2015.04.05 / 죽고 다시 사는 것 (골 3:1-5) / 김동민 목사 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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